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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6일 14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06일 14시 14분 KST

그 상실감의 크기를 짐작도 할 순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배우자가 세상을 뜬다면

huffpost

그 동안 이사를 다니면 새 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했던 일 중에 하나가 집 근처의 괜찮은 세탁소를 찾는 일이었다. 자주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형편이라 매주 몇 벌의 셔츠는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데, 야근이다 회식이다 하면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 일주일에 한 번 세탁소 들르는 게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서 단골 세탁소를 선택할 때 기준은 얼마나 깨끗하게 세탁이 되냐, 세탁비가 몇 백 원 더 싸냐 이런 게 아니라, 평일에 문은 언제 닫는지, 주말이나 휴일에는 운영을 하는지, 옷을 가지러 와주시고 가져다 주시는지 이런 것들이 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를 온 후 찾은 세탁소의 아저씨는 처음에는 인상이 좀 어두워 보여서 불친절하신 거 아닌가 걱정이 됐었다. 그 이전 집 단골 세탁소 아저씨가 워낙 밝고 좋은 분이셔서 더 비교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밤 9시까지는 꼬박꼬박 문을 열어놓고 계시고, 따로 들러야 하는 위치가 아니라 출퇴근 길목에 있는 집이다 보니 결국 단골이 되었는데, 사람 사이가 자주 그렇게 되듯, 자주 보는 사이가 되다 보니 또 서로 정도 들고 반갑게 안부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세탁물 가져다 달라고 안 해도 지나가는 길에 우리 집 불이 켜져 있는 걸 멀리서 보고 알아서 가져다 주시기도 하고, 당장 손에 지폐가 없으면 외상도 하게 되고. 남편과 난 자연스럽게 21동 5층 총각들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전형적인 동네 세탁소답게 오래된 간판의 자그마한 세탁소라,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 두 분이 꾸리시는 가게였다. 이제 쉰이 좀 넘으실 것 같은 두 분인데, 아주머니는 보통 가게에서 다림질을 하시고, 아저씨는 자전거에 옷을 실어 배달을 다니는 식의 분업이었다. 사장님, 지난 번에 셔츠 맡긴 것 다 됐나요? 하면 응 그래, 지금 가지고 갈게요~ 하는 통화가 지난 2년동안 참 익숙해졌다. 

AntonioGuillem via Getty Images

두어 주 전, 여느 때처럼 형은 전화를 걸어 아저씨께 세탁 다 됐는지, 가져다 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는데 전화를 끊고 형이 내게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저씨가 우시는 것 같은데? 일이 있어서 오늘은 배달 못 해줄 것 같다고 나중에 전화 다시 달라고 하시네. 무슨 일 있으신가.

며칠 뒤 토요일 낮, 어차피 밥 먹으러 나가는 길이니까 맡겨야 할 겨울 옷들을 형과 함께 한껏 들고 세탁소로 갔다. 평소 같았으면 아저씨가 배달을 나가셨어도 아주머니는 다림질을 하고 계셨을 텐데, 세탁소는 불이 켜진 채로 닫혀 있었다. 들고 나갔던 옷들을 그대로 짊어지고 바로 앞 분식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형은 느낌이 뭔가 좋지 않다고 했다. 밥을 먹고 다시 가봤지만 역시 문 닫힌 그대로였다.

며칠이 더 지난 뒤, 우리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아저씨가 직접 찾아오셨다. 맡겼던 옷을 가져오셨는데, 핼쑥해진 아저씨를 보고 형이 무슨 일 있으시냐고 여쭤보자 아저씨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마누라가 죽었어, 마누라가 죽었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인사해주시던 아주머니인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하니 형과 나도 깜짝 놀라 말을 잇질 못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시는 아저씨에게 새 세탁물을 맡기면서 위로하는 말을 몇 마디 건넸는데, 아저씨는 이제 세탁소도 그만둬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당분간은 옷 배달은 못할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괜찮아요, 저희가 찾으러 갈게요.

처음 든 감정은 세탁소 아저씨가 겪으실 슬픔과 상실감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지만, 형이나 나나 시간이 좀 지나자 그 상황에 우리를 대입해보게 되었다. 내가 형을 잃는다면, 형이 나를 잃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힘들까. 요 며칠 세탁소를 지나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형과 나는 괜스레 함께 우울해지곤 했다. 배우자 상을 당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인간이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우리라면 과연 제대로 회사는 다닐 수 있을까. 밥 한 숟가락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겪지 않으면 짐작하기도 힘든 크기의 상실감이겠지.

이번 주말 새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이제 이 동네를 떠나게 됐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맡겼던 옷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아저씨가 이제는 기운을 좀 차리셨을까. 지난 주에 옷을 찾으려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그때도 아저씨는 혼자 울고 계셨었다. 다른 손님이 찾아와서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고 하시며. 아물지 않은 상처에 모래바람이 부는 느낌이 그런 거 아닐까.

별것 아니겠지만, 마지막 찾아가는 날 잘 구워진 빵이라도 하나 사다 드려야겠다. 그 동안 감사했다고, 아주머니도 좋은 곳에 계실 거라고. 아저씨도 힘내시라고.

(www.snulife.com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