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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는 "내 이혼이 당신의 어디를 아프게 했냐"고 묻는다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 동안 김C는 나름 잘 살았다.

  • 강병진
  • 입력 2018.04.10 09:21
  • 수정 2018.04.13 11:59
ⓒYOONSUB LEE/HUFFPOSTKOREA

지난 2014년, 김C에게는 이혼과 연애에 얽힌 소란이 있었다. 그 이후 김C의 이름과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김C 자신이 숨었던 게 아니라, 대중매체 관계자들이 그를 숨겼다. 그룹 ‘뜨거운 감자’의 리더이자,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방송인이었던 그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를 가졌다. 지난 2월 ‘뜨거운 감자’가 ‘중력의 여자’란 제목의 싱글을 발표했을 때, 김C의 이름이 새삼스럽게 느껴진 이유다.  그 사이 김C는 디제잉에 빠졌고,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했으며 두 마리의 반려견과 놀았다. 그렇게 약 4년의 시간이 지났다. 김C는 여전히 “개인의 행복”이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했던 선택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4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 어제는 무엇을 했나

= 어제는 보드카 브랜드 런칭행사에서 디제잉을 했다. 재밌었다. 어제는 음악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어줘야 했다. 물론 디제이가 사람들을 춤추도록 만들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어제는 파티였으니까 그런 거고.

- 디제잉에 필요한 바이닐도 많이 수집하는 편인가

=바이닐로 하는 디제잉만 할 줄 안다. 나머지는 못한다. 장비도 없다. 요즘은 거의 99%를 컴퓨터로 한다. 바이닐로만 하는 사람은 몇몇 없을 거다. 그런데 나는 그것밖에 못한다. 운전으로 따지면 오토매틱이 있어도 스틱으로만 운전을 하는 거다. 사람들은 스틱을 할 줄 알면 오토는 껌이야, 라고 하지만 오토를 한 번도 안 해본 입장이라 두려움이 있는 거지.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고서) 그런데 이 인터뷰는 동영상도 필요한 건가?

- 동영상으로도 만들고, 텍스트로도 기사를 내보내는 형식이다

= 나도 이런 쪽으로는 보수적인 건가 싶더라. 라디오 DJ를 할 때 나는 ‘보이는 라디오’라는 말이 싫었다.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라디오가 보인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라디오인가. 라디오가 아니지. 그게 발전해서 TV가 만들어진 건데. 나는 라디오가 라디오가 되지 않으면서 라디오가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시대에 살아온 거다. 테이프, CD, MP3, MD, 바이닐까지 다양한 매체가 혼재된 상황에서 살아왔다. 그게 음악가로서는 사실 혼란스럽기도 했다.

- 최근에 발표한 ‘중력의 여자’를 준비하면서도 그런 혼란이 있었나

= ‘중력의 여자’는 내가 음악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본 디지털 싱글이다. 여태까지는 형태가 있었는데, 이건 무형이다 보니 어색하더라. 음악이 나오면 지인에게 사인해서 선물도 해주고 그래야 하는데, 이건 이메일로 보내는 거 말고는 선물이 안되니까.

- 음악의 정서상으로도 그런 느낌이 있었을까

= 이건 좀 ‘성인가요’아니야? 그런 생각이었다. 이번 음악 잘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너두 이제 나이 들었구나’라고 말하게 되더라. 지금 음악을 소비하는 주 대상과 이 음악은 구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중력의 여자’ 소개글을 보면 배우 ‘김혜자’가 언급된다

= 평소 TV를 열심히 보는 타입이 아니다. 요즘은 TV 드라마가 엄청 많더라. 내가 마지막으로 쫓아가며 봤던 드라마로 기억하는 건 ‘엄마의 바다’(1994년 MBC드라마)다. 김혜자씨가 부잣집 어머니로 살다가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내용이었다. 김혜자씨를 보면 오래 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했기 때문에 오래 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 시놉시스를 하나 받아보게 됐다. 이 내용으로 드라마 음악을 만들어 보겠냐는 제안이었다. 주인공이 김혜자 선생님이었다. 내용을 봤는데,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악과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 사이에 안맞는 게 있었다. 나는 이런 걸 보고 음악으로 표현해봐라, 이러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 생각을 가지고 나한테 음악으로 만들려고 하면 못한다. 그분들은 기술자를 요구했던 거니까, 나와는 상충하는 게 있었다.

*위에서 언급된 드라마는 2015년 2월부터 5월까지 KBS에서 방영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다. 김혜자와 채시라, 도지원, 이하나 등이 출연했다.(편집자 주)

- ’중력의 여자’는 그때 만들어두었던 노래였나

= 시놉시스를 보고 스케치 정도를 했었다. (싱글 발표전에 다시 보니) 마침 이 노래의 내용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과 관련된 운동과 닿아있는 부분이 있었다. 할머니에서 엄마, 그리고 딸의 고단한 삶이 중력작용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거다. 그래서 ‘중력의 여자’가 됐다.

 

‘중력의 여자’는 여성의 무거운 삶에 관한 노래다

- 김혜자란 배우를 생각하고 노래를 들어보니, 나이든 엄마가 가족들이 다 잠에 든 후 베란다에서 혼자 담배를 피는 모습이 그려졌다

= 그런 느낌이다. 손녀까지 있는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다. 살다보면 너도 내 나이가 될거고, 어쩔 수 없이 나처럼 살게 될건데, 힘들 때 내가 해준 이야기를 잘 떠올려봐라, 이런 거다. 남자가 뭐고, 애새끼가 뭐고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누구보다 이기적으로 살라는 거. 남들이 이기적이라 할 지언정,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살아라. 그렇게 살다가 나보다 더 사랑해야 될 대상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정말 못된 새끼거나, 그 사람 때문에 아프더라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모든 걸 던져라. 하지만 후회는 하지 마라. 이런 내용이다. 아이 워너 홀드 유, 아이 니드 유, 이런 사랑 노래가 아니다.

 

 

- 여성의 삶에 대한 노래지만,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 작품은 김C라는 사람에게 영감을 얻은 실험영화처럼 보였다

= 사실은 내가 소속사를 나왔다. 디컴퍼니라고 원래 윤도현, 김제동, 강산에랑 같이 있던 회사였다. 나오고 나니 나에게 지붕이 있던 것과 없던 것의 큰 차이를 알게 되더라. 뮤직비디오에도 제작비 지원이 없다보니까,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주변에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스테레오 바이널즈의 허재영 디렉터를 알게 되서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비디오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오랜 친구인 패션포토그래퍼 목정욱이 촬영감독을 맡아줬고. 여기에 허재영 디렉터가 런던에서 활동하는 필름아티스트를 얘기했다. 그 친구랑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해서 음악을 보냈는데, 어떤 한 가사 때문에 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youtube/hotpotato
ⓒyoutube/hotpotato

- 어떤 구절인가

= 기억이란 미신 같은 거라서 믿고 싶은 대로 원하는 것만큼만 남았더라, 라는 부분이 있다. 거기서 떠오른 아티스트가 있다고 하더라. 이탈리아의 부르노 무나리라는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의 작품 중 ‘불편한 안락의자에서 편한 자세 찾기’라는 게 있다. 이 노래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세상의 여성들이 지구라는 불편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생존하려하고 편안함을 찾으려 한다는 것, 그런 부분이었다.

*브루노 무나리 (Bruno Munari)  :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디자이너. ‘불편한 안락의자에서 편한 자세 찾기’는 1944년에 발표한 포토에세이다. (편집자 주)

1944년 10월, 'Domus' 202호를 통해 발표된 ‘불편한 안락의자에서 편한 자세 찾기’
1944년 10월, 'Domus' 202호를 통해 발표된 ‘불편한 안락의자에서 편한 자세 찾기’ ⓒdomusweb

- 그래도 돈이 해결된 건 아니지 않나

= ‘인센티브’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먹히는 직업군이 있고, 안 먹히는 직업군이 있다. 육체적인 노동자에게는 ‘인센티브’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창의적인 집단에는 안 먹힌다. 미술가한테 너 100만원 더 줄테니까, 더 좋은 작품을 그려봐하면 그게 되겠나. 음악가한테도 마찬가지다. 그게 가능하면 누가 돈을 더 안주겠나. 그러면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인센티브는 뭘까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건 권한이었다. 내가 아무런 간섭도 안 할 테니까, 너희들 마음대로 해. 하고 싶은 거 하면돼. 이 정도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려면 수천만원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고 돈이 안들어갔다는 걸 자랑하는 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로우파이를 지향하지 않는 이상, 이 방식밖에는 답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에서 내 음악은 그냥 BGM이 됐다. 나는 이 작품에서 움직이라고 하는데로 움직이기만 했다. 이 작품은 사실 내 것이 아니다.

- 김혜자라는 배우를 떠올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가족이 생각날 것 같다.

= 그렇지. 그런데 좀 아이러니한데, 나는 이혼을 했지 않나. 이혼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나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내가 뭐 어마어마하게 큰 죄를 저지른 게 아닌데, 어디도 못 나가는 상황이 된 거다. 내가 공인이면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은 공인의 개념을 오인하고 있다. 정확히 공인은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이다. 세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인 거다. 나는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는 사적인 사람이다. 국가가 나에게 돈을 주지는 않으니까. 내가 오히려 세금을 내지. 그런데도 나는 직업적인 자유를 잃게 된 거지. 웃긴 거다. 새 앨범이 나왔지만, 인터뷰도 지금 하는 게 2번째다. 예전에는 (몰려오는) 인터뷰를 어떻게 처리하나 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나의 이혼이 당신의 어디를 아프게 했나

ⓒYOONSUB LEE/HUFFPOSTKOREA

- 그런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나 보다 

=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그렇게 해서 나와 내 가족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세상만 그렇게 바라보는 거다. 왜 그렇게 남들 일에 관심이 많고, 왜 그렇게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하려고 할까. 왜, 무슨 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웃긴 거다. 내가 당신한테 무슨 피해를 줬는데?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거지. 내 이혼이 당신에게 무슨 피해를 준 건가? 어디가 아픈 건데?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는 잘 살고, 여전히 음악 활동이나,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역으로 물어보더라. 요즘은 왜 TV에 안나오냐고.

- 말하자면,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였나

= 강요된 거지. 방송에서 내가 출연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위에까지 올라갔다가 드롭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제안이 올 때 내가 먼저 물어봤다. 혹시 나 괜찮은 거냐고. 그러면 그쪽에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더라. 이런 사례들이 있었다고 하면 잠깐 알아본다고 했다가 다시 연락이 온다. 죄송하다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고.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방송국 사람들이 방송장악에 맞서 싸울 때는 또 나를 부르더라. 지지하는 인터뷰를 해달라고 말이다. 당연히 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힘들 때는 나의 지지를 원하면서, 내가 힘들었을 때는 출연하는 걸 원하지 않았던 거다.

- 의도하지 않은 공백기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나

= 늘 해왔던 음악이 갑자기 싫증으로 다가오더라. 순간적으로 큰 질문이 생겼다. 익숙한 패턴이 다 싫어져서 일단 내려놨다. 새로운 악기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잠깐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얻은 게 있었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1960년대부터 있었던 나라니까, 나도 전자음악에 더 관심이 생겼다. 사실 ‘뜨거운 감자’의 데뷔부터 지금까지 모든 앨범에 한 곡씩은 전자음악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뜨거운 감자’가 있었고, 그런 곡은 우리의 취미였던 거다. 그런데 이제 그게 메인으로 나온 거지. 멤버들이 있어야 할 수 있었던 음악을 혼자 할 수 있게 된 거다. 다른 멤버인 고범준도 전자음악에 깊이 들어가서 개인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만나서 공동작업을 하기도 하고.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결성된 전자음악 그룹. 신스팝 및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선구자로 불린다. (편집자 주)

- 디제잉도 같은 시기에 하게 된 건가

= 그렇다. 거기서는 나의 백그라운드가 필요 없더라.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내 사생활이 어떤지 어느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다. 거기서는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 말고는 없다. 내가 누군지 중요하지도 않았고.

- 음악을 만들던 입장에서 디제잉은 어떤 재미가 있었나

= 1차 표현자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DJ는 2차표현자다. 자생이냐, 기생이냐의 차이다. 기생이란 단어를 기생충 때문에 안 좋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기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 타인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 거다. 패션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의 차이 같은 거지. 전신을 명품으로 도배했는데, 못봐주겠는 사람이 있지 않나. 아무리 좋은 옷도 구색을 맞추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완성된 음악도 어떤 식으로 연결짓냐에 따라 또 다른 형태의 음악이 된다.

- 디제잉을 하면서 쓰는 활동명도 따로 있나

= 디제이로서 쓰는 이름은 오비덕트다. 난 이미 그곳에서 김C가 아니다.

- ‘오비덕트’는 무슨 뜻인가

= 여성의 생식기에 있는 수란관을 오비덕트(oviduct)라고 한다. 자궁이 있고, 수정을 하는 나팔관이 있는데, 자궁과 나팔관을 연결해주는 그 고리가 오비덕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연결고리가 없으면 탄생 자체가 불가능한 거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이 있고, 사람이 있어도 연결고리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나온 이름이다.

- 인스타그램을 보면 두 마리의 반려견이 눈에 띄더라

= 이름은 부기하고 줄루다. 까만 애가 줄루다. 축구선수 요한 줄루에서 따온 이름이다. 원래 부기가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어느 날 보호센터에서 줄루를 만났다. 얘를 보는 순간 이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랑 상의도 없이 아이를 데려왔다. 사실 나는 강아지를 그렇게 막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워낙 좋아하니까,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그때도 내가 한 마리면 되지 않냐, 고 그랬는데, 줄루를 보는 순간 할 말이 없더라.  아무래도 시간이 많으니까 함께 하는 시간도 많다. 함께 있다보니 내가 강아지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어린 시절의 개는 마당에 묶어놓고, 남는 음식 먹이는 그런 개념이었지 않나.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우리가 인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처럼, 개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더라. 개한테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사람이다. 사람이 몰라서 문제가 발생한 거지.

우리가 행복해도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것

 - 지난해 2월에는 촛불집회에서도 공연했다. 어떤 생각으로 나온 공연이었나

= 다른 공연이었으면 앞뒤를 가리고, 누가 주최자인지, 돈을 얼마나 줄 거며 어느 대상이 오는가등 여러가지를 고민했을 거다. 그런데 그 공연은 고려하는 게 없었다. 무조건이었다. 그냥 했다. 내가 늘 생각했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을 내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공연뿐이었던 거지. 나를 위해서 한 거다. 내가 늘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눈뜨고 봐줄 수 없는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 정확히 그 시기에만 갖고 있던 생각은 아니었을 것 같다

= 나는 언제나 불만 상태였고, 늘 이야기했었다. 방송에서나, 라디오에서나. 언제나 그런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논쟁을 해왔다. 유행처럼 있었던 말이 있지 않나. 넌 왜 그렇게 정치적이야? 이제는 그런 말도 안나온다. 정치는 삶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거지만, 그 당시에는 다들 우민화 정책에 휩쓸렸을 때였다. 음악가가 정치이야기를 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 방송하는 사람이나 문화예술인이 그런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것 말이다. 정치는 정치가들의 전유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거다.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언제나 마음이 그랬다.

- 그런 불만이 폭발한 시기가 2016년 가을부터였을 것 같다. 그때 가장 많이 생각한 게 있다면

= ‘우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 안에 내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우리‘라는 표현을 쓰지 않나. 사실 다른 나라에는 단어로는 존재해도, 일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단어다. 우리 집이 아니라 ‘내 집’이라고 하고, 우리 식구라고 안 하고 ‘내 식구’라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꾸 ‘우리’라는 표현을 써온 걸까. 내가 있는데... 우리는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아도, 우리가 행복하면 개인이 행복을 느낀디고 강요를 하지 않나. 그게 싫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가 행복하니까, 넌 행복감을 느끼라는 거다. 나는 그게 싫었고, 내 개인사도 내가 선택해서 지금까지 여기에 와 있는 거다. 또 내가 집회에 나갔던 이유다. 난 우리를 위해서 한 게 아니다. 나를 위해서 한 거지. 우리가 행복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건 행복하지 않은 거다.

 

ⓒYOONSUB LEE/HUFFPOSTKOREA
ⓒYOONSUB LEE/HUFFPOSTKOREA

- 김C와 절친인 윤도현과 강산에가 최근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김C가 갔다면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 사실 난 이미 2000년에 평양을 갔다왔다. 그때 평화통일 마라톤대회라는 행사 때문에 갔다가 묘향산도 갔었다. 노래는 안했지. 어떤 노래를 했을까. 잠깐 생각해봐야겠다.

- 강산에에게는 ‘라구요’라는 부를 수 밖에 없는 노래가 있다

= 산에형도 스토리가 많지만, 사실 우리 집안도 다 실향민이다. 집안 사람들이 다 함경도 북청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쟁 때 내려와서 강원도 고성에 모여 사셨다. 산에형하고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했다. 산에형 노래 중에 ‘명태’라는 곡도 그래서 나온 거였다. 오현명 선생의 가곡 ‘명태’를 샘플링 한 건데, 함경도 사투리로 랩을 해서 ‘명태’를 불러보자고 했던 거다. 그래서 둘이 함께 강원도 고성에 계시는 내 할머니를 찾아갔었다. MD녹음기를 켜놓고 할머니랑 대화하면서 녹음한 내용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강산에는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 평양공연에서도 ‘명태’를 불렀다. (편집자 주)

- 그래서 김C가 평양에서 노래를 불렀다면?

= 난 ‘서울기러기’라는 곡을 불렀을 거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나도 너처럼 브이자를 그리며 갈래’란 내용이 있다. 그리고 ‘생각’(아래 영상)이란 곡도 불렀을 것 같다. 사실 ‘뜨거운 감자’의 음악에는 나만의 삐딱선이 하나씩 있었다. 검열이나, 심의라는 게 있었지 않나. 기분이 되게 나쁜 거다. 그래서 아주 외설적이거나, 걸릴만한 내용을 우회적으로 표현해서 심의를 통과한 다음에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 거지. 사실은 이런 내용이야라고 말이다. ‘생각’도 ‘국가보안법’에 관한 이야기를 한 노래였다. ‘생각만 하는 걸로 나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고보니 어느 백화점 행사에서도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가사 내용을 정확히 말하면 ‘만질 수 없다고 해도 보는건 어때요. 가질 수 없다고 해도 생각만 하는건 좀 어때요’였다. 

 

- 과거 ‘1박 2일’의 김C는 멤버들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하는 느낌이어서 신선했다. 강호동이 한쪽에서 여행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김C는 그러던 말던 자기 페이스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할까? 지금은 나영석 PD가 관찰예능의 시대를 만들었다. 김C는 어쩌면 지금의 예능트렌드에 더 적합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다시 TV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계획도 갖고 있나

= 알고 지내던 PD들과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 그런데 예능이 있고, 교양이 있지 않나. 만드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있다. 예능 분야의 사람들은 강박이 있더라. 상업음악을 하는 사람처럼 부담감을 많이 가진다. 교양 분야 사람들은 그나마 조금 자유롭다. 장사하려는 목적이 없지는 않지만, 그게 우선은 아니라는 거지. 예능 쪽 사람들은 아무래도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그런데 나로서는 과정이 더 중요한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지금 흐름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내가 거기에 잘 녹아들었던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해서 ‘천하무적 야구단’을 가끔 유튜브에 찾아본다. 그때의 김C도 인상적이었다

= 그 포맷에서 좀 더 디테일한 걸 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때는 겉만 보여줬다. 나는 오랫동안 운동을 했던 사람인데,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운동을 잘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 쪽인 거 같다. 왜냐면 내가 운동을 잘했던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다. 그래서 이게 얼마나 괴롭고 힘든 건지 잘 안다. 이종범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왜 안되지?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안되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나, 운동을 배운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그 상황을 내가 설명해주는 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 방송이 만들어진다면, 가능할 거 같다. 너무 내자랑 같았나?(웃음)

- 지금 야구는 전혀 안하고 있나?

= 작년까지만 했다. 포토그래퍼들이 만든 야구팀이 있는데, 같이 하자고 해서 딱 한 시즌만 했다. 중견수랑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 신생팀의 첫 시즌인데 준우승까지 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 하고 나면 몸이 아프니까. 아픈 게 싫어서 운동을 그만두었는데, 계속 아프면서 하니가 내가 왜 또 이러고 있지? 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테니스만 치고 있다. 테니스는 일단 팀 스포츠가 아니니까 좋다. 내가 잘 몰랐는데, 내가 팀 스포츠가 안 맞더라. 어렸을 때 사진보고 깜짝 놀랐다. 선수단 애들이 다 캡모자를 쓰고 있는데, 나만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때 부터 팀스포츠랑 안 어울렸던 거지.

- 축구도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 축구도 완전 그만두었다. 하다보면 몸이 두꺼워진다. 여자친구가 스타일리스트라 나한테 옷입히는 걸 좋아하는데, 안되겠다고 하더라. 다리가 너무 두꺼워져서. 그래서 그만두었다.

- ‘중력의 여자’ 이후 또 다른 곡도 준비중인가 

= 디지털 싱글이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판이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불평불만만 할 수는 없다. 나도 적응해야지. 후반기 정도에 한곡정 도 더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쉽지는 않다. 이야기했던 대로, 지붕이 없으니까. 그와중에도 질적인 저하가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

*동영상 및 사진 : 이윤섭 (허프포스트코리아 비디오 에디터)

*장소제공: 에스프레소 코어(ESPRESSO 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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