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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종캠 학생이 고려대 총학 활동하냐" 캠퍼스 간 갑론을박이 '사이버 폭력'으로 번졌다

"서울캠에 공부하러 온 세종캠 학우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 전경.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 전경. ⓒ고려대학교 제공

 

“세상 말세다. 예전 같으면 말도 못 섞었을 세종 천민이 고파스에 올라와서 글 XX 있네 쯧쯧.” 지난 4월14일 고려대학교 학생 커뮤니티인 ‘고파스’와 고려대 에브리타임에는 세종캠퍼스(세종캠)에 재학 중인 ㄱ씨를 향한 조롱과 혐오로 가득 찬 익명 게시글이 수십차례 올라왔다. ㄱ씨가 지난 4월11일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총학 비대위)로부터 교육자치국장으로 인준받자 “왜 세종캠 학생이 서울캠 총학생회 활동을 하는가”라는 논란이 일었는데, 이게 ㄱ씨를 겨냥한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4월15일 ㄱ씨의 인준은 취소됐다.

ㄱ씨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사태가 벌어진 뒤로 누군가 저를 쳐다보고 흉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돼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하게 됐다. 비판에 대해서 수용하는 것은 당연하나, 개인의 외모, 학벌 등으로 조롱받아 큰 충격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글을 보고 정신과를 찾았고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고파스와 에브리타임에는 세종캠퍼스 소속 학생의 총학 비대위 합류에 대한 비난글 뿐만 아니라 ㄱ씨의 사진과 이름, 동아리 활동 이력 등의 신상정보도 올라왔다. 고파스의 한 이용자는 “그놈 어떻게든 서울캠 이미지 갖고 싶어서 발악하네. 이런 놈들이 정치권 갈까봐 무섭다”며 세종캠퍼스 누리집에 나온 ㄱ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신상이 공개되자 고파스에는 “어떻게 사람 이름이 ○○○이냐“,

“이름부터가 XXX”, “서울대생을 (임원으로) 시키지 왜 개잡대 XXXX를” 등 ㄴ씨의 이름과 외모를 비하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세종 애들은 세종 애들끼리 놀라고 XX, 이번에 요직 하나 세종 XX가 차지했던데, 너희는 누가 봐도 고대생이 아니야 어디서 XX 고대생 흉내를 내고 있어”라며 세종캠퍼스 학생들을 향한 혐오와 욕설이 담긴 글도 올라왔다. “서울캠 요직에 세종캠이 들어가는 게 싫은 순 있어도 선은 넘지말자” 등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글도 있었지만 소수의견이었다.

앞서 총학 비대위는 ㄱ씨가 서울캠퍼스에서 제2전공을 이수 중이고, 동아리연합회 비대위에서 추천받아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칙 제4조7항에서 규정한 ‘교류회원’ 자격이 있다고 판단해 교육자치국장으로 인준했다. ‘교류회원’은 국내·외국대학의 재학생으로 교환·방문학생 등의 자격으로 서울캠퍼스 학부과정에서 수학하는 자를 뜻한다. 총학생회장단 피선거권 및 선거권, 총학생회비 납부를 제외한 서울캠퍼스 학생의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총학 비대위의 결정에 학생들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일부 학생들이 “관련 회칙이 만들어질 당시 세종캠 학우 포함 여부를 논의하지 않았다”며 세종캠 학생이 교류회원에 포함돼서는 안된다고 회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캠 학생만을 교류회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회칙”이라는 반박도 제기됐다. 논란이 계속되자 총학 비대위는 재심의를 거쳤고 4월15일 ㄱ씨에 대한 인준을 철회했다.

김규진 총학 비대위원장은 “해당 회칙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만큼, 서울캠퍼스에서 세종캠퍼스 학우의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대위에서 상반기 내로 해당 회칙에 대한 개정이 이뤄지기 이전에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서울 캠퍼스와 지역 캠퍼스를 구분하는 ‘학벌주의’와 ‘차별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17학번 주윤영(경영학과)씨는 ‘지난 4월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논의 당시 개정이 필요하다던 여러 회칙에 대한 개정 발의는 방치되고 있으며 발언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고 그렇기에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학벌주의’, ‘특정 캠퍼스에 대한 비하 또는 혐오표현’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뿐”이라고 꼬집었다. 또 “본교는 소속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분교와 관련된 비하 및 혐오표현을 방관한 것에 (본교는) 정말 아무런 책임 없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학교의 책임을 물었다.

“여전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ㄱ씨는 “다만 모든 고려대 학생이 비난에 동조하진 않았다. 고려대 학칙에 따라 서울캠에 공부하러 온 세종캠 학우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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