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거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가만히 있을 때도 체내에서는 생명 유지를 위한 기초 신진대사 활동이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별한 생각 없이 `멍 때리기‘를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활동하는 뇌 부위를 `기본모드네트워크’(DMN)이라고 부른다. 2001년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이 처음 발견한 기본모드네트워크는 뇌의 앞쪽 전두엽 피질, 뒤쪽 대상 피질, 측두엽, 두정엽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이 부위를 처음 발견했을 땐 휴식 중에만 활성화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나중엔 공상이나 계획 수립, 미래 상상을 할 때도 활성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력의 원천지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인 셈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기본모드네트워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파악하지 못했다. 앞쪽과 뒤쪽 두개의 하위 영역으로 나뉘어 활성화한다는 건 알았으나, 두 영역의 구체적 역할이 무엇인지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최근 그 베일의 일부가 벗겨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미래를 상상할 때 기본모드네트워크의 두 개 하위 영역이 각각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발견해 국제학술지 신경과학저널’(Journal of Neuroscience)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본모드네트워크의 두 하위 영역 중 하나는 상상 시나리오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다른 하나는 이를 평가하는 일을 한다. 이는 뇌가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감정을 분리해 처리한다는 걸 뜻한다.
연구진은 기본모드네트워크의 작동 기제를 파악하기 위해 여성 13명과 남성 11명을 대상으로, 상상하는 동안의 뇌 활동을 기능성 MRI(자기공명영상장치)로 촬영하는 실험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우선 실험 참가자들에게 7초 동안 가상의 상황이 적힌 32가지 문장을 프롬프터에 띄워주고 이 가운데 하나를 읽도록 했다. 예컨대 “열대지방 섬의 따뜻한 해변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내년에 복권에 당첨됐다고 상상하십시오”같은 내용이다.
그런 다음 12초 동안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이어 14초 동안 자신이 생각한 상황이 얼마나 생생한지, 그리고 상황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주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생생함은 머리 속에서 그 상황이 얼마나 자세하게 그려지는지를, 감정 평가는 그 상황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네 차례에 걸쳐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그 때마다 연구진은 뇌의 활동을 관찰했다.
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앞쪽 네트워크는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상황이 생생할수록 활동이 더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나리오의 내용 자체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상상한 상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활성화 정도는 모두 같았다. 반면 뒤쪽 네트워크는 부정적 상황보다 긍정적 상황에서 더 활성화됐다.
연구를 이끈 조지프 케이블 교수(심리학)는 “앞쪽 네트워크는 상상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관여하며, 뒤쪽 네트워크는 상황에 대한 평가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뇌가 어떤 특정 상황에서 이렇게 뚜렷하게 영역별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상상력의 기반을 이해하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상상 시나리오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해서만 평가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더 복잡한 평가 실험을 통해 상상력의 비밀을 더 벗겨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겨레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