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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20일 18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10월 16일 10시 34분 KST

[공덕동 휘발유] 기안84 약자 혐오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간과하는 것

기안84도, 네이버 웹툰도, MBC도 이 논란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네이버 웹툰
네이버 웹툰 '복학왕'

웹툰 작가 기안84의 미덕은 비상한 관찰력과 비틀린 묘사다. 다만 그에게 부족한 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다. 본 건 기가 막히게 재현하는데, 상상력이 모자란다는 소리다.

‘노병가‘로 데뷔해 ‘패션왕‘으로 인기를 얻고 ‘복학왕‘을 연재하는 동안 기안84의 만화가 끝없는 약자 혐오 논란에 휩싸였던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안84 세계관의 주인공 ‘우기명’은 주류 사회를 동경하는 평범한 20대 남성이다. 매체 출연으로 드러난 작가의 실제 모습이 이 캐릭터에 반영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우기명을 보며 기안84의 내면과 사상을 추정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한 작가는 에피소드가 양적 한계에 봉착하자 더 넓은 세계를 체험하고 공부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겪은 ‘틀린’ 생각들을 꺼내놨다. ‘필터 없는 것이 매력’이라 하니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주워 섬길 때도 필터를 장착하지 않았다.

기안84는 ‘복학왕’의 배경을 ‘취업률 1위, 등록금 1위, 자퇴율 1위, 출산율 1위‘인 기안대학교로 설정했다. 여기서부터 지방 소재 대학과 학생들을 향한 낡은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편견만으로 그린 세상을 단순히 심심풀이 땅콩처럼 팔며 ‘이것도 현실’이라는 무적의 변명 뒤에 숨는 식이다.

‘복학왕’으로 논란을 일으켜 작가가 사과하거나 원고를 수정한 사건이 이미 다섯 건이다. 밑도끝도 없이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캐릭터로 소환해 국방예산으로 술을 마시고, 잠든 여학생을 군침 흘리며 바라보는 중년 남성으로 그려 뭇매를 맞고 결국 만화를 고쳤다. 청각장애인을 비하하고 외국인인 생산직 노동자들을 차별적으로 묘사한 대목은 ‘편견의 재생산‘이라는 거창한 죄목을 붙이기도 아까울 정도다. 기안84 자신의 대학 후배부터 MBC ‘나 혼자 산다’에 함께 출연한 인물들을 허락 없이 웹툰 캐릭터로 바꾸며 저질적 묘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의 웹툰에 흐르는 건 언제나 혐오의 정서였다.

기안84를 다시 구설에 올린 건 20대 여성이자 인턴사원 봉지은이 40대 남성 팀장 등과 함께 한 회식에서 돌연 배 위에 조개를 얹고 비장한 표정으로 깨부수더니 정사원이 된 대목이었다. 그날 이후 봉지은은 팀장과 사귀게 됐다는 부분도 문제가 됐다. 독자들은 봉지은이 팀장에게 성상납을 해 정사원 신분을 따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라며 심각한 여성 혐오 표현임을 지적했다. 

 

뉴스1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

논란에 대한 기안84의 해명은 이렇다.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한단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수달‘이라니. 대한민국 대표 웹툰 작가가 클리셰를 넘어 사회적 합의 수준의 성적 암시를 해 놓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무마하려 든다. 만화 속 ‘조개를 꿰뚫는 기다란 물체’부터 봉지은과 팀장의 성관계 여부를 대놓고 묻는 ”잤어요?”라는 대사까지, 명백한 흐름이 보이는데도 ‘수달 타령’을 한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순한 것이라고 에두르는 꼴이다.

작가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하는’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하려 했다고 불민했던 자신을 사과했으나, 이게 진짜 사과인가? 회사 한 번 제대로 다녀 본 적 없을 기안84가 철 지난 ‘꽃뱀 프레임’으로 인턴과 여성들을 한번에 보내 버리는 ‘가성비 모욕‘만 하고 만 셈이다. 노동 유연성이 가속화되고 불경기가 심화되며 신음하는 인턴들, 그중에도 여성들이 ‘학벌 쌓고 스펙 쌓고 노력해도’ 결국 몸을 팔아 취직한다는 묘사에 공감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풍자는 약자가 아닌 강자를 향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굳이 달지 않더라도 말이다.

여태까지 기안84가 ‘복학왕’에서 봉지은을 그려온 방식들을 되돌아보면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작가는 일정 시점부터 이 캐릭터를 표현할 때 온라인에 떠돌던 소위 ‘보슬아치’의 특징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봉지은은 방학에는 유흥업소에 나가 돈을 벌고, 그곳에서 일하던 습관이 캠퍼스 생활에서도 종종 튀어 나온다. 그런 봉지은을 우기명은 ‘룸빵녀‘, ‘룸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봉지은의 위기는 언제나 ‘몸을 노리는’ 남자들에 의해 찾아온다. 그는 우기명의 꿈 속에서까지 세상 물정 모른 채 아파트를 조르고, 주변 친구들과의 생활 수준을 비교하며 남편을 들들 볶는 아내로 등장한다. 유구한 여성 혐오의 역사가 봉지은의 서사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소득당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8개 단체들이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웹툰 본사에 기안84의 네이버웹툰 '복학왕' 연재를 중단해달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안84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해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연구전임교수는 “젊은 몸을 자원 삼아 손쉽게 살아가는 ‘김치녀’와 ‘보슬아치’에 대한 망상·환상에 기초해 웹툰을 생산해내는 기안84의 세계관은 2010년대 초, 일베가 탄생하던 그 시점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또 ”아무리 고스펙 여성도 채용 단계에서부터 면접점수 조작으로 인해 각종 공기업과 금융업계에서 고용 성차별을 당하고 있음이 뉴스에서 여러차례 밝혀져도 기안84의 세계관은 김치녀 망상을 내려놓질 못한다”며 ”이 웹툰이 악의적인 것은 고용 성차별, 임금 성차별의 문제는 물론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의 엄혹한 현실을 자신의 몸과 젊음을 앞세워온 여성이 모두 다 만들어낸 것이라는 책임 전가에 있으며, 구조적 불평등의 현실 은폐에 있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의 말처럼 한국의 여성 혐오는 ‘보슬아치‘, ‘된장녀‘, ‘김치녀’ 같은 가상의 여성상을 만들어 ‘허수아비 때리기‘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예를 들어 일부 ‘국힙‘(한국 힙합)은 성형 범벅에 명품을 밝히는 여성을 쉽게 가사에 등장시켜 ‘꽃뱀화’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자신이 전 애인에게 차인 이야기거나 연애 대상으로 보는 여성에게 구애하는 이야기다. 성형과 명품 선호가 싫다면 안 만나면 그만이라는 진리를 무시한 채 한참을 앞서 나가 때려잡기부터 하고(실존하는 꽃뱀 사례 속 남성이 언제나 재력가였다는 점은 외면한다), 그 반대급부로 ‘개념녀‘라는 또 하나의 여성상을 만들어 여성을 저울질한다. 2020년 한국사회는 1913년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 속 심순애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혼이 팔린 물질만능주의자’로 묘사하던 때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EBS1
방송인 정영진

그나마 ‘단죄‘의 측면에서 본다면 변화는 있었다. 최근 생산된 여성 혐오들이 뭇매를 맞는 것은 물론, 과거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부메랑을 맞았다. 일례로 MBC 표준FM ‘싱글벙글쇼’의 진행자로 내정됐던 방송인 정영진은 EBS ‘까칠남녀‘에서 “남성들이 주로 데이트 비용을 지불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의 태도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매춘과 다르지 않다”고 했던 발언이 문제가 돼 결국 새 DJ 자격을 박탈당했다. 여성 혐오성 가사를 써 비판받은 중식이밴드는 문제를 인정하며 페미니즘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밴드의 프런트맨 중식이는 ”저는 ‘된장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SNS라는 곳은 만질 수 없지 않나. 왜 망상 속에서 신기루일지 모르는 것하고 싸워야 하나 생각했다”고 반성의 뜻을 밝혔다.

심지어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조차 가사 내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창작 의도와는 관계없이 여성 비하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많은 분께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며 ”자체 검토와 논의를 통해 음악 창작활동은 어떠한 사회의 편견이나 오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입장을 전해 박수를 받았다.

유독 철통급 비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기안84다. 그는 국내 최대 규모 네이버 웹툰의 대표 작가이고,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이며, 서울 역세권에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다. 논란에 휘말릴 때마다 반성과 깊은 고민을 약속하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기안84라는 원죄를 책임지려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기안84의 지지자들이 주창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다. 기안84에게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를 명시한 곳에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는다. 기안84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을 상대로 쏟아낸 유해한 편견과 차별적 인식이 가져온 피해보다 그의 자유와 낡고 알량한 재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무교육 과정에서 이미 ‘자유는 권리‘라는 점과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는 방종’임을 배웠다. 사실 숱한 논란의 횟수만큼 원고를 수정하면서도 기안84가 공식 사과한 건 딱 두 번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항의했을 때,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을 때. 사과문으로 대충 무마한 상황은 매번 배신으로 돌아왔고, 그의 자유는 방종으로 변질됐음이 명백해졌다.

물론 예술에 안전하고 도덕적인 표현만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기안84라는 캐릭터가 만든 거대한 차별과 혐오의 연대를 자유로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방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공개적인 공간에서 기안84님의 ‘특징‘을 동네방네 얘기하며 희화화한다면 그건 기안84님에겐 부당한 일이고, 상처가 되는 일이기에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안84님께서도 이런 식으로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할 정당성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안84님의 ‘광고에 의한 차별’로 청각장애인 당사자분들은 깊은 배제와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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