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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는 '징글징글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달리고 싶다

이번 시즌 아홉 번째 태극마크를 따냈다.

  • 김태우
  • 입력 2018.06.18 15:35
  • 수정 2018.06.18 15:41
ⓒInkyung Yoon/HuffPost Korea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곽윤기는 당시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열린 시상식에서 ‘아브라카다브라’ 춤을 춰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세계선수권과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메달을 휩쓸며 전 세계를 누볐지만, 유독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경기가 있다. 올림픽이다.

곽윤기는 지난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8년 만에 30살의 나이로 생애 세 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곽윤기는 금메달을 노렸다. 그러나 유일하게 출전한 종목에서 동료 선수가 넘어지면서, ‘노메달’로 올림픽을 마무리해야 했다.

곽윤기는 허무한 결과에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메달을 따지 못한 게 ‘롱런하는 비결’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2018/19 시즌에서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무려 아홉 시즌째 따낸 태극마크다.

본격적인 훈련 시작을 앞두고 허프포스트코리아와 만난 곽윤기는 앞으로도 계속 현역으로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와, 징글징글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근황

ⓒInkyung Yoon/HuffPost Korea

평창동계올림픽이 폐막한 지도 벌써 3달이 지났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올림픽 끝나고는 계속 예정에 없던 일을 하고 있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스케줄이라는 걸 해봤어요. 원래 목표는 올림픽을 잘 마치고 와서 TV에 나오는 거였는데, 올림픽을 잘 못 했잖아요. 그러다 상화 누나(이상화) 덕에 운 좋게 ‘라디오 스타’에 나가게 됐어요. 다들 이미지 관리를 열심히 하더라고요. 같이 출연한 다른 사람들은 다 메달리스트여서 이게 아니어도 할 게 많을텐데, 저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싶어서 정말 막 했어요. 그걸 재밌게 봐주셨는지 이후에 이런저런 일이 계속 오더라고요.

방송이 체질인가 봐요.
=연예인들 사이에서 내가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처음이라 그런가 봐요. 방송에서 저를 더 찾아줬으면 좋겠어요. 하하. 안 가리고 다 할 수 있거든요. 어쨌든 훈련 시작하면 방송은 안 할 거예요. 그전까지 재밌게 잘하고 싶어요.

‘진짜 사나이’에도 출연할 수 있었을까요? 종영한 지 오래지만요. 
=’진짜 사나이’ 나가면 저 얼마나 뺀질거리는 거로 보였을까요? ‘어리바리’의 끝을 보여줬을 것 같아요.

이번 올림픽 이후에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았나요?
=밖에 다닐 때 시선 때문에 조금 조심스럽고 불편하기는 해요. 저는 사람 많고 북적북적한 곳을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곳을 갈 자신이 없어요. 어떤 분들은 저를 알아보셔도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매너를 지켜주시는데, 반면에 몰래 사진을 찍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 술에 취하다가도 확 깨버려요. 저 역시도 유명한 사람을 보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니까 이해는 하지만요. 익선동에 있는 ‘만선호프’를 정말 가보고 싶은데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월드컵 시작한 뒤에 시선이 분산되면 가보려고요.

 

올림픽

ⓒInkyung Yoon/HuffPost Korea

이번 올림픽은 특히나 아쉬움이 더 컸을 것 같아요.
=당연히 아쉽죠. 너무 슬펐어요. 단체전 성적이 계속 좋지 않아서 이번에는 진짜 꼭 잘하고 싶었어요. 엄청 치열하게 경쟁하다 진 거면 패배를 인정했을 텐데, 실수로 진 거라 살짝 허무하더라고요. 근데 단체 경기는 항상 그래요. 올림픽이란 게 항상 그렇고요.

월드컵 같은 경기를 치를 때 효준이(임효준)는 항상 마지막 주자, 저는 레이스 메이킹을 해주는 역할이었어요. 다른 선수들 추월해주는 역할이요. 근데 계주 결승 때 제가 갑자기 마지막 주자로 바뀐 거예요. 그래서 효준이가 제가 하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게 조금 부담 됐나 봐요. 그때 말로 부담을 덜어줬어야 했는데 그걸 못 해준 게 미안해요. 그때는 저도 갑자기 정해진 결정에 마음이 급해진 상태였어요.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많이 아쉬웠을 텐데 임효준 선수를 위로해줬어요. 당시에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그때 진짜 슬펐죠. 너무 속상했는데 누가 저기서 저보다 더 속상해하고 있더라고요. ‘아, 내 차례가 아직 안 왔구나’라고 해서 (슬퍼할) 차례를 기다렸어요. 저도 어렸을 때 겪어봐서 아는데 올림픽에서 그런 실수를 하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근데 아무리 말해도 안 들려요. 아마 혼자 있고 싶었을 거예요. 그래도 너무 안 해주면 ‘왜 그때 혼자 뒀냐’고 서운해할까 봐 토닥여줬죠.

ⓒ뉴스1

이번 올림픽 목표는 뭐였어요?
=금메달이었죠. 이번에 금메달 따면 12년 만에 따는 거였거든요. 효준이가 16년 만의 역사를 더 멋지게 쓰게 해주려고 그랬나 봐요.

유독 올림픽 운이 없는 것 같은데.
=올림픽 운이라는 게 진짜 있나 봐요. 근데 오히려 올림픽 메달이 없으니까 그거 보고 운동을 길게 하고 있어요. 제가 롱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목표를 못 이뤄서인 것 같아요.

이번에도 세레머니를 준비했나요?
=월드컵 시리즈 준비하면서 세레머니 얘기를 되게 많이 했어요. 제가 세레머니로 유명해졌으니까 같이 유명해지자고요. 근데 어떤 세레머니를 하자고 말한 날 경기를 다 망쳤어요. 그 후에 설레발 치지 말자고 하니까 그날 1등을 했어요. 그래서 올림픽 가서도 눈치만 주고받고 얘기는 안 했어요. 그러다 ‘짜놓은 게 있으니까 너희는 시상대 올라가기 전에 듣고 올라가면 된다’고 말했는데, 그 얘기도 하지 말 걸 그랬어요.

ⓒYURI KADOBNOV via Getty Images

그 세레머니가 뭐였나요?
=’팀 코리아’ 호명하면 저 혼자 올라가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쟤 또 뭐 하는구나’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단상 앞으로 내려온 다음에 후배들이 단상에 올라가서 제가 했던 걸 하는 게 목표였어요. 재밌을 것 같았는데 못했죠.

 

30대

ⓒInkyung Yoon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처럼 30대의 나이로도 현역으로 뛰는 선수가 해외에는 많은데 유독 국내 선수 중에는 없어요. 30대의 선수 생활은 어떻게 다를 것 같나요?
=지금 대표팀에서 현역으로 뛰는 선수 중에는 저 말고 30대가 없어요. 처음에는 30대가 됐다는 게 너무 슬펐는데 조금 지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아직 나이 때문에 못 뛰겠다는 생각은 잘 안 들어요. 저는 사실 아프고 힘든 걸 잘 못 참아요. 조금이라도 힘들면 훈련 멈추고 치료받고, 힘들면 더 뒤처지고 그랬거든요. 그 덕에 지금 아픈 데가 없어요. 이거 하나로 만족해요. 저는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될 것 같아요. 애들 뒤꽁무니 열심히 따라가는 거요.

이번 시즌 또 국가대표로 선발됐어요.
=저는 솔직히 이번 시즌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4년 주기로 살다 보니까 조금 쉬면서 체력 안배를 해야 하거든요. 그걸 이제서야 느껴서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어요. 선발되어버려서. 이번 시즌은 성적 보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는 게 제 목표예요. 건강이 최고니까요. 그래야 오래 하죠.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4년간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솔직히 4년 단위로 볼 수가 없어요. 월드컵 1차부터 6차 치르고, 세계 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이게 1년이에요. 4년은 너무 길어요. 우리가 1년 계획을 잡아도 계획대로 절대 못 하잖아요. 심지어 하루도 계획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4년의 타임라인을 잡냐는 거죠. 계획은 계획일 뿐이에요.. 오늘 하루 재밌게 즐기다보면 1년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벌써 올림픽이 끝난 지 3개월이나 됐잖아요. 말도 안 돼요.

ⓒRichard Heathcote via Getty Images

현역 은퇴는 생각해봤어요?
=은퇴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몰라요. 큰 부상으로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요. 저는 한 23살, 24살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운동을 오래 할 거니까요. 일단은 운동에 집중하면 새로운 길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존경하는 선수가 있다면?
=저는 성별을 떠나서 운동선수로서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멋있어요. 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상화 누나는 아픈 곳이 정말 많은데 그걸 다 참고 이겨냈어요. 의사 선생님이 더 운동하면 안 된다고 정말 여러 번 말했을 정도였대요. 이 사람은 금메달 몇 개 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160cm

ⓒInkyung Yoon/HuffPost Korea

연관 검색어로 ‘작다’가 떴어요.
=처음에는 팬들의 제보로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웃기려고 합성한 줄 알았는데 진짜 있더라고요.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리니까 팬들이 속상했나 봐요. 그래서 검색을 해주셨는지 ‘크다’도 뜨더라고요. 근데 ‘크다’ 치면 ‘곽윤기’, ‘곽윤기 작다’가 다 같이 떠요.

ⓒ네이버

키가 콤플렉스로 느껴지나요?
=옛날에는 무지무지하게 큰 콤플렉스였죠. 어릴 때 소개팅을 할 때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키더라고요. 거기서 탈락을 꽤 많이 했어요.

콤플렉스는 극복했나요?
=키가 작다고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없는 게 더 멋없어 보이더라고요. 큰 사람들 앞에서도 떳떳하게 있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콤플렉스가 사라졌어요. 자신감이 언제 어디서나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Inkyung Yoon/HuffPost Korea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옛날에는 과도하게 많았어요. 분명히 그때는 ‘이태리 감성’이라면서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과하더라고요. 20대 초중반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풀 정장’을 너무 많이 입고 다녔어요. 지금은 옛날 사진 보면 바로 꺼버릴 정도예요. 요즘에는 적정선을 찾았어요. 지금은 갖춰 입어야 할 때 갖춰 입고, 편하게 입어야 할 때 편하게 입어요. 제 몸매가 조금 특별하다 보니까 옷도 맞춤복을 선호해요.

비슷한 체형의 남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스타일 팁이 있다면요?
=우리 같은 종족들에게는 키 높이(깔창)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키 높이를 넣어봐야 거기서 거기거든요. 우리 키 작은 사람들이 키높이 깔창 깔아서 괜히 노력하는 모습 보이는 게 조금 안쓰럽고, 안타까워 보여요. 오히려 패션에 조금 더 신경 써서 나한테 어울리는 것을 찾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다리가 짧으니까, 옷을 자기한테 맞게 수선해서 입는 게 좋아요. 비율이나 핏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관심을 조금만 가지면 다 해결될 문제거든요. 귀를 잘 열고 있으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저도 옛날에는 귀를 막고 살았어요. 제가 봤을 때 괜찮은 저 자신은 ‘풀 정장’ 입은 저였어요. ‘너넨 진짜 뭘 모른다. 어디서 나한테 지적을 하냐’고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친구들의 말을 잘 새겨들어요.

 

미래

ⓒInkyung Yoon/HuffPost Korea

앞으로 1년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훈련 열심히 해서 내년에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는 거죠. 저는 사실 올림픽이 아니면 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에 대한 욕심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재미’에 중점을 두고 운동을 하고 싶어요.

언제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나요?
=저는 운동을 오래 하고 싶은 사람이라 몸 관리가 잘 되거나 기회가 좋으면 다음 올림픽도, 그다음 올림픽도 나가고 싶어요. 애들이 ‘와, 징글징글하게 한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요. 힘이 닿는 한, 현역으로 기여를 하고 싶어요. 근데 그걸 보는 시선이 갈려요. 좋게 봐주시는 분들은 후배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주시는데, 또 다른 분들은 ’왜 물러날 때 못 물러나고 구질구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제가 이제 틀렸다 싶으면 비키려고 해요. 저희는 어쨌든 국가대표 선발전을 매년 하니까 거기서 다 증명이 되잖아요.

최종 목표는 뭔가요?
=올림픽 금메달이죠. 그게 없으니까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올림픽 메달을 누구보다 많이 받아서 ‘올림픽 메달 진짜 많은 선수’나 ‘쇼트트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나이 진짜 많은데 아직도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후배들이 ‘나도 저렇게 길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할 선수요. 성적으로 말하는 선수 말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간 곽윤기로서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항상 밝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제일 어렵잖아요. 항상 밝은 거.

 

 

사진: 윤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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