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공화당)은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주에 열린 대선후보 1차 토론에서 트럼프는 시도때도 없이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의 말을 끊었고, 자신이 말할 차례가 아닌데도 자기 말을 했다. 베테랑 언론인이자 이날 사회자로 나섰던 크리스 월리스가 여러 차례 제지해보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7일(현지시각) 열린 부통령 후보 토론에 나선 펜스 부통령도 토론 상대인 민주당 부통령 후보 카말라 해리스의 말을 끊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소용 없었다. 전혀.
″부통령님,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해리스가 펜스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펜스는 ”제가 끼어들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끼어들지 못한 채 해리스의 발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펜스는 이후 다시 한 번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물론, 역시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부통령님,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펜스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이후 다시 한 번 끼어들기를 시도했는데, 그 놀라운 의지에도 불구하고 해리스의 ‘철벽방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부통령님,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해리스가 이번에는 미소를 띠며 말했고, 펜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펜스가 결국 끼어들기에 ‘성공’한 다음 잠시 말을 이어가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으시면 제가 발언을 끝낼 수 있게 해주시고요, 그런 다음에 대화를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죠? 그렇게 하죠.”
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멈췄다.
치열하게 토론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을 끊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고, 그게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에게, 이건 전혀 낯설지 않은 어떤 장면이었다. 누구나 남성, 특히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성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말을 끊고 들어왔던 경험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NBC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이날 펜스가 끼어든 횟수는 16회로, 해리스(9회)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2014년 조지워싱턴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대화 상대방이 남성일 때보다 여성일 때 33%나 더 많이 끼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 우조 아우바는 ”모든 어린 소녀들이 저 말을 들었기를 바란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모든 어린 소녀들이 저 말을 들었기를 바란다.
CBS뉴스의 메이저 가렛은 ”많은 미국 여성들이 저 말을 듣고는 ‘어떤 기분인지 알지... 내가 말하고 있고, 내가 말할 수 있게 내버려두라는 거지’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토론이 끝난 후, CNN에서는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패널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글로이아 보거는 해리스의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발언이 갖는 의미, 즉 남성들이 자꾸 무례하게 여성들의 말을 끊어먹는 것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다.
그 때, 또 다른 패널로 출연한 릭 샌토럼 전 하원의원(공화당)이 불쑥 끼어들었다.
″샌토럼 의원님,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보거가 말했다.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이날 토론의 하이라이트로 꼽기에 손색 없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