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07월 04일 14시 06분 KST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착취를 도운 전 애인 길레인 맥스웰이 도피 끝에 체포됐다

미국 사교계 거물로 미성년 성착취 혐의로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성년 성착취 혐의로 수감 도중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방 사교계의 거물 제프리 엡스타인(사망 당시 66살)의 최측근 길레인 맥스웰(58)이 도피 끝에 체포됐다. 맥스웰은 엡스타인의 성착취를 조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체포로, 미성년 성착취 의혹을 받고 있는 앤드루(59) 영국 왕자 등 엡스타인의 사교 모임에 어울렸던 유명 인사들의 행각 전모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ASSOCIATED PRESS
7월 2일 체포 과정 브리핑 중 공개된 엡스타인 생전 두 사람의 사진.

맥스웰은 2일(현지시각) 아침 미국 뉴햄프셔주 브래드퍼드의 한 호화 별장에 숨어있다가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맥스웰은 성범죄 및 위증 등의 혐의로 체포된 직후 뉴햄프셔 연방지방법원으로부터 자신의 사건이 기소된 뉴욕 법원으로 이송 명령을 받았다.

연방수사국 뉴욕 지국의 윌리엄 스위니 부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맥스웰의 행방에 대해 은밀하게 탐지해왔다”며 “최근 들어 그가 뉴햄프셔의 호화 부동산으로 도피해 특권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뉴욕 남부지검은 맥스웰이 엡스타인을 위해 미성년을 유인한 것을 포함해 성범죄 공모와 위증 등 6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맥스웰이 유죄 확정시 최대 35년의 징역형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맥스웰 사건을 맡고 있는 오드리 스트라우스 검사(뉴욕남부지검장 대행)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맥스웰은, 엡스타인이 미성년 희생자를 골라 사귀게 하고, (성적으로) 길들이는데 도움을 주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때때로 맥스웰도 그 성착취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스트라우스 검사는 “맥스웰이 희생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여성인 척 행동하며, 덫을 놓았다”고 비난했다.

[넷플릭스 다큐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예고 영상]

검찰은 이날 공개한 16쪽의 공소장에서 엡스타인과 맥스웰을 “개인적, 사업적 관계”로 규정했다. 두 사람이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엡스타인이 맥스웰에게 “여러 재산들을 관리하게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맥스웰이 엡스타인에게 마사지를 하도록 자신들을 유인한 뒤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맥스웰은 “생활, 학교, 가족 등에 대해 질문을 하며 피해자들과 친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 소녀들에게 쇼핑과 영화 관람을 시켜주는 식으로 친분을 쌓은 뒤 피해자들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고 성적 얘기를 하며 성착취를 일상화했다. 이런 성적 길들이기는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와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엡스타인의 저택이나 뉴멕시코의 산타페 목장, 런던의 집에서 주로 벌어졌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맥스웰은 미성년 피해자 앞에서 엡스타인에게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고, 때로는 그들에게 “전라나 반라의 상태로 성적인 마사지를 포함한” 마사지를 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공소장에는 멕스웰이 “미성년 피해자를 성착취할 때 함께 있거나, 동참하기도 했다” 적혀 있었다.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중
가장 왼쪽이 앤드류 왕자, 가운데는 폭로한 피해자 버지니아 주프레, 가장 오른쪽이 피해자를 앤드류에 소개한 길레인 맥스웰.

맥스웰의 체포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의 ‘성추문 의혹’도 재점화될 조짐이다.

앞서 엡스타인의 피해자 중 하나인 버지니아 주프레는 맥스웰이 자신을 엡스타인의 모임에 유인했다고 고소한 바 있다. 주프레는 고소장에서 엡스타인 뿐만 아니라 앤드루 왕자 등 그의 친구들과의 성관계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2001∼2002년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던 앤드루 왕자와 런던과 뉴욕, 카리브해 섬에서 3차례 강제 성관계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앤드루 왕자가 2001년 맥스웰의 자택에서, 당시 17살이었던 주프레의 허리를 감싼 채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된 바 있다. 사진에는 맥스웰도 함께 찍혔다.

스트라우스 검사는 이번 사건 수사가 앤드루 왕자에게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일단 “누구의 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앞서 말한대로 우리의 문을 열려 있다”며 “그가 와서 우리에게 진술을 들을 기회를 주겠다면 환영한다”고 앤드루 왕자의 진술을 기대했다.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중
제프리 엡스타인

앤드루 왕자의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 왕자의 변호사가 지난달 두 차례나 미국 법무부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공작(앤드루 왕자의 작위)의 팀은 지난달 미국 법무부와 두 차례나 소통했고 그 반응을 받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어리둥절할 뿐이다”고 말했다.

앤드루 왕자 외에도 엡스타인의 사교 모임에 어울렸던 유명 인사들의 행각 전모도 드러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엡스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자랑했던 인물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있다. 트럼프는 2002년 엡스타인을 소개한 한 잡지의 기사에서 “제프를 15년 간 알았다. 대단한 친구다”라며 “그는 함께 하기에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내가 아름다운 여인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그렇고, 그런 여인 중 다수는 젊은 여인들”이라고도 말했다. 트럼프와 현재 부인 멜라니아, 엡스타인과 맥스웰 두 커플이 1992년 트럼프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파티를 하며 찍은 사진도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엡스타인의 체포 뒤 트럼프는 태도를 바꿨다. 그는 “팜비치의 모든 사람이 그를 아는 정도로, 나도 그를 알았을 뿐”이라며 “나는 그와 사이가 나빠져 15년 간이나 말도 안 했다”고 말했다.

Davidoff Studios Photography via Getty Images
2000년 2월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도널드 트럼프, 멜라니아 트럼프, 제프리 엡스타인, 길레인 맥스웰. (왼쪽부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해 자신이 2002년과 2003년 4차례에 걸쳐 엡스타인의 전용 제트기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클린턴 재단의 공무에 엡스타인 전용기를 이용했을 뿐, 잘못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클린턴과 맥스웰이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백만장자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20여명과 성매매를 하는 등 수십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 체포돼 기소됐다. 한 달 뒤 그는 수감 중이던 메트로폴리탄 교도소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맥스웰은 누구?

맥스웰은 영국 언론 재벌이자 의원을 지낸 로버트 맥스웰의 딸이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맥스웰이 상속인이었으나, 아버지의 기업은 임금체불 상태로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그는 1년에 10만달러씩 받는 신탁재산을 물려받았고, 1991년 뉴욕으로 왔다. 이후, 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존 케네디 2세의 ‘절친’이 되는 등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또 다른 절친 중 하나가 제프리 엡스타인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맥스웰은 엡스타인의 ‘저택의 여인’이었고, ‘사업 동반자’였다. 엡스타인의 직원과 친구들은 맥스웰이 엡스타인의 해결사이자, 매니저, 사회적 생명줄이었다고 말한다.

맥스웰은 지난해 엡스타인이 체포된 이후, 자취를 감추고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 12월 현금 100만달러(약 12억원)를 주고 산 뉴햄프셔주 브래드퍼드의 한 저택에서 은신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맥스웰은 이 집을 익명으로 사려고 했으나 부동산 업자가 이를 거부하자, 법인체를 만들어 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15개가 넘는 맥스웰의 은행 계좌 잔고는 2016년 이후 최대 2천만달러가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