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08월 09일 10시 47분 KST

더 웃으라고? 바이든의 '여성 부통령' 후보를 둘러싼 논의에서 드러난 성차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은 여성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할 계획이다.

ASSOCIATED PRESS
(자료사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되는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 

시카고 (AP) - 그(She)는 너무 야심적이야. 그는 공손하지 않아. 그는 더 웃어야 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를 둘러싼 논의가 정치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이고 있다. 바이든과 그의 참모들은 포용과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후보를 찾아 고심을 거듭하는 중이다.

그러나 정작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 내부의 나이 많은 기득권층과 젊은 세대들 간의 분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젊은 세대는 젠더나 인종에 따른 편견에 훨씬 더 민감하며,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분열이야말로 바이든이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야 할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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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은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를 여성으로 지명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곧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여기까지 먼 길을 왔음에도 여성을 남성 후보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예의를 갖춰 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의장을 지냈던 도나 브라질의 말이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바이든은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겠다고 직접 밝힌 바 있으며, 곧 후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 발표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 이뤄질 수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바이든의 참모들이 끼어들면서 논쟁이 격화될 때도 있었다.

지난 3일, 전 DNC 의장이자 바이든의 측근인 에드 렌델은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그는 라이스가 TV 출연 도중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건 ”그가 그렇게 선뜻 하지 않는” 일이라며 ”의외로 약간 매력적인(charming)” 면모를 봤다고 했다.

76세인 렌델은 후보로 거론되는 다른 인물의 처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주 CNN 인터뷰에서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의도치 않게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같은 발언은 수십년 동안 정치권에서 여성들을 괴롭혀왔던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깎아내리고, 딱히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이 간다는 이유로 여성을 칭찬하는 발언을 일삼는 행태에 대한 지적이다.

렌델은 3일 AP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라이스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칭찬의 말을 했을 뿐이며, 그가 좋은 후보라는 점을 말하려던 것이라고 했다. (1960년대 연이은 선거 패배로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를 뒤로하고) 부활했던 닉슨이 더 많이 웃는 모습을 보였던 것에 대해 사람들이 언급하던 것과 자신의 발언이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도 했다.

″이 나라는 미쳐돌아가고 있다.” 그가 자신의 발언에 대한 비판을 두고 언론에도 잘못이 있다면서 한 말이다. ”제정신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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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도 부통령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부통령 선정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 도드 전 상원의원(코네티컷)이 해리스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해리스가 당시 토론에서 바이든을 공격했던 일들을 별로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해리스가 너무 야심만만하다는 이유로 그를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다.

2018년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 나섰던 스테이시 에이브럼 전 조지아주 하원의원은 단지 자신이 부통령이 될 자격을 갖췄다는 것을 대놓고 내세워 홍보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는 유색인종 여성이나 ”야심 있는 여성”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무언가 좀 다르게 하면, 남성들에게는 일반적인 그런 기준에 맞추면, (남성들이 다 하는 그런 행동인데도) 여성이나 유색인종에게서는 잘 볼 수 없었던 것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된다.” 그가 MSNBC 인터뷰에서 말했다.

라이스는 흑인이다. 해리스는 부모 모두가 이민자다. 부친은 자메이카에서, 모친은 인도에서 왔다.

이들에 대한 언급과 비판이 바이든(77)과 오랜 관계를 맺어온 고령의 백인 남성들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흑인 여성 정치인들의 세력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 ‘Higher Heights for America’의 글린다 카 회장은 현재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겠다고 느낄” 남성 지도자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반응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인물을 거론하지는 않은 채 이들을 ”멸종을 앞둔 공룡”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선거캠프가 조속히 후보 지명 절차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 지명 절차가) 길어질수록 그 효과는 반감될 거라고 본다. 모두가 논쟁에 끼어들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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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스테이시 에이브럼 전 조지아주 하원의원.

 

2016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걱정하는 민주당으로써는 후보자의 젠더에 초점을 맞춘 언급들과 이에 대한 언론 보도들이 달갑지 않다. 민주당 인사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에서 패배한 데에는 (언론 등의) 성차별적 태도도 영향을 끼쳤다고 믿는다.

이들은 바이든부터가 부통령을 지냈고, 세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 만큼 야심있는 인물이라고 지적한다. 설령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 현 부통령이 대통령 자리를 노린다고 해서 그를 비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부통령 후보를 둘러싼 지금의 논의들에서 남성이 후보로 거론됐을 때에 비해 (각 인물들의) 모티브나 처신, 성격적 특성에 훨씬 더 큰 초점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의 베테랑 전략가 앤주안 시라이트는 언론이 분열을 부추기고 새롭게 떠오르는 정치 지도자들의 흠집을 찾아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통령 후보 선정을 위한) 이 절차가 일각에서 의도하는 것처럼 당의 핵심이 되는 두 흑인 여성에게 상처를 남기고 이 나라를 분열시키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바버라 윌리엄스-스키너 목사는 미국이 글로벌 팬데믹과 인종차별을 비롯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될 사람이 평생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겪은 대한 경험이 있다는 게 더 나은 지도자의 자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에게 흑인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던 100인의 흑인 종교인들 중 하나다.

″여성들에게는 언제나 더 힘들었다. (여성이) 그 정도의 권력을 갖는 자리에 올라가면 (성차별과 인종차별적인 공격에 맞선) 싸움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그걸 예상하고 있어야만 하는 거다.”

그는 남성 정치인들의 경우에는 ”훨씬 타당한” 공격을 마주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들도 똑같이 공평하게 대우받는 그런 날을 보고 싶다.” 그가 말했다. ”아직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