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1년 10월 14일 16시 31분 KST

“아이를 낳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한국도로공사 정대영은 육아휴직을 쓴 최초의 배구 선수다

런던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이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여자배구 최고령 선수인 한국도로공사 정대영.

그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2010년 2월 아이를 낳고 난 뒤 2년간은 특히 더 번민했다. ‘내가 굳이 왜 이러고 있을까. 아이는 엄마 찾아 우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는 배구공을 내려놨다. 그래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 정대영’ 이전에 그는 ‘선수 정대영’이었다. ‘여기서 내가 관두면 어떤 선수도 앞으로 할 수 없을 거야. 내가 지금 해야지만 후배들도 할 수 있어.’

배구 선수 최초의 육아휴직(1년) 뒤 정대영(한국도로공사)은 코트로 돌아왔고 그 후로도 계속 코트를 지키고 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한 살. 2021~2022 V리그에 출전하는 여자배구 선수 중 최고령이다. 올해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팀에 입단한 ‘배구 레전드’ 홍지연의 딸 이예담과는 22살 차이가 난다.

정대영은 V리그 출범(2005년) 한참 전인 1999년 데뷔했다. 이후 강산이 두 차례 바뀐 것처럼, 두 차례 이적(현대건설→GS칼텍스→도로공사)을 했다. 지난 시즌(2020~2021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나이를 무색게 한다. 시즌 막판까지 한송이(KGC인삼공사)와 경쟁 끝에 블로킹 부문 공동 2위(세트당 0.70개)에 올랐다. 공격성공률은 35.11%였다.

최근 김천 훈련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한 정대영은 “이전 시즌(2019~2020시즌)에 성적이 바닥이었던 터라 체력, 볼 훈련을 더 열심히 했다”고 밝혔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체력적으로 안 떨어지고 실력을 유지하려고” 혼자서 필라테스를 하고 보강 운동, 웨이트 트레이닝도 따로 한다. 이런 노력으로 팀 체력테스트를 하면 중상위권을 유지한다.

정대영의 최대 강점은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이다. 센터 포지션이지만 리시브 능력도 탁월하다. “리베로가 없던 시절에 배구를 시작해서 중, 고등학교 때 기본기 훈련만 매일 1시간 이상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키가 1m85로 센터치고는 다소 작은 듯하지만 네트 앞에서는 1m90 이상 못지않은 플레이를 해낸다. 상대 공격수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이 좋고 순발력도 뛰어나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블로킹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이유다.

여자배구는 도쿄올림픽 4위 영광 이전에 2012 런던올림픽의 기적이 있었다. 당시 정대영은 김사니(은퇴)와 함께 대표팀 최고참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여자배구를 36년 만에 올림픽 4강에 올려놨다. 정대영은 “도쿄 대회를 보면서 우리 때보다 더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 아쉬운 점도 있었다. (김)사니와 통화하면서 ‘우리가 런던 때 메달을 땄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면서 “그래도 런던 때와는 대회 직후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때는 배구 붐이 안 일었는데 지금은 배구를 해보겠다는 유소년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정대영 선수 제공
한국도로공사 정대영(오른쪽)과 엄마를 따라 배구 선수의 길을 가고 있는 딸 김보민.

그의 초등학교 5학년 딸(김보민)도 배구 선수다. 어릴 적부터 체육관에서 뛰어놀며 자라서 그런지 5살 때부터 배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고 도로공사의 통합 우승(2017~2018시즌)을 지켜본 뒤에는 “엄마 같은 배구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엄마 앞에서는 표현을 잘 안 하는 딸이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도 런던 때 4강 갔어”라고 자랑을 한단다. 정대영은 “지금 딸의 키가 1m68이다. 배구를 늦게 시작한 편인데 주위에서 배구 센스는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면서 “엄마의 딸이라는 부담감을 버리고 ‘나는 김보민이야’라는 생각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대영은 배구에 대해 “해도 해도 어려운데 퍼즐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재밌다”고 했다. 더불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 것을 만들어 코트에서 응용하게 되는데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 성취감이 있다”고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커튼을 젖힐 때마다 ‘오늘은 하루 쉬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매일같이 ‘선수 정대영’의 일상을 채워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 27년 동안 이어온 배구 선수의 삶은 무릎, 어깨 등 그의 몸 곳곳에 생채기를 냈다. 경기 전 소염진통제를 먹고, 저녁에 잠들기 전마다 ‘내일은 덜 아프면 좋겠다’고 머릿속으로 되뇔 정도로 힘든 나날이 이어지지만 배구 후배들, 그리고 딸을 생각하면서 참고 버틴다. 그가 새롭게 닦은 길을 장차 후배들이, 그리고 딸이 걷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정대영의 바람이다. 프로 23번째 시즌을 맞는 정대영은 “올해도 블로킹 1등에 도전하겠다”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