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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을 집 가운데 두면 남녀 다툼 줄어든다

남녀가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공간을 재편해야 한다.

  • 김태우
  • 입력 2018.03.12 11:52
  • 수정 2018.03.12 11:59
성평등공간 제안하는 '그여자 그 남자의 집놀이' 저자 김진애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성평등공간 제안하는 '그여자 그 남자의 집놀이' 저자 김진애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한겨레

“결혼 안 했을 것 같고, 혹시 결혼했어도 아이가 없을 것 같고, 혹시 혹시 결혼했어도 이혼했을 것 같고….”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본인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건축가 김진애. 그러나 그는 남편도 있고, 딸도 있고, 손주도 있다. 아마도 ‘말발’ 센 방송인, 김어준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배짱과 입심(그는 김어준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한다), 단호한 말투, 날카로운 논리적 사고 때문에 남자들이 불편해할 것 같은 인상을 주나보다. 그러나 실제 그의 고민은 늘 남자와 여자가 서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꽂혀 있다. “우리나라는 남녀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말하는 그는 남녀가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공간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집놀이, 그 여자 그 남자의’(반비)를 펴낸 김진애를 지난 6일 만났다.

그가 생각하는 집놀이는 “여자 남자가 덜 싸우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으며, 집이 작다고 불평하지 않으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집같이’ 살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일’이 되지 않고 ‘놀이’가 되려면, 우선 남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김진애는 부엌을 집 한가운데로 놓는 방법을 제안한다. “부엌이 ‘들어가는’ 공간이 되면, 들어가야 하는 사람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엌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은 자기만 익숙하고 편안한 곳으로 만들기 마련이다. “착취는 공간의 독점을 낳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집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그는 부엌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등을 보이지 않도록 작업대를 배치하고, 2인 이상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교외에 있는 주말 주택은 싱크대 높이를 남편 키에 맞춰 “나보다 13㎝ 키가 큰 남편이 편안하게 부엌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집놀이’는 “여자 남자가 덜 싸우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으며, 집이 작다고 불평하지 않으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집같이’ 살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집놀이’는 “여자 남자가 덜 싸우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으며, 집이 작다고 불평하지 않으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집같이’ 살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반비 제공.

가족이 함께하되,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도록 공간을 정비하는 일도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한집에 살려면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 자주 싸우는 부부에게 ‘공간 분리’를 충고하곤 하는 그는 “남자의 공간, 여자의 공간을 따로 마련해놓고 그 공간에 있으면 제 발로 걸어 나올 때까지 최대한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집이 넓지 않더라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작은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라도 각자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족 각자가 “자신만의 비밀을 감추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과거 딸들을 위한 방을 설계할 때도 ‘혼자, 또, 같이’라는 생각을 반영했다. 문 따로 공간 따로 쓰는 방을 만들면서 책장 위로 천장 사이의 공간을 튼 것이다. 딸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는 들리는” 방에 각자 누워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그는 집놀이가 행복감을 높여줄 거라고 장담한다. “행복이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고 빈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작더라도 얼마나 자주 행복감을 느끼느냐가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거죠. 집놀이를 하면서 생겨나는 작은 궁리, 소소한 즐거움이 행복감을 높여주죠. 그래서 내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 독서용 스탠드를 하나 살 생각을 했다면 그것만이라도 성공이에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일상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생긴다면 매우 기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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