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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정은 그리고 문재인

ⓒPOOL New / Reuters
ⓒhuffpost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하다. 북-미 회담을 앞두고 양쪽의 힘겨루기는 예견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회담 취소와 뒤이은 북한 쪽의 누그러진 공식 반응, 갑자기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번째 남북정상회담, 다시 시작된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까지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대전환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불안이라는 정동을 확산시키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두려움과 떨림은 상상 이상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남북한의 움직임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남북관계 악화와 군사적 긴장 고조가 극에 달한 시점에 갑작스레 열린 평화의 기회도 그러려니와 그 방향과 속도 또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관리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근대국가가 고도화해온 정치 시스템 밖에서 거대한 변혁이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지도자 ‘개인’이 역사의 장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 바로 이 변화의 징후다. 여기서의 지도자는 국가 정치 시스템의 ‘대표자’ 혹은 ‘대리자’보다는 각기 다른 ‘얼굴’의 ‘개인’을 의미한다. 그만큼 한반도 미래 향방이 세 지도자의 ‘마음’과 ‘성향’에 따라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를 호령했던 패권국 미국은 이제 장사꾼 트럼프의 얼굴로 전락한 듯하고, 반미제국주의 기치 아래 버텨온 북한의 역사성과 특수성은 외국 문물에 밝은 젊은 전략가 김정은으로 단순화된다. 한국 사정도 결은 다소 다르지만 비슷한 양상인데, 왜냐하면 ‘핵 보유국보다 강한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상징하듯 한반도 명운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과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회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의 틈새에서 작금의 기회가 태동했음을 의미한다. 포퓰리즘의 트럼프, 3대 독재체제의 김정은,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의 문재인이 만들어낸 조합이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포퓰리즘에 비견되는 트럼프는 기존 정당과 언론을 무력화하고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문법’으로 작동했던 미국의 대북정책보다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드라마가 중요했던 트럼프이기에 지금의 한반도 평화의 전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북한 또한 정치적 불안 요소였던 김정은 위원장의 젊은 나이, 경험 부족, 외국 경험 등이 역으로 미국과의 핵 협상이라는 과감한 결단의 배경이 된다. 거기에 촛불혁명 이후 진정성과 도덕성을 앞세워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 또한 불리한 국회 지형에서 비켜나면서도 행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남북관계 개선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도자 개개인에 의해 형성된 한반도 평화 기회가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정상회담 취소라는 해프닝에서 드러나듯 각 지도자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 것들은 그만큼 쉽게 번복될 수 있다. 게다가 설혹 그들이 합의에 이를지라도, 각국의 정치체계로 제도화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예견된다.

지도자가 주도하는 협상은 빠른 결정과 과감한 결단이 가능하지만, 국내정치와 국제관계라는 공고한 시스템의 거센 반격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렵사리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한 남·북·미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역사의 우연을 ‘현실’로 안착시키기 위한 ‘진짜’ 싸움은 아마도 협상 이후부터 본격화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지혜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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