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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 100억원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한 김용호 삼광물산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강남 아파트를 몇채 살 수 있으나, 그는 20년 된 옷을 입고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김용호 대표 
김용호 대표  ⓒ한겨레

“돈은 가둬놓으면 가치가 없고 물이 흐르듯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야 경제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 작은 돈이 마중물이 되어 오대양 육대주로 흘러 많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데 쓰이길 기대합니다.”

경기 파주에서 주방용품을 만드는 중소업체인 삼광물산 김용호(69) 대표가 저소득층 학생의 학업 지원을 위해 써달라며 평생 모은 재산 100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는 25일 오전 한국장학재단(이사장 이정우) 대회의실에서 장학금 100억원 기탁식을 했다.

‘공수래공수거’가 삶의 신조인 김 대표는 2008년 파주지역 저소득층 가정 지원을 위한 기부를 시작으로 201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올해엔 “인생 황혼길에서 모든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며 평생 모은 재산을 아무런 조건 없이 내놨다.

“빈손이란 말을 좋아해 호를 공수(空手)라고 지었어요. 인생에서 이룬 것을 사회에 모두 돌려주고 가야 한다는 게 공수래공수거 정신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므로 남은 삶도 기부 실천 릴레이가 계속될 겁니다.”

 

검소한 생활

통 큰 기부를 했지만 그의 삶은 검소함 그 자체다. 아내 명의의 서울 은평구 불광동 산기슭의 32평 아파트에서 승용차도 없이 파주 조리읍 장곡리에 있는 회사까지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 기탁식에 입고 온 양복도 20년 된 거라고 했다. 그가 대표인 삼광물산은 플라스틱 주방용품을 만드는 회사로 직원은 50여명이며 연 100억원가량 매출을 올린단다.

김용호 대표 
김용호 대표  ⓒ한겨레

김 대표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신문 배달을 하며 중학교에 다녀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었다. 장학생들도 훗날 주변에 어려운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해당 기부금이 나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이들한테도 내가 번 돈은 내가 쓰고 간다고 평소 말을 해왔다. 전 재산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하니 아빠가 마음에 둔 일인데 잘 알았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섭섭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가까운 친구 2명이 잇따라 숨지자 ‘언제 갈지 모른다’고 결심을 앞당겼다고 한다. 친구들이 ‘아직 다 산 것도 아닌데’라며 말렸지만 ‘있을 때 베풀고 가겠다’는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30대부터 생각한 사회환원 

30대 때부터 번 돈을 사회환원하겠다고 생각해온 김 대표는 “돈은 쫓아간다고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1998년 플라스틱 사업에 투자했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를 만나 집이 압류되고 노숙 처지까지 내몰렸지만 3년만에 재기에 성공했지요. 당시 엔화 폭등으로 일본에서 이미 수입해놓은 원자재 가치가 2배가량 높아져 자국 물품만 쓰던 외국계 호텔 주방에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어 전화위복이 되었죠.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학교급식을 시작하며 플라스틱으로 식판이 바뀌었구요.”

그는 5년 전부터 사회환원을 결심하고 30년 전 양로사업하려고 파주에 마련한 부지 등 개인 소유 부동산을 모두 매각해 기부처를 물색해오다 “저소득 학생 대출지원제도가 좋은” 한국장학재단을 찾게 됐다.

“장학금을 받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되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다문화가정 등에 고루 혜택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재단은 이미 운영 중인 장학사업 명칭 ‘푸른등대’에 김 대표 신조인 ‘공수래공수거’와 기부자 이름을 따 ‘푸른등대 공수(空手) 김용호 기부 장학금’을 신설해 해마다 저소득층 가정의 학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재단 쪽은 해당 기부 장학금을 푸른등대 대표 기부장학 사업으로 발전시켜 수혜자가 기부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김 대표의 기부를 두고 “전무후무 장학금”이라며 “위대한 인물을 책으로만 뵙고 실제로는 만나보지 못했는데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고 실행에 옮긴 사람을 직접 만나 감동”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양산의 가톨릭 묘지에 ‘인간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나무 푯말이 있는데, 공수래공수거 정신과 가톨릭 정신이 비슷하리라 짐작된다. 가장 필요로하는 어려운 학생을 찾아내 전달하겠다. 공수 정신을 가르쳐 큰 인물로 성장하고 공수 정신을 실천하는 인물로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공장을 10번이나 옮겨 다니면서 3D산업으로 번 돈을 모두 퍼내 버렸으니 52년생인 나이를 52살로 바꿔, 하고 싶은 일을 새로 시작해보려 한다”며 “베푸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놓고 나니 맘이 편안하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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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