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평화를 향한 전환의 시대, 세기의 담판

ⓒhuffpost

필자 주 : 미국의 Atlantic Council 북한 핵문제 세미나(5.4.)에서 했던 연설문입니다. 당시 구어체로 말한 것을 문어체로 윤문하고 약간의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평화를 향한 전환의 시대, 세기의 담판

저는 한국의 정의당 국회의원 김종대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정의당을 집권 민주당의 제2열, 즉 2중대라고 모욕적인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정의당은 엄연한 야당이고, 그중에서도 저는 아주 야성이 강한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남북정상회담만큼은 여당과 입장이 거의 일치합니다. 그런 만큼 정의당은 집권당을 도와 남북평화가 하루 속히 정착되도록 하는데 마음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야당의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 드립니다.

저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링컨 전 대통령이 두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1865년 3월 4일의 취임연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남과 북을 ‘좋은 놈’과 ‘나쁜 놈’이라는 선악의 프레임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프레임을 단호하게 거부한 취임 연설에서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쟁 중인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쉽지 않은 연설이었습니다. 이 링컨 대통령의 연설을 훗날 전문가들은 ‘전쟁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의 경외감 넘치는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떠한 차이든 극복하고 마음을 여는 자세로 상대방을 바라보고자 했던 그 링컨 대통령이 바로 오늘날 민주주의와 연방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고, 전쟁을 하고도 64년이 흘렀습니다. 적대와 증오, 대립의 시간이었습니다. 분단 체제라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모든 고통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렇게 질곡의 세월을 감수하면서 왜 평화를 이루지 못했는가? 그 이면에는 남과 북을 선과 악의 대립관계로 보는 다분히 도덕주의적인 관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항상 천사 미카엘이 악마 매피스토펠레스와 대결하는 이분법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악마라기보다 거래의 상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의외로 이런 관점의 전환이 남북문제의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Photo 12 via Getty Images

판문점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문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의 링컨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위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의 링컨 대통령이 되는 데에는 동맹국인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결국은 한반도에서 통일과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기원이 되기를 바라며 미국과 한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결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덕이 아닌 이익의 관점에서 정세를 관찰하는 자유로운 시각, 그리고 관용의 힘입니다. 바로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곳 미국에 오니 많은 사람들이 누구도 예외 없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것이냐?’라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성공에 대해서 저는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질문을 바꿔서 ‘만일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라고 묻고 싶습니다. 이번에 북미정상회담이 실패하게 된다면 매우 극단적인 상황,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비견되는 비상사태가 올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각기 상대방에 대해서 극단적인 전략을 준비한 다음에 개최되는 회담이기 때문입니다. 이 회담이 실패하면 그 다음엔 ‘최종 해결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이번 회담에 실패하면 적어도 1년 안에 핵무기를 실전에 배치하는 본격적인 핵무장 단계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전 단계에서 미국에 대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봅니다. 또 미국은 이번에 북한이 협상에 진정성 있게 임하지 않는다면, 소위 말하는 ‘코피전략’, 북한의 코뼈를 부러트리는 이러한 군사적 옵션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종 해결책’입니다. 이것은 희생을 치룰 절멸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불과 유황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제가 아는 한 역사상 가장 위험한 회담입니다. 왼손으로는 서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지만, 오른손에는 상대방의 심장을 겨누는 칼을 움켜쥐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회담입니다. 이 회담이 실패하지 않고 위험이 제대로 관리되면서 성공적인 결실을 얻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극단적 전략이 준비된 가운데 진행되는 세기적인 담판, 그것이 이번 북미정상회담이라고 봤을 때 이것이 성공할 것인가를 우리는 3인칭으로 논해선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그만큼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많은 분들이 질문하는 내용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과연 믿을 수 있는 파트너인가”, “김정은을 신뢰할 수 있는가”입니다. 제 답변은 한가지입니다. 모릅니다. 그건 누구도 모릅니다.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 자신도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 위협에 대해서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은 믿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위협이 현실이라는 점을 김정은 위원장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보유한 채로 그가 통치하는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K-POP, 아이돌을 좋아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유롭게 남한의 예술단을 관람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습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의 지도자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목적은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지만, 사실은 중국도 믿을 수 없었던 북한의 처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포위되어 있다는 고립감, 동맹도 없고 친구도 사라진 상황에서 강요되는 ‘피포위 심리(siege mentality)’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립감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지도자가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이제 은둔에서 벗어나 세계 속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성 있게 비핵화를 완결하려면, 한·미가 김정은 위원장으로 하여금 ‘명예로운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굴욕과 수치심, 수모를 느끼며 비핵화를 하도록 강요한다면 이것은 북한의 명예로운 비핵화가 아닙니다. 명예롭지 못한 비핵화가 진행이 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내부로부터 통치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에 무정부적 혼란이나 불안감이 조성될 위험이 높습니다. 로버트 카플란이 수렁에 빠진 이라크 상황을 보면서 탄식한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압제도 무정부상태보다는 낫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이 보존되면서 명예롭게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혼란을 예방하는 길입니다. 정치적 위험의 부담을 감수하면서 무조건 미국에 양보만 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에서 북미 간 명예로운 비핵화와 북한체제 안전보장에 방향을 서로 합의하고, 두 가지 실무회담을 후속조치로 마련해야 합니다. 첫째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방식의 비핵화를 지향하는 얼마간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것, 즉 앞으로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확보하는 실무회담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협의하는 북미 수교, 북미 관계 정상화의 실무회담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 실무협의가 동시적·단계적으로 진행될 때, 북한은 비핵화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따라서 북미 정상회담 한 번에 모든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양국의 지도자가 용기 있고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먼저 보이며 이후의 실무회담을 통해 비핵화·북미 관계개선이라는 두 개의 로드맵을 협의하는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평화의 마중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성공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와 번영의 내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 시간을 놓치면 앞으로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은 한반도 위기 상황을 예방하고, 이제 평화를 관리할 수 있는 초석을 지금 놓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과 협력이 절실하며, 대한민국 국민이 한 마음으로 염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행운의 여신이 이 회담에서 미소를 짓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멋진 해결사의 면모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문재인 #김정은 #도널드 트럼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평화 #링컨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