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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30일 09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4월 30일 10시 46분 KST

정원섭씨가 국가 손해배상금 26억원을 받지 못한 이유는 갑자기 바뀐 소멸시효를 10일 초과해서다

국가는 정원섭씨의 인생을 망치고도 전혀 책임지지 않았다.

SBS
경찰의 거짓 자백 강요로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한 정원섭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액은 0원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이자 공권력의 피해자인 정원섭씨가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됐다.

지난 29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에서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15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씨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정원섭씨는 지난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생한 파출소장 딸을 숨지게 한 용의자로 붙잡힌 뒤 경찰의 가해 행위에 못이겨 허위로 자백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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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섭씨가 당했던 '비행기 태우기'

당시 경찰은 정원섭씨에게 일명 ‘비행기 태우기’ 가해를 했는데, 정원섭씨에게 팬티만 입히고 공중에 거꾸로 매달았고, 수건을 덮은 얼굴에는 고춧가루를 탄 물을 부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 투사들이 당했던 행위였다. 경찰은 정원섭씨뿐만 아니라 또 다른 증인들도 겁박해 거짓 증언을 만들어냈다.

이후 정원섭씨는 자신의 무죄를 밝히겠다는 생각 하나로 교도소에서 모범수로 착실히 생활했고, 15년2개월 뒤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무죄을 밝히는 길은 험난했다. 증인들이 경찰 강요에 의해 허위 증언을 했다고 털어놨지만, 재판부는 30년 만에 말을 바꾼 증인들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며 정원섭씨의 재심 신청을 기각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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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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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섭씨는 무죄 판결 후 부모님을 찾았다.

그리고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했고, 위원회는 정원섭씨 사건의 재심을 권고했다. 2008년 11월28일 법원은 정원섭씨의 무죄를 선언했다. 사건 발생 36년 만이었다. 법원은 또 15년 넘는 정원섭씨의 옥살이에 대해 형사보상금 9억6천만원을 판결했다. 한 가정의 평화를 무너뜨린 대가로는 턱없이 적은 금액. 이마저도 국가는 일시불로 주지 않았고, 4번에 걸쳐 지급했다.

공권력의 피해자였던 정원섭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1심은 그에게 2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돌연 정원섭씨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10일 초과했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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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억원이던 국가 배상금은 0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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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연 

알고 보니 정원섭씨가 2심을 진행하는 동안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기존 3년에서 6개월로 대폭 줄였는데, 이유는 개인들에 일일이 배상하다보면 재정적 무리가 온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정원섭씨는 국가에 받은 피해를 전혀 배상받지 못했다. 2심 판결 후 정원섭씨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치매로 기억까지 점점 잃어갔다.

제작진을 만난 정원섭씨 무척 노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49년 전 경찰에 거짓 자백을 강요 당하며 겪었던 기억만은 또렷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물음에 정원섭씨는 ”가해 행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후유증으로 지병을 앓던 정원섭씨는 합병증으로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국가로부터 피해 배상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