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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3일 10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23일 10시 54분 KST

반란을 꿈꿀 여유조차 없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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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중해 지역 고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한 가지 미스터리에 부딪치곤 했다. 누가 봐도 고대 이 지역 이른바 ‘선진 사회’들의 주된 생산자층은 바로 노예들이었다. 2000년 전의 이탈리아반도에서 인구의 4할 정도는 노예였으며, 2400년 전의 전성기 아테네에서는 시민 한 가구당 평균 3~4명의 노예가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전시에 전사가 돼야 할 시민은 노동과 운동, 정치참여 등에서 균형을 맞춘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반면, 노예의 몫은 그저 쉴 틈 없는 노동뿐이었다. 그리스 같으면 주인이 노예를 마음대로 죽일 수야 없었지만, 사적으로 벌을 줄 수는 있었다. 노예에게는 인신의 자유도 자신의 재산에 대한 완전한 처분권도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인구 중의 비중이 크며 이처럼 족쇄 이외에는 잃을 것도 그다지 없는 사람들이 반란을 거의 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어린 나로서는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였다. 그리스 같으면 일종의 국가적 농노제를 운용했던 스파르타에서는 한 차례의 대규모 농노 반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외에는 전시 등 비상시의 집단적 도주 사건은 일어나도 반란은 찾기 힘들었다.

로마의 역사에서는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기원전 73~71년) 이외에는 약 두 차례의 커다란 노예 봉기가 기원전 2~1세기에 발생하긴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외에는 노예들의 주된 저항 형태는 개별적인 도주나 소극적인 태업 같은 것이었다. 상당수가 무기를 들고 로마인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전쟁 포로 출신의 노예들은 왜 이토록 집단적인 저항에 소심했을까? 정말 기괴하고 신기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이 미스터리를, 세계의 사회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하나는 집단저항 의지를 꺾는 ‘개인적 해결에 대한 기대’였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이미 시장경제가 발달한 만큼 노예가 주인과 개인적으로 계약하여 약 20~30년 동안 부지런히 노동·저축하여 결국 속량(贖良)에 필요한 금전을 모으는 것은 특히 고숙련 노예에게는 충분히 가능했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스스로 억제해 가면서 ‘정규직으로의 전환’ 약속 하나 믿고 수년간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사실 동격이었다.

또 한 가지는 연대를 어렵게 하는 ‘분산’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3만4376개의 편의점에서 한 점포당 2~3명씩 일하는 알바들의 단결·연대·투쟁이 어렵듯이, 특정 가구에 몇 사람씩 예속돼 있었던 노예들이 서로 간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가 결국 70여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집단도주와 봉기에 성공한 렌툴루스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훈련소는 수백명의 검투사를 소유했던 고대 로마의 ‘대기업’ 격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그나마 피억압자들 사이의 연대가 더 쉬웠다.

검투사들이 노예해방 투쟁의 전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었다. 오늘날 대기업 고숙련 노동자와도, 연예인들과도 비교될 수 있었던 검투사들은, 비록 위험천만하긴 하지만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현대의 이종격투기 선수들처럼 ‘멋진 싸움’을 보여 가학적인 ‘오락’에 익숙해진 군중들의 신경을 자극해야 했던 그들은 영양가 좋은 식사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정기적 치료와 안마까지 받았고 또 충분한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휴식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기에 집단적 저항이라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일반적 노예의 삶은 전혀 여유가 없었다. 그저 일만 하고, 최소한의 영양을 섭취하고, 자고, 드물게는 일부 종교적 의례에 참여하는 것뿐이었다. 어떤 ‘다른 삶’을 꿈꿀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떤가? ‘여유’라는 말은 사실 꽤나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한다. 일차적으로는 집단저항 등 ‘대안적 삶’을 누군가와 함께 꿈꾸자면 일단 시간적 여유부터 필요하다. 대한민국 평균적 노동자는 통계상 연간 2124시간 동안 일하는데 이는 1929년의 독일 수준(2128시간)이나 1938년의 스웨덴 수준(2131시간)과 엇비슷하다. 즉,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데에 있어서 유럽과 한국 사이의 ‘시차’는 약 80~90년 정도 된다. 한데 비록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해도 80~90년 전의 독일이나 스웨덴 노동자들은 오늘날 한국보다 훨씬 더 조직력·투쟁력이 강한 조합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최악 수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 불안정, 근로조건 악화를 겪고 있지만,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훨씬 더 편안하게 노동해도 되는 다른 사회에 비해 차라리 규모상 미약하다고 할 정도다. 2015년에 노동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해 손실된 일수(日數)는 한국에서는 23일이었지만 전형적인 복지국가인 핀란드에서는 52일, 캐나다에서는 아예 119일이었다. 보수언론들은 ‘강경노조’ 타령을 늘어놓지만, 실제로 한국 노동자들이 당하는 초과착취에 비하면 한국 노조들의 투쟁 경력은 차라리 미흡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데 ‘여유’를 이야기하자면 시간적 여유 이외에 어느 정도의 정신적 여유도 집단저항에 필요하다. 그저 생계유지와 쌓인 가계빚 이자 갚기, 그리고 자식의 교육비를 대느라고 ‘정신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만을 무기한 반복할 확률도 높다.

한국만큼 저임금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드물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의 23.7%가 저임금에 시달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6% 정도다.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는 아예 7% 정도밖에 안 된다. 저임금으로 인해서 월세와 아이 교육비를 다 조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임금이 열악한 중소기업 종사자들 중에는 약 41%가 ‘투잡족’이다. 퇴근하고 나서도 또 알바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간신히 경제적 생존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집단저항씩이나 꿈꾸는 건 쉽겠는가?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노예들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했던 것은 여유가 전혀 없는 삶과 ‘개인적 해결’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균적 대한민국 선남선녀에게 강요되는 삶이란 과연 그리스나 로마 노예의 삶과 얼마나 다를까 싶다.

여유의 박탈은, 이미 영어까지 배워야 하는 유치원 시절쯤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개개인에게 하등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험들은 동시에 ‘개인적 해결’에의 기대감도 심어준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을 시작한 금수저 자녀들이 어차피 이기게 돼 있는, 그 결과가 예정된 불공평 경쟁이라는 점을 이성적으로 인지해도, 시험공화국의 각종 ‘통념’들이 계속해서 흙수저들의 현대판 ‘장원급제’의 꿈들을 키우는 것이다. 더 이상 현실적으로 ‘개인적 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려워도, 많은 한국인들이 전국적으로 편의점보다 훨씬 더 많은 교회(5만5767개)나 성당(1706개), 사찰(965개)을 찾아가 초자연적 힘에게 기적이라도 빈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집단적 저항은 아닐까? 지금 독일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들보다 1년에 700여 시간을 덜 일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의 꾸준한 노동투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민 가지 않아도 캐나다만큼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대우를 받는 삶을 살고 싶다면, 여유없고 정신없는 삶이라 해도 그래도 캐나다 노동자들만큼 파업의 무기를 자주 들어야 할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