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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주현영이 '인턴기자' 논란에 대해 "경험에서 가져온 캐릭터로 비하 의도는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주기자가 성장하는 동안 주현영도 함께 크고 있다.

배우 주현영.
배우 주현영. ⓒ에이아이엠씨 제공

“네, 젊은 패기로 신속·정확한 뉴스를 전달한다. 안녕하세요. 인턴 기자 주! 현! 영! 입니다.”

이런 인사말을 예상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에이스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배우 주현영은 여유로운 (척하는) 미소를 지으며 주먹악수를 청했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된 <에스엔엘(SNL) 코리아 9> 속 ‘인턴 기자’의 잔뜩 굳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만 갑자기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살짝 달뜬 25살 신인 배우의 모습이 있었다.

지난 9월 그가 선보인 ‘인턴 기자’ 꼭지의 첫번째 하이라이트 영상은 유튜브에서 3일 현재 600만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과도한 의욕을 보이며 뉴스 리포트를 하던 인턴 기자가 안영미 앵커의 공격적인 질문에 당황하다 끝내 울먹이며 화면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이 큰 화제를 모았다. 20대 사회초년생 여성 비하 논란도 일었지만, 1만2000여 댓글을 보면 “대학생 때 발표하던 내 모습 같다” “연기 천재다” 등 공감과 극찬을 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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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엔엘>에서 ‘인턴 기자’로 출연한 주현영. ⓒSNL

“논란이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 경험에서 가져온 캐릭터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건 알게 됐죠. 그래도 논란보다는 공감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놀라면서도 좋았어요.”

‘인턴 기자’로 코미디언 이미지가 짙어졌지만, 사실 그는 정극 연기를 공부한 배우다.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학생 콩쿠르 입상까지 했던 그는 중학생 때 교회에서 연극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연기할 때의 짜릿함”에 눈을 떴다. 연기자로 꿈을 바꾸고 부모님 몰래 서울공연예술고에 지원해 합격했다. “너무 힘든 길”이라며 반대했던 부모님을 설득한 건 7살 터울의 쌍둥이 언니들이었다. “우린 못했지만, 현영이는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어.”

대학교 연극과에 진학한 그는 학생 신분이던 2019년 단편영화 <내가 그리웠니>로 데뷔했다. 이어 웹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진흙탕 연애담>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에스엔엘> 오디션 얘기를 듣고 지원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대학 모꼬지 등에서 선배들이 장기자랑 시키면 했던 게 있어요. 일본 가수가 처음으로 한국 팬들 앞에서 한국 노래(박효신의 ‘눈의 꽃’)를 어설프게 부르는 상황극을 했더니 바로 합격됐죠.”

<에스엔엘>에서 애초 그가 준비한 캐릭터는 정치 풍자극의 젊은 당 대표였다. 공약을 발표하는 20대 정치인을 연기하기 위해 대학 토론 배틀 영상 등을 찾아봤다. “똑똑한 분들인데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당황하면서도 당황하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어요.”

<에스엔엘></div>에서 ‘인턴 기자’로 출연한 주현영(왼쪽).
<에스엔엘>에서 ‘인턴 기자’로 출연한 주현영(왼쪽). ⓒSNL

돌이켜보면 자신도 그랬다. “대학교 강의에서 발표했었던 자료를 찾아봤어요. 떨지 않고 말하려고 준비한 대본이 있더라고요. 토씨 하나하나 다 달고, ‘숨 쉬는 구간’ ‘여기선 살짝 웃기’ 같은 것까지 다 써놨더라고요. 계획대로 완벽하게 잘하고 싶었으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나 상황이 닥치면 당황하고 떨리기 시작하면서 발표 내용이 산으로 간 경험이 떠올랐어요.”

준비하던 당 대표 캐릭터는 사라졌지만, 대신 인턴 기자 캐릭터로 그 특징을 이어갔다. “당황하면 성대 근육이 긴장되면서 조이기 시작하거든요. 그럼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까지 고여요. 그 상황을 헤쳐나가려 하기보다는 속으로 자책만 하다 결국 끝마무리를 하지 못하게 되는 걸 연기한 거죠.” 옷매무새 챙길 정신조차 없는 상황을 표현하고자 일부러 한쪽 소매만 살짝 접기도 했다. “설마 했는데 이런 디테일까지 알아보고, 제 목소리와 제스처를 분석하고 의도를 알아봐 준 댓글들을 보며 행복하고 뿌듯했어요.”

매번 비슷해 보여도 주 기자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접었던 소매를 펴고 앵커의 질문에 덜 당황하며 어떻게든 리포트를 마무리 지으려는 모습이 드러난다. “처음엔 한두 번 하고 끝낼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 기자가 성장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는 응원의 댓글들을 본 거죠. 결국 제작진과 회의하면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캐릭터로 가보자고 결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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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엔엘>에서 ‘인턴 기자’로 출연한 주현영(왼쪽). ⓒSNL

8회부터는 아예 ‘주 기자가 간다’라는 꼭지를 내걸고 대선 후보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홍준표·심상정·윤석열 후보 인터뷰 영상이 공개된 데 이어, 이재명 후보 인터뷰가 오는 6일 공개되는 이번 시즌 마지막 방송에 나간다. 후보자의 장황한 발언은 과감하게 끊는 등 주눅 들지 않고 나름 당당하게 인터뷰하는 주 기자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주 기자가 간다’를 하자고 했을 때,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너무 겁먹으니 제작진이 ‘네 캐릭터가 미숙함이니 미숙해도 괜찮아. 상황에 맡겨봐’ 하시더라고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처럼 해보자, 동네 할아버지, 엄마 친구 만나는 것처럼 해보자 했어요. 그래도 어렵더라고요.”

그는 요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중국 코미디 영화의 대부 저우싱츠(주성치)의 팬이고, 코미디언이 돼볼까 했을 정도로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에스엔엘>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하늘처럼 높으신 이병헌, 조정석 등 대배우들과 연기하고 장차 대통령이 될 분까지 만나고 하는 게 이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어요. 여전히 꿈만 같고 실감이 안 나요.” 연기자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도 요즘은 “너 때문에 웃는다”며 응원해주신단다. <에스엔엘>을 제작하는 에이스토리의 매니지먼트 자회사 에이아이엠씨와 계약해 소속사도 생겼다.

<에스엔엘></div>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를 인터뷰하는 주현영(오른쪽).
<에스엔엘>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를 인터뷰하는 주현영(오른쪽). ⓒSNL

하루아침에 ‘벼락 스타’가 됐지만, 연기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는 이제부터다. 현재 웹드라마 <일진에게 찍혔을 때> 세번째 시즌을 찍고 있고, 12월 초부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에 들어간다. 주연 박은빈의 친구 역할이다. 광고 촬영도 몰려들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인턴 기자 캐릭터가 너무 강하게 박혀서 다른 연기를 하기 힘든 거 아니냐고 걱정하세요. 저도 걱정되는 한편 오기도 생겨요. 정반대 캐릭터도 소화하며 다양한 영화·드라마에서 제가 가진 것들을 다 꺼내서 쓰고 싶어요. 나중엔 연극·뮤지컬도 하고 싶고요. <빨래> 같은 소극장 뮤지컬이 하고 싶어서 노래 레슨도 받았거든요.”

넘치는 의욕에 들떴던 그는 갑자기 얼굴 표정을 다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오기를 가지고 잘하려고 하다가 또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슬퍼하고 낙담하겠죠? 사실 정답을 모르겠어요. 무작정 잘해야 돼 하기보다는 또 실수하고 틀릴 수 있다는 걸 알면,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주 기자만 성장한 게 아니었다. 배우 주현영도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하는 대신 성장통을 곱씹으며 한뼘씩 성장하는 듯 보였다. 인턴 기자가 언젠가 베테랑 기자가 되듯이, 주현영도 대배우가 되어 <에스엔엘>에 호스트(주인공)로 출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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