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2년 06월 17일 18시 37분 KST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 탈출 프로젝트④] 여혐 광고 제작자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기까지: '울프소셜클럽' 김진아 대표와의 인터뷰

"제게는 아직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 나이 일흔, 여든에도 본인이 바뀌기를 택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거니까요.”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아이소이 유튜브, 스텔라 아르투아 코리아 유튜브
김진아 대표와 그가 기획한 캠페인들.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 탈출 프로젝트]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한 말이다. 보부아르는 여자들이 평생 살아가며 추구하는 ‘여성스러움’이 여성을 수동적인 틀에 가둬놓고, 눈요기에 좋은 이등시민으로 머물게 하기 위해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만든 허상일 뿐임을 지적했다.

 

그러니까, 여자는 ‘물건‘이기 때문에 어떻게 치장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며, 그들이 어떻게 꾸미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그 사회적 관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여자로 ”만들어지기” 위해 숨을 옥죌 만큼 조이는 불편한 옷과 신발, 화장품에 돈을 써가며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노년의 삶은? ‘여성스러움’도, 경제력도 잃은 채 쓸쓸하게 눈 감게 되겠지.

 

더 이상 허상만 좇다가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로 생을 마감하기는 싫어 ‘허프포스트’가 기획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인형처럼 사는 대신 멋지고 끝내주게 살고 싶다.

아이소이 유튜브
김진아 대표가 기획한 캠페인. 한국 최초 펨버타이징 광고다.
스텔라 아르투아 코리아 유튜브
김진아 대표가 기획한 캠페인.

 

김진아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를 접한 적 있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KT올레, 박카스 등 김진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캠페인은 없었으며 “2000년에서 2016년, 이 나라는 선영이에게 덜 해로운 곳이 되었나요?”라는 카피로 한국 펨버타이징(페미니즘+애드버타이징)의 문을 연 장본인 또한 김진아다. 김서형, 김윤아, 송은이가 등장, ”꿈은 단절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온몸에 전율이 일게 했던 스텔라 맥주 광고 역시 그의 작업물이다. 

광고에서만 김진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권의 에세이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와 <곱게 지지 말도록 해>, 그리고 ”여자 혼자도 살기 좋은 서울” 슬로건을 내걸었던 2021년 여성의당 서울시장 후보. 모두 김진아의 이력이자 여자 동료들과 함께 일궈낸 값진 성과다.

멋모르던 사회초년생 시절 ‘여혐’ 광고 제작에 일조한 적 있다며 솔직한 고해성사를 했던 김진아는 이제 여성이 자생할 수 있는 경제력과 일에 대해 말한다. 

 

″제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제게는 아직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 나이 일흔, 여든에도 본인이 바뀌기를 택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거니까요.”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김진아 대표.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울프 소셜 클럽'의 슬로건.

카페이자 여성들의 네트워킹 공간 ‘울프 소셜 클럽’ 대표, 정치인, 작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등 ‘N잡러’ 김진아를 정의하는 단어와 직업이 많아요. 여러 일을 하시게 된 이유가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어서’라고 하셨는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맞춰가시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이건 제 두 번째 책 <곱게 지지 말기로 해>의 주제이기도 한데, ‘코어 커리어’를 먼저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N잡은 병렬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제가 일하는 방식은 우리 몸의 코어 근육처럼 중심부의 코어 커리어에서부터 가지를 뻗어나가는 식이다 보니 N잡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에요. 커리어 확장 쪽에 더 가깝죠. 

코어에서부터 뻗어나가려면 우선 본인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강화하는 초기 단계가 필요해요. 3년에서 5년 정도 한 분야에서의 실무 경험과 네트워크를 다지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경쟁력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 후에 효율적인 멀티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어 커리어’와 관련 없는 일을 우후죽순 시작하기보다는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거네요. 

우선 그런 발판이 있어야 도약을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인내와 끈기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죠. 그래도 10년 만기 적금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던 것과 달리 만기 시점은 생각보다 빨리 오곤 하잖아요. 나를 위해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그 시간 동안 실패도 해 보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자신의 코어 커리어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은 어쩌면 끈기와 인내심 아닐까 싶어요.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김진아 대표.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크다는 말씀에 공감했어요. 준비가 되지 않아도 일단 기회를 잡고 보는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역량이 충분한데도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지곤 하죠. 대표님은 그 시기에서 어떻게 한 발짝 더 나아가실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광고 회사에 다닐 때, 수도 없이 클라이언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어요. 제 아이디어가 스스로는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했지만 그 앞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좋아서 스스로 감동했다‘는 식으로 어필해야 했죠. 어려웠지만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회사를 위한 일이었어요. 회의 전날 사라져 버리고 싶기도 했고, 정말 밀고 싶은 아이디어가 없을 때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더라고요. 실패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면전에서 대놓고 악평을 듣는 날도 있었고, 표정에서 상대방의 감정이 다 드러나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맷집’이 생긴 것 같아요.

 

광고 회사는 그만두셨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도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시기도 하죠.

그런 평가와 비난에 익숙해지긴 했어요. 보통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공격받기 더 쉬운 입장에 있다 보니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더 강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이유로 선뜻 못 나서는 분들 앞에 저 같은 사람이 나오면 ‘이 시대에 저런 여자도 있어야지’라는 의견들이 자리 잡는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각자 저마다의 개성이 있잖아요. 자기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여자가 있다면, 자기 자신을 피력할 수 있는 여자도 있겠죠. 남자들만 봐도 수천, 수만의 캐릭터가 있고 다양성을 인정받는데 여자한테 기대되는 사회적인 역할은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앞선 실패의 경험을 기반으로 조금은 뻔뻔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렇게 맷집이 단단한 사람이 되기까지 앞서 말씀하신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무언가를 찔러보기만 하고 스스로 단련할 시간이 없으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그냥 모래알처럼 다 흩어질 뿐이에요. 절대적인 훈련의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김진아 대표.

많은 사람이 대표님을 롤모델로 꼽았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사회초년생을 포함한 수많은 여자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사실 남성 배우자가 아니라 대표님 같은 선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직업이 하나 더 있는데, 제가 3대째 교사인 집안의 자식이거든요.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 다 교사셨어요. 저도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반면교사다. 모든 사람, 모든 여자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좋고 완벽해서 닮고 싶은 롤모델도 있겠지만 제가 했던 많은 실수들(김진아 대표는 첫 번째 에세이집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서 ‘빨간 약‘을 먹기 전 ‘가부장제 중독자‘로서 살았던 과거에 대해 고백한 바 있다)을 다른 여성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분들이 ‘나는 저런 식의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신다면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걸 이런 식으로 극복하는 중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으니까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느낍니다.

요즘엔 20, 30대 분들 중 저보다 더 단단하게 각성하고 삶을 영유해나가는 분들이 많아요. 경제적인 부분도 신경 쓰면서 스스로의 자립을 위해 힘쓰는 분들을 볼 때면 존경스럽고 뿌듯하죠. 한 명에게라도, 내가 어떤 여성에게 좋은 영향이 됐다면 정말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에 감히 어떤 작은 파동이라도 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그럼 그 사람은 또 다른 이들에게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겠죠. 

 

첫 에세이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서 대표님의 ‘반면교사’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올바르게 형성되어 자리 잡았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실은 나를 착취하는 가부장제에 기반해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그 책에서 반성문이라고 표현을 했었죠. 저도 수많은 ‘현타’를 맞았어요. 그래도 이런 얘기까지 솔직하게 한다면 다른 여성분들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겨내는 거죠. 

제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제게는 아직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 나이 일흔, 여든에도 본인이 바뀌기를 택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거니까요. 그래서 마흔 즈음에라도 바뀌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아니면 쓸데없는 소비를 계속하면서, 내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해하면서 지금의 40대 후반을 보낼 수도 있었겠죠. 


다시 롤모델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표님에게도 롤모델이 있나요?

J.K. 롤링 작가요. 좋은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멋있지만, 무엇보다 벌어둔 돈으로 편안하고 우아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여성들과 소녀들의 안전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간다는 점이 좋아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사실 그 위치에서 본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상황일수록 쉽지 않은 선택이죠.

여성의 목소리를 대신해주고 임파워링 하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런 용기가 저에게도 큰 힘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저도 자신을 잘 돌보면서도 약자와 여성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김진아 대표.

사실 자영업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큰 용긴데, 대표님께서는 이에 더해 책도 쓰시고 여러 가지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셨지요. 

사실 그렇게 사회성이 좋거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공간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게 결핍된 요소를 채우기 위해 이런 공간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하고 컨택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준 거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고 인정하기 힘들어하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신 게 자영업자로서는 엄청난 차별점이라고 느껴져요. 자영업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이렇게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제일 처음에 얘기로 돌아갈 수 있는데, 자기만의 것을 하려면 자기만의 코어가 있어야 됩니다. 내가 잘하고, 정말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 토대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내 것을 시작하는 건 안돼요. 내 것이 없는데 내 브랜딩을 어떻게 하겠어요. 시중에 유행하는 것들을 단순히 짜깁는 데엔 한계가 빨리 와요. 더 잘하는 사람, 자본이나 기술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세고 셌는데 어떻게 살아남겠어요. 만약 가진 게 너무 없다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벽돌을 하나씩 쌓아야죠. 섣불리 뛰어들면 안 되는 분야예요.

요즘은 1인 기업이 주가 되고 있는 추세잖아요. 그 안에서도 모두가 잘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격차가 나기 마련이에요. 잘 되기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나만의 강점을 찾아야죠.

어떤 수익 모델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을 할 것인지도 중요해요. 단순히 여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만든다고 잘 되는 게 아니거든요. 홍보부터 시작해서 다른 요소들을 하나하나 고려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무엇이 불편한 줄도 모르고 살다가 누군가 획기적인 것을 기획하면 ‘왜 지금까지 이 생각을 못했지?’ 하면서 가려웠던 곳을 누군가가 긁어준 듯한 느낌을 받잖아요. 여자들의 네트워킹 공간인 ‘울프 소셜 클럽’도 그렇지만, 대표님이 기획하셨던 한국 최초 펨버타이징 광고나 ”꿈은 단절되지 않는다”는 여성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을 보고 나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광고 너무 좋은데, 왜 이제까지 아무도 기획해보지 않았을까? 나는 왜 소비자로서 이런 광고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까?

제가 느낀 생각을 공적인 일로, 수면 위로 가시화하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나 이런 사람이었는데, 생각을 바꾸고 인생도 바뀌었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제 코어 커리어로 승화시킨 거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강현욱/스튜디오 어댑터
김진아 대표의 저서

여성들의 경제력 향상을 위한 기사이다 보니 이 질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진아 대표님께 돈이란 무엇일까요? 

나를 지킬 수 있는,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어딘가에 종속되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해지는 순간들이 와요.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약자인 여자에게는 그게 내면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돈은 그런 나약해지는 순간에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내가 독립된 존재로서 정신 승리에 빠지지 않고 맨 정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보호막이라고 생각해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생할 수 있는 경제력이에요. 그게 없으면서 이렇게 좋은 얘기를 하는 건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나 다름없어요.

 

그렇다면 대표님께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일과 돈을 분리할 수 없어요. 제가 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돈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 아이디어를 공적인 방향으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도 제가 투자해서 만든 제 구상안들이나 노동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서였기 때문이에요. 보상 없는 희생과 돌봄은 원래도 여자의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일터에서만큼은 타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보 시절부터 반여성적인 정책을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리베카 솔닛이 한국 여성들에게 5년을 보지 말고 50년 후를 보라는 말을 했어요. 대표님이 보시는 50년 후도 궁금해요.

솔닛은 50년 후를 보라고 했지만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지금 상태로 가면 인류 문명이 30년도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저도 우리가 50년 후를 바라보면서 낙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긴 하죠. 지금도 사회는 삐걱거리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최소한의 사회 질서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하루가 타들어가는 기분이기도 해요. 섣부르게 50년 후의 희망을 얘기하는 것보다 오늘 이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싸움을 한다는 감각에 집중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50년 후를 내다보는 것보다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있는 전투에서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 것. 월급도 중요하지만 그런 성취감도 여자에게 힘이 되곤 하잖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서 ”더 이상 ‘울프 소셜 클럽’이 필요 없는 날을 상상해본다”는 말을 하셨죠. 그런 날이 오면 대표님은 이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학문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어요. 지금까지는 개인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많이 썼는데, 기회가 된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제도로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미디어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저는 광고를 만들기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경험을 거치고 객관적으로 미디어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지금 시점에서 작업을 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는 미디어에서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해서 주체적으로 습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세뇌당하는 퍼펫,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 같아요. 매체들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재 시점에서 어쩌면 개인에게 법보다 강력한 제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미디어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요. 

사람들은 여자가 20대 중반만 되어도 진로 바꾸기엔 늦었다 하는데 전 좋은 거 다 해보려고요. 저는 코어 근육도 있거든요. 그게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웃음). 

 

여성은 이등시민 취급받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 태어난 이상, 여성혐오적 사고는 본인이 가부장제의 수혜자이든, 피해자이든 간에 상관없이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장착하게 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적 요소이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지, 혹은 현재의 삶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자기 암시에 빠져 남은 생을 ‘옷장 꽉 찬 쪽박 할머니’로 보낼지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지난 2,30대로서의 시간을 철저히 ‘가부장제 중독자’로 보냈던 김진아지만 ‘각성’ 이후 그는 후퇴하거나 머무르기를 택하는 대신 ”좋은 거 다 해보겠다”는 포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를 택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만난 그의 모습에서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아닌, 새롭게 태어난 자신에 대한 당당함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만이 보일 뿐이었다.

 

 

 

문혜준 기자: huff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