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쇼기 살해 사건과 관련,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5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미국 측은 ”진상 규명을 위한 첫 단계”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번 사건을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측근들은 전부 빠져 있어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CNN·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일란 알-샤일란 사우디 부장검사는 23일(현지시간)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법원이 살해에 직접 가담한 5명은 사형,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법을 위반한 3명에게는 총 2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카쇼기는 지난해 10월 2일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터키 이스탄불 소재 사우디 영사관에 갔다가 종적을 감췄다. 지금까지 공개된 수사 내역에 따르면 그는 사우디 정부 소속 ‘협상팀’ 15명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후 토막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유엔 특별 조사관은 카쇼기가 사우디 왕실의 권력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 온 점을 토대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살해를 지시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왕세자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왕세자는 올 초 미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내 감시 하에 일어난 살인 사건이기에 그 책임을 인정한다”면서도 ”그 일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졌다”고 선을 그었다.

사우디 검찰이 기소한 11명 가운데 3명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도 거세다.

실제 이날 무죄로 풀려난 3명 중 2명은 아흐메드 알아시리 전 정보부 차장과 사우드 알카흐타니 전 수석 보좌관으로, 두 사람 모두 왕세자의 최측근이었다. 특히 알아시리는 이 작전의 최종 책임자로 알려져 있는데도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무함마드 알오타이비 전 이스탄불 총영사도 무죄가 선고됐다. 알카흐타니와 알오타이비는 이 사건과 연루됐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오른 상태다.

국제사회는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자말 카쇼기 살해는 끔찍한 범죄였다. 사우디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다시는 이런 잔학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터키 외무부도 성명을 내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면서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한참 못 미치는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엠네스티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우디 정부 관리들이 카쇼기는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 실망시켰다”고 지적했다.

반면 빈 살만 왕세자와 사이가 좋은 미국 행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중요한 발걸음”이라는 평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사우디 왕실 편을 들어왔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이날 로이터에 ”(사우디 법원의 판결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라며 ”우리는 사우디가 공정하고 투명한 사법 처리를 계속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