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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07일 14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3월 07일 15시 42분 KST

'故 김성재 사건' 피고자 K 무기징역 선고에 환호성 터져 나왔지만 강력한 전관 변호사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항소심을 앞두고 변호인 쪽은 거물급 전관 변호사로 교체됐다.

한겨레/유족 제공
솔로 데뷔 음반에 실린 안성진 작가의 김성재 화보 사진.

 

-김성재 변사사건 실화르포⑧ 교체된 검사와 변호사

등장인물

K: 김성재 여자친구·피고인
안원식: 1심 기소검사
서정우: 항소심 변호사
김형태: 항소심 변론 자문

 

직접증거와 목격자가 없는 김성재 변사사건 공판은 검찰의 법의학과 변호인의 법의학이 본격적으로 일합을 겨룬 몇 안 되는 형사재판이었다. 재판부가 누구의 법의학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피고인의 유무죄가 갈렸다.

1996년 5월20일 월요일, 서울서부지원에서 결심공판이 열렸다. 결심공판에선 변호인의 최후변론과 검찰의 구형이 이뤄진다. 사건 당일 새벽 4시40분께 피고인 K를 호텔 앞에서 보았다는 여중생 박○○도 이날 검찰 쪽 마지막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박○○은 부모님 귀가 시간 전에 집에 가야해 시계 보면서 호텔 앞에 있던 까닭에 목격 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며 사건 이후 어떤 여자가 학교에 찾아와 호텔에서 목격한 얘길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박○○의 증언은 K의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드는 진술이었지만, 이후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하면서 결과적으로 증언의 신빙성은 낮아졌다.


“직접 증거 없어 무죄” vs “치밀한 계획 살인 사형”

모든 증인심문이 끝났다. 재판장은 변호인에게 최후변론을 하라고 했다. 변호인이 다음과 같은 취지로 최후변론했다. △동료 7명이 자고 있는 호텔방에서 여자의 몸으로 28회의 주사를 놓는 건 불가능한 점 △피고인이 애완견을 안락사시키기 위해 구입한 졸레틸이 김성재 몸에서 나왔다고 해서 같은 물질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변호인 쪽 법의학자들은 시신에서 검출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의 양만으로는 사망에 이른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하는 점 △변호인이 수의사에게 의뢰해 받은 동물실험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는 점 △피고인이 김성재와 계속적으로 친밀한 애인관계를 유지해 온 점 등을 볼 때 피고인이 김성재를 살해할 아무런 이유나 동기가 전혀 없고 혐의를 입증할 직접증거조차 전혀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국주 재판장이 말했다. “피고인 최후진술하세요.” K는 김성재와의 관계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며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경향신문
피고인 K에 대한 1심 선고가 실린 1996년 6월6일치

 

재판장이 안원식에게 말했다. “검사는 구형하세요.” 안원식이 말했다. “피해자가 반항 흔적이 없고, 범행 이후 졸레틸과 주사기를 은닉하였으며 서울대 이정빈, 고려대 황적준 법의학과 교수, 국과수 법의학과장 김광훈 등의 사망추정시각이 새벽 1시~2시50분 사이로 일치하는 등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인들의 진술 등으로 종합해 볼 때, 본 건은 계획적 범행으로 우발적으로 살해할 다른 사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피고인은 다른 사람의 범행인양 호도하는데 급급할 뿐 뉘우치는 마음이 없어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그릇된 집착과 증오, 욕심 때문에 애인을 치밀한 계획하에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려고 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합니다. 형법 제250조 제1항의 살인죄를 적용, 피고인 K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처함이 마땅합니다.”

재판장은 보름 뒤인 6월5일 오전 10시에 선고하겠다고 밝히며 결심공판을 끝냈다. 상식과 상식이 맞부딪치고 법의학과 법의학이 대결한 1심 재판이 끝나가고 있었다.
1996년 6월5일, 운명의 날이었다. 날은 흐리고 후텁지근했다. 김성재가 죽은 지 반년이 넘은 때였다. 오전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이국주)에서 김성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K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첫 공판처럼 법정에는 팬들과 기자들이 자리했다. 서부서 경찰들도 상부 보고를 위해 방청했다. 피고인도 하늘색 수의를 입고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섰다. 재판부가 입장했다.

“사건번호 96고합2 살인에 대한 선고공판을 시작합니다.” 재판장인 이국주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었다. (중략) “피고인이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사건 발생 당시 정황과 여러 증언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동물마취제인 졸레틸을 서서 김성재를 살해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대부분 인정된다. 피고인은 김성재를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려 했고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초범인데다 김성재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피고인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 점을 참작,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피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정태수 한보 회장의 변호인으로 서정우 변호사가 수임됐다는 내용의 1995년 12월14일치 기사.

 

K의 절규 “난 성재를 죽이지 않았어요”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재판장이 증거 사실을 열거할 때 고개를 가로젓던 K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다. “난 성재를 죽이지 않았어요!” 팬들이 피고인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1 법정 경위들이 방청객과 피고인을 제지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들에 대해 모두 증명이 충분하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4개월 동안의 1심 공판이 그렇게 끝이 났다. 변호인들은 법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 항소심에서 무죄임을 입증하겠다”고 밝힌 뒤 법원을 떠났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K의 부모는 변호사를 교체하기로 했다. 경찰 단계에서 경찰 출신 전관 변호사를, 지법 단계에선 지법 부장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바 있었다. 고법 단계에서 고법 부장판사 출신을 선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항소심 변호인으로 대형 로펌인 광장 소속의 서정우(당시 53세), 천상현 변호사(당시 32세)가 수임된 배경이었다.

당시 서정우는 가장 잘 나가는 전관 변호사였다. 그는 삼풍백화점 사고, 한보 비리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90년대를 대표하는 대형사건의 변호인이었다. 차관급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내고 1993년 변호사로 개업한 서정우는,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와 군복무 중 사시 6회에 합격, 판사로 임관해 서울민사지법(서울중앙지법의 전신) 부장판사와 초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법원 내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법원 내에서 차기 대법관으로 꼽혀온 터라 법복을 벗을 때 후배 판사들 가운데 충격받은 이가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 돌았을 정도로 법원 내 신망이 두터웠다.

개업 첫해 납세실적 전국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변호사로서도 승승장구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서정우가 개업 첫해 수임료로만 3자리수(100억원대)를 벌었을 거라는 말이 나돌았다. 김성재 사건을 수임하기 전인 1995년 12월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변호인단을 이끌었다.

한겨레 / 유족 제공
직접증거와 목격자가 없는 김성재 사건 공판은 검찰과 변호인 양쪽의 법의학이 본격적으로 일합을 겨룬 형사재판이었다. 사진은 솔로 데뷔 음반에 실린 안성진 작가의 김성재 화보.

 

서정우는 훗날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법률특보의 자격으로 재벌들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든 차량을 넘겨받아 당에 전달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엘지 등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모두 575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된 그는 2004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대법관이 될 수도 있었던 법률가의 참담한 몰락이었다. 그로 인해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영감, 김성재 2심 쉽지 않겠어”

그즈음, 서울고법에선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안원식은 김성재 사건와 함께 이 사건의 기소검사이기도 했다. 1996년 6월27일 목요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강완구)는 아내와 딸을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피고인 L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이 제시한 정황증거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법의학적 소견에 의한 사망추정시간을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단순히 다른 사람의 범행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인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으며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판결은, ‘심증은 가더라도 결정적 물증이 없는 한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판례를 남겼다. 사건의 유사성을 비춰볼 때 김성재 살해사건 항소심도 영향을 끼칠 만한 판례였다. 사형에서 무죄로 극적 반전이 이뤄진 데는 피고인 L의 2심 변호인이었던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당시 40세․연수원 13기) 변호사의 노력이 주효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검찰의 사망추정시각과 살해 동기 등 공소사실을 하나하나 반박해 무죄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김형태는 K의 어머니 고○○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정식 수임은 하지 않은 채, 김성재 사건 항소심에서 변론 자문의 도움을 줬다.2

한겨레/ 스포츠경향 제공
1심 선고 공판 즈음, 교도관이 피고인 K를 호송차로 계호하고 있다.

 

안원식은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에 대해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항소심 판결을 보면서, 김성재 사건 항소심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사망추정시각이 유무죄의 근본적인 쟁점이었다는 점에서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과 김성재 변사사건은 유사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고법 판사가 그즈음 자신에게 “영감, 김성재 2심 쉽지 않겠어. 준비 단단히 해야할 거야”라고 한 말도 떠올랐다. 김성재 사건 항소심 변호인으로 전관 서정우가 선임된 점도 순탄치 않은 공판을 예고하고 있었다. 공소유지를 위한 면밀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성재 사건 항소심을 준비하던 안원식에게 서부지청 차장검사로부터 느닷없는 연락이 온 것은 그때였다. 차장은 김성재 사건 항소심을 고등검찰청 검사가 맡기로 했다며 관련 기록을 넘기고 재판에서 손 떼라고 지시했다. 안원식은 자신이 기소한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과 김성재 사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항의하는 안원식에게 차장검사는 고검으로 사건이 넘어왔는데 왜 지검 검사가 계속 사건을 맡느냐는 말이 고검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항소심을 맡으며 뒷말이 나왔다는 얘기였다.

당시 김○○ 서울고검장은 기소검사였던 안원식 대신 고검의 공판검사 이○○(연수원 14기)을 김성재 사건 항소심에 배당했다. 중요한 사건의 경우 공소유지를 위해 상급심까지 수사검사가 관여하는 이른바 ‘직관’이 관행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특히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과 비교하면 김성재 사건 항소심에서 검사가 교체된 것은 일관성 없는 조처라는 비난을 받을 만했다. 치과의사 사건은 안원식이 대법원까지 재판을 전담했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유사성도 높고 둘다 엄청난 사회적 관심을 끈 사건들이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검찰의 일처리는 자의적이었다.

 

‘검찰의 시간’서 ‘변호인의 시간’으로

고검 이○○ 검사는 사건을 맡은 후 안원식에게 전화 걸어 이것저것 물었다고 한다. 안원식은 사건 이해가 부족한 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항소심이 곧바로 시작되는 바람에 이○○은 사건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에 참여했다.3 엎친데 덮친 격이었을까. 안원식은 그해 7월28일자로 발표된 법무부 정기인사에서 대구지검으로 전보됐다. 검찰 입장에서 항소심을 둘러싼 조건은 여러 가지로 불리했다. 검찰의 시간이었던 1심이 지나고 변호인의 시간인 2심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겨레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각주
1. <경향신문>, 1996년 6월6일치
2. 김형태 변호사 인터뷰(2020년 4월16일). 2019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상대로 방송금치가처분을 이끌어낸 김 변호사는, 지난해엔 정희선 전 국과수 원장을 상대로한 명예소송을 대리했다.
3. 사건 이후 변호사로 개업한 이○○ 변호사를 수소문해 수차례 인터뷰 요청을 넣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강원도 원주의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갔으나, 사무실을 폐업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