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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직 대법관이 “수정헌법 2조 폐지” 말한 역사적 이유

수정헌법 2조에는 총기 소지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Bill Clark via Getty Images

미국의 전직 연방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98)가 총기 소유의 권리를 명시한 미국의 수정헌법 2조가 ‘구시대의 산물’이라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미국 독립 초기인 1791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티븐스는 27일 뉴욕 타임스에 ‘수정헌법 제2조를 폐지하자’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이 조항이 잘못 해석된 역사를 간략히 설명했다. 그는 “수정헌법 2조는 연방의 상비군이 각 독립된 주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만든 조항”이라고 밝혔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국 초창기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세기 후반 미국이 막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건국 초창기, 13개 주의 대표자들은 연방 차원에서 상비군을 운용하면 연방정부가 각 주의 자치권을 폭압할 우려가 있다고 여겼다. 이에 각 주가 자치 민병대를 확보할 권리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 수정헌법 2조(1791년)다.

이 조항의 해석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잘 규율된 민병대의 조직’에 부합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해석과 민병대를 조직할 권리와 상관없이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조항이라는 해석이다.

1939년의 미국 대법원 판례는 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스티븐스는 기고에서 “1939년 대법원은 의회가 총열이 짧은(18인치 미만) 엽총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금지할 수 있다고 만장일치로 판결을 내렸다”며 “그 이유는 이 총이 ‘잘 규율된 민병대’의 유지나 향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대법원의 판례는 2008년까지 대량살상무기 등을 규제하는 근거가 됐다.

1939년 대법원 판례에 이의를 제기하며 민병대를 조직할 권리와 상관없이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조항이라는 식의 해석을 주장하고 나선 건 미국 총기협회(NRA)다. 스티븐스는 “워렌 버거 대법원장이 재임하던 1969년부터 1986년까지 연방과 주 단위의 판사 그 어느 누구도 수정헌법 2조의 이러한 적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후 연방이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총기협회가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미국 총기협회(NRA) 주장대로 이 조항의 해석이 뒤집힌 것은 ‘워싱턴 시 대 헬러’의 판결이다. 2008년 무장경비대 소속인 딕 헬러는 ‘권총의 소유를 금지하고 개인 집에서 소총과 엽총을 보관할 때는 총알을 장전하지 않거나 안전장치를 걸어 둬야 한다’는 워싱턴 DC의 총기 규제 법안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콜롬비아 자치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해당 재판에서 대법원은 5대4로 “민병대와 상관없이 개인이 총을 소유할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 소송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은 총기협회가 댄 것으로 유명하다.

스티븐스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당시 5대4의 판결에서 나는 반대 쪽 4명 가운데 하나였다”며 “나는 아직도 해당 판결이 잘못됐다고 확신하는데, 이 판결이 총기협회의 ‘엄청난 선동 무기’가 됐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워싱턴을 포함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수백만 명의 시위대가 플로리다주 더글러스 고교 총기 난사 사건 같은 참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이 있었다. 엔비시(NBC) 등이 워싱턴에서만 주최 쪽 추산으로 80만 명이 참가했다고 전했을 만큼 대대적인 규모였다. 당시 시위 현장을 취재한 한겨레 기자는 “12일 정오로 예정된 행사장에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행사장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관련 기사 : “총기에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 워싱턴 뒤덮은 80만 함성)

시위 물결이 이처럼 번지는 이유는 총기 난사 사건이 지난 수년 사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49명이 사망한 올랜도 나이트클럽 참사, 2017년 58명이 사망한 라스베이거스 참사에 이어 지난 2월14일에는 플로리다주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17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전 대법관이 직접 ‘수정헌법 2조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건 미국 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카고 트리뷴은 “스티븐스 전 대법관의 주장은 파크랜드 총격 사건으로 격발한 분노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개헌을 하려면 38개 주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트럼프가 30개 주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 조항을 폐지하려면 힐러리가 승리한 모든 주의 승인을 얻고도 18개 주를 더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스티븐스의 의견을 보도하며 수정헌법 2조의 존속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이 매체가 이코노미스트, 여론 조사기관 유거브(yougov)와 손을 잡고 실시한 해당 조사를 보면, 수정헌법 2조 폐지에 찬성한 쪽은 21%뿐이다. 반면 존속을 바라는 여론은 60%였다.

스티븐스 전 미국 연방대법관은 27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의 기명 칼럼(op-ed)을 통해 “수정헌법 2조는 18세기의 산물”이라며 “폐지해야 할 때”라며 이런한 역사적 맥락을 소개했다. (▶관련 기사 : 100살 바라보는 미 전직 대법관 호소 “수정헌법 2조 폐지하자”)

그는 “어린 학생들과 그 지지자들이 워싱턴과 전국의 다른 도시들에서 시위하면서 이 정도로 시민적 참여를 하는 걸 일생 동안 본 적이 드물다. 이들의 시위가 반자동 화기의 민간 소유를 금지하고, 총기 보유 제한 연령을 18살에서 21살로 높이는 등의 문제 해결에 힘이 될 것”이라면서도 “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은 시위대가 수정헌법 2조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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