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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등 출연한 배우 김선영이 "맞아. 나 안 멋있어"라고 인정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인터뷰)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가 많다.

'동백꽃 필 무렵' 찬숙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선영 
'동백꽃 필 무렵' 찬숙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선영  ⓒKBS / 사진가 윤송이

“제가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질문과 답 사이 짧은 틈새마다 배우 김선영은 이 말을 기어코 덧붙였다. 그리고 이내 그 말은 “인터뷰에서 멋있는 대답을 하면 좋을 텐데, 제가 그걸 못해요”로 변주됐다. 배우라면, 김선영 배우라면 인터뷰 중 ‘멋짐’을 연기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자기 재능을 그렇게는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좀처럼 멋 내기 어려운 사람의 연기가 왜 그토록 멋이 넘치는지, 짧은 등장에도 빛이 났는지 따져 묻기보다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담백한 말들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배우 문소리가 “내가 연기를 따라 하는 배우가 딱 둘 있는데, 김선영과 이정은이다”라고 말할 만큼 완성형 배우이지만, 그는 지금도 새벽마다 자신의 삶과 연기를 돌아보고 더듬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일상과 작품에서의 후회가 몇년씩 마음을 무겁게 하고, 단념하고 툭툭 털어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이. 20년 가까이 연기를 해왔음에도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의 연기란, 삶이란 이토록 미덥다. 

배우 김선영 
배우 김선영  ⓒ사진가 윤송이

배우 김선영

1995년 연극 <연극이 끝난 후에>로 데뷔해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 올랐다.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대중적으로 자신을 알렸으며, 이후 2017년 영화 <소통과 거짓말>로 들꽃영화상과 춘사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허스토리> <미쓰백> <내가 죽던 날> <세자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사랑의 불시착> 등을 통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나누고 베푸는 극단’이라는 뜻의 극단 나베를 남편 이승원 감독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한장면, 한순간, 한사람 되돌아보기

―최근 영화 <세자매>로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영화로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여우조연상을 받았고요. 기분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좋죠. 좋은데요, 상을 받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 ‘운이 좋았다’예요. 영화 <세자매>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역할인데, 제가 사투리를 잘하잖아요. (그의 고향은 경북 영덕이다.) 보통 사투리 연기를 하면 흠이 잘 안 보이니까 아무래도 얻어걸렸다 싶죠. 스스로 연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아요. 이게 좀 문제이기도 한데,(웃음) 칭찬받는 건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스스로는 인정을 잘 못해요. 그래서 상을 받으면 예고 없이 복권에 당첨된 것만 같은, 뜻밖의 기쁨이 있어요.”

―의외예요. 적어도 김선영 배우가 재능과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칭찬해도 나는 알잖아요. ‘나 그거 아닌데, 나 그때 집중하지 못했는데’ 하고. 굳이 내색까지는 하지 않지만 내 연기를 내가 아니까 의심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 장면에 대한 후회로 몇날 며칠 잠을 못 자기도 하고요. 수년 동안 힘들기도 해요. 갖은 노력을 했는데도 잘 안됐으면 그건 내 능력이 거기까지라고 인정하고 단념해야 하잖아요? 근데 마음이 그렇게 단숨에 정리가 안 돼요. 그래서 어제도 잠을 못 잤어요.”

'동백꽃 필 무렵' 찬숙
'동백꽃 필 무렵' 찬숙 ⓒKBS

―후회와 번민을 토로하면 주변에서는 뭐라고들 하나요?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질 않아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요. 며칠 전 남편(<세자매>를 연출한 이승원 감독)에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고요, 여기서 두번째 말하는 거예요. 남편은 저의 이런 성격이 내 연기의 힘인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반면에 저는 왜 그게 내 연기의 힘이지? 싶은 거죠. 연기라는 것은 자신을 믿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건 반대되는 이야기잖아요. 오히려 이런 태도는 연기의 방해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뭐, 감독님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웃음) 제가 걱정 근심이 많아요. 나에 대한 생각도 많고.”

―연기 외에 잠 못 이루게 하는 고민도 있어요?

“어떤 면에서 연기에 대한 고민은 많은 배우가 그렇듯이 피부처럼 붙어 있죠. 그래도 연기로 인한 고민은 재미있어요. 어떤 작품을 보면서 아,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고 발견할 때 기쁘고요. 저를 힘들게 하는 건 내 삶의 태도와 철학, 아이와 가족 등 타인과 관계에서 생기는 고민이죠. 진정성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어떤 상황이나 말을 곱씹을 때가 있어요. 지나고 나서 ‘아, 그때는 내가 너무 냉랭했어’ ‘그 상황에서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해야 했어’ 하는 후회도 자주 하고요. 부러워하고 닮고 싶은 사람도 많고, 인간적으로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도 커요.”

―그렇게 섬세하게 되돌아보고 곱씹는 성정이 배우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런 고민은 자신을 계속 분해하게 하잖아요. 내 생각과 감정, 철학과 가치관을 잘게 쪼개면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니까요. 결국 연기할 때도 내 상태를 알아야 내가 어떤 인물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계획할 수가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도움이 되겠죠.”

배우 김선영 
배우 김선영  ⓒ사진가 윤송이

‘연출의 꿈’에서 현실 배우로

―자연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 역시 배우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럼요. 자연이 주는 정서는 참 깊기도 하고 오래 지속되죠. 어느 때 봤던 광활한 평야가 내게 주던 감흥, 압도되었던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지우려야 지워지지가 않아요. 자연은 다 가지고 있잖아요. 웅장함과 황홀함, 외로움과 슬픔, 공포와 두려움… 자연으로부터 경험한 다양한 정서들을 지금까지도 연기에 사용하고 있어요. 아주 쉽게는 ‘아프리카에서 지는 해를 봤어?’라는 대사가 있다고 할 때, 정작 배우가 아프리카의 지는 해를 못 봤어도 그 대사를 뱉은 순간에는 머릿속에서 차용하는 이미지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거 없이 대사를 던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차용할 이미지들을 저는 어릴 때부터 온몸에 넣어 왔으니 얼마나 사용할 재료가 많겠어요. 멋진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 봅니다.

“벗어나고 싶다기보다는 고향에는 대학이 없으니까 때가 되면 떠날 것이라고 예상했죠. 다만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내 온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펐죠. 이별하며 다 같이 눈물 흘리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어제도 고향 친구와 통화하다가 ‘야, 니 너무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만큼 고향 친구들에 대한 사랑이 커요. 대구, 포항, 부산, 거제도 등 각지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데 이제 아이도 적당히 키워놔서 종종 만날 수 있어요. 에스엔에스(SNS) 단체 대화방이 있거든요. 제가 티브이(TV) 나온 거 보고 친구들이 ‘오! 얼굴 살 좀 뺐는데? 장난 아닌데?’ 하면 저는 ‘야, 연예인이잖아’ 답하고.(웃음) 제겐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그대로 곁에 있어 주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후 고향을 떠나 대학에서 연극을 시작하고 이후 배우가 되는 과정은 순조로웠나요?

“배우가 된 과정이 재미있는 게, 원래 꿈이 연출이었어요.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어요. 극단을 만들어서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동네 아이들과 연극하며 평생 살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어요. 그러다 4학년2학기 때 선배 부탁으로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 잠깐 출연을 했어요.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데, 크게 울컥했어요. 근데 그때도 인정은 안 했어요. 계속 연출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으니까. 그러다 당시 공연예술아카데미라고 문예진흥원에서 예수정 선생님 등 훌륭한 배우들을 초빙한 2년 과정의 연기 수업이 있어서 들었거든요. 그때도 주변에는 연출하려면 연기를 공부해야 한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죠. 돌이켜보면 연기를 놓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말만 그렇게 하지 내 안에서는 연기가 하고 싶었던 거죠. 연출이 능력 밖의 문제기도 했고요.”

'2021 부일영화상'에 참석한 배우 김선영 
'2021 부일영화상'에 참석한 배우 김선영  ⓒ뉴스1

―그렇게 어물쩍 배우가 된 이후에 ‘이 선택이 맞나?’ 싶던 순간들은 없었어요?

“연기 공부가 너무 막막해서 그런 고민이 한번 크게 왔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한동안 연기를 못할 때, ‘이러다 내가 연기를 안 하고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당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됐나요?

“돈을 벌어야 했어요. 남편도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부부가 가난하죠. 연기가 하고 싶은 마음도 너무 컸지만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했어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밖에 없었어요. 젖먹이를 키워야 하니까.”

―꿈과 생계를 안고 배우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중견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비슷한 역할들을 반복해 맡기도 했습니다. 배우로서 발산하고 싶은 욕망이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근데 돌아보면 그마저도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때가 있었어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누가 벌써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아끼게 되는데요, 내가 누구의 서브가 아닌, 혹은 사건을 요약해 전달하는 도구적인 역할이 아닌 주체적인 인물로서 뭔가를 표현할 수 있는 그 한끝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그런 면에서 영화 <세자매>가 제게 의미가 있죠. 40대 여성의 삶을 누군가의 엄마나 부인으로서가 아닌 독립적인 인물로 표현하는, 그것도 무려 세명의 인물과 각각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잖아요. 아마 이 점 때문에 문소리 배우도 공동프로듀서이자 배우로서 이 작품에 함께했다고 생각해요.”

영화 '세자매'에서 첫째 희숙을 연기한 배우 김선영 
영화 '세자매'에서 첫째 희숙을 연기한 배우 김선영  ⓒ리틀빅픽처스 제공

여성 중심 서사에서 더 빛나는 배우

―여러 매체를 통해 문소리 배우와 돈독한 자매애를 보여주고 있죠.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 하면 여성 중심 서사에서 유독 빛을 발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김선영 배우의 경우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미쓰백> <허스토리> <내가 죽던 날> 등 새로운 여성 감독의, 여성 중심의 서사에 부름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변화 안에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들이 있나요?

“변화는 쉽고, 빠르게, 크게 오지 않는 것 같아요. 아주 더디게 오고 그 과정에서 더 큰 저항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도,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도, <데미안>의 싱클레어도, <홍길동전>의 홍길동도, 지난 수백년 동안 우리는 남자들의 서사를 이해하도록 교육받아 왔잖아요. 제가 딸을 키우는데요, 우리 딸이 작년에 ‘엄마, 언제쯤 남자 두명이 나를 두고 싸울까?’ 하고 묻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왜 너를 두고 싸워?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는데? 싸우게 두지 말고 네가 좋은 사람에게 가면 되지’라고 답했어요. 작년이면 2020년인데 1980년도에 내가 했을 법한 이야기를 아이가 그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어요. 여성이 영웅이 될 수 있고, 독립된 인간으로서 갈등을 유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더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여성의 삶이 그렇잖아요. 이런 다양한 서사들이 아이들에게 더 많이 노출돼야 해요.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 속에 나도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더 깨어 있으려 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딸과 있을 때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남편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지 등을 고민하죠. 내 딸이 그대로 답습하게 될 테니까요.”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연기 외의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죠. 지난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 근절 캠페인에 재능기부로 참여했어요.

“국제앰네스티를 후원한 게 10년이 넘었는데요,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부터 소액 후원을 해왔어요. 재미있는 게 국제앰네스티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배우와 캠페인을 기획해보자고 논의가 되었을 때 그 후보군에 제가 있었대요. 그러다가 관계자분들이 우연히 후원자 목록에서 저와 이름,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을 발견한 거예요.”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면 가장 가난한 때잖아요?

“그래도 술 마실 돈은 있으니까. 그 외에도 굿네이버스,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만원씩이라도 매달 후원을 했어요. 자동이체여서 아마 은행 잔고가 없던 달에는 후원을 못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러다 정말 돈이 없을 때 딱 한번 다 끊은 적이 있어요. 수입이 생기면서 다시 시작했고요. 지금은 후원 금액을 조금 더 늘렸죠. 우리가 커피 한잔씩은 사서 마시잖아요.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아니라면 기부는 의무라고 생각해요. 단지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고요, 이 기부가 결국은 돌고 돌아 나를 도울 것이고, 또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돌려받을 거라고 봐요.”

배우 김선영 
배우 김선영  ⓒ뉴스1

‘못난 나’도 표현할 수 있는 지금

―젊은 시절에는 없었지만 지금 갖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을 꼽고 싶어요?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용은 조금 갖게 된 것 같아요. 일상에서 누군가의 무례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분노가 있었거든요. 지금도 없는 건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그 사람과 상황에 대해 이해해보려는 태도는 갖게 됐어요. ‘그럴 수 있지. 그 사람도 삶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 거야’ 혹은 ‘이런 일 때문에 속상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 하는 이해심은 더 생겼죠.”

―자신에 대한 관용은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네요?(웃음) 스스로에 대한 관용은 오히려 더 적어졌죠. 젊을 때는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하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관용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는 반대죠. 대신에 이건 생겼어요. 예전에는 내가 옳다는 착각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맞아, 나는 그래. 나 안 멋있어’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어렵지 않아요. ‘말만 그렇게 하지 행동으로는 못 옮기는 것도 많아’ 하고 못난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동백꽃 필 무렵' 찬숙 
'동백꽃 필 무렵' 찬숙  ⓒKBS

―거기에서 오는 자유가 있죠.

“어우, 그 자유가 제일 좋아요. 그런 종류의 자유를 크게 누릴수록 인생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성공한 배우’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싶나요? 적어도 오늘 만난 김선영 배우는 단지 주연을 맡거나, 몇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배우가 되었다 해서 스스로를 성공했다고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데요, 배우가 어떻게 성공을 하죠? 건물이 몇채 있다고 성공했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차기작 걱정이 없는, 집에 읽지 못한 대본이 가득 쌓여 있는(웃음) 너도나도 캐스팅에 열을 올리는 배우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보이는 모습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성공했다라고 평가받을 수는 있겠지만, 배우라는 일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 직업에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봐요. 스스로 성공한 배우라고 생각한 순간, 그 사람은 아마도 실패한 배우 아닐까요?”

유선애. 1990년대에 태어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2021)을 펴냈다. 매 순간 새롭게 배우고 깨치는 배우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맡은 배역을 깊이 탐구하고 탐험해온 중견 여성 배우들에게 ‘배우는 삶’에 대해 묻고,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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