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으로 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일했으며, 영화 ‘히든 피겨스’의 실존 모델이 된 수학자 캐서린 존슨이 사망했다. 향년 101세.
존슨은 달의 궤도를 계산함으로써 인간 달 착륙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공식 덕분에 미국은 1969년 아폴로11호를 달로 쏘아올릴 수 있었다.
1918년생인 그는 만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대학을 마친 후 흑인 학교 교사로 일했으며,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교 대학원 최초의 흑인 여학생으로 수학을 공부했다. NASA의 전신인 NACA의 랭글리 연구소 소속 계산원(당시 공식 직책명은 ‘컴퓨터’) 중 한 명으로 취업돼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이다. 임시직이었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기회가 온 두 번째 커리어였던 셈이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NACA는 기계 컴퓨터가 계산한 내용을 여성 인력으로 꾸려진 스무명 가량의 ‘인간 컴퓨터’팀이 다시 계산해봄으로써 확인하도록 했다. 우주인들이 종종 오류가 발생하곤 했던 당시 컴퓨터에만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나오듯 당시 미국 사회는 흑인을 제도적으로 차별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드물었기에, 흑인 여성이 정부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에 대해 백인 남성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존슨은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능력 있는 수학자로 인정 받았다.
존슨은 과거 인터뷰에서 훗날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한 우주인 존 글렌이 자신에게 ”그 여자를 불러 계산하게 해라”, ”존슨이 맞다고 하면 나도 나갈 준비가 됐다”고 말하는 등 그로부터 신뢰를 받았다고 한 바 있다. 글렌의 지구 궤도 비행 등 존슨의 계산을 토대로 한 여러 우주인들의 시도가 성공하면서,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NASA는 설명한다.
존슨은 1986년 퇴직했으며,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다.
존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4일, NASA는 공식입장을 통해 조의를 표했다. 짐 브리든스틴 NASA 국장은 추모 성명에서 ‘존슨은 우리 국가가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우주를 탐험하고자 하는 여성과 유색인종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히든 피겨스의 원작이 된 동명의 책을 쓴 작가 마고 리 셰털리는 ”캐서린 존슨이 NASA, 과학, 우리나라에 기여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생의 영광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꿨다”며 존슨을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