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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년들은 '장마당 세대'라고 불린다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 박수진
  • 입력 2018.02.08 09:35
  • 수정 2018.06.12 14:37

12일 싱가포르에서 성조기와 인공기를 배경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로를 향해 걸어왔다. 현직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가 만난 건 처음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이 순간, 북한 내부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탈북자들이 겪은 역경과 고난은 꾸준하게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들 사이에서도 세대가 바뀌고 북한의 시장화가 진행됐으며 삶의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건 한국을 비롯한 ‘바깥’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북한인권단체 링크(Liberty in North Korea)가 탈북 청년 십여명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를 만든 이유다.

북한전략센터가 찍은 장마당 영상. 영화 '장마당 세대' 중에서.
북한전략센터가 찍은 장마당 영상. 영화 '장마당 세대' 중에서. ⓒThe Jangmadang Generation/LNK

‘장마당 세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무렵 태어난 북한의 청년 세대를 부르는 말이다. 장마당은 북한의 시장이다.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최악의 기근에 시달린 ‘고난의 행군’ 이후 등장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에 걸쳐 자리를 잡았다는 게 북한에 갔거나 살았던 이들의 증언이다.

다큐에도 등장하듯, 북한 내 장마당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시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인도, 행인도 많으며 수입 식재료나 간식들도 눈에 띈다.

장마당을 처음 만든 건 90년대에 아이들을 부양해야했던 어른들이었다. 그럼에도 당시의 그 아이들인, 지금의 청년층이 굳이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장경제 체제에서 생각하고 자랐기 때문이다.

1991년생으로 지금은 한국에 정착한 주양씨는 다큐멘터리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겠”다는 생각에 장사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쌀 조금 있는 사람은 떡 만들어서 팔고, 옥수수 좀 있는 사람은 옥수수 국수 만들어서 팔고 거기서 조금조금씩 장사가 이뤄지는 거예요.” (주양, 20대 후반)

“송이버섯 같은 걸 중국에 팔고, 중국에선 (다른) 먹을 걸 사들여오고.” (강민, 30대 초반)

“저희 부모님은 정부에서 챙겨주는 시대에 살았는데 저희 시대는 아니거든요. 알아서 음식 찾아먹고. 알아서 돈 벌고.” (민성, 20대 초반)

“15살에 처음 직접 중국에 가서 물건을 가져왔어요.” (김단비, 20대 중반) 

한국지부장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박석길씨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배급 시스템이 작동했던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들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의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장마당에서 벌어온 돈이나 식량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보위부원 같은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는 모습을 봤으며, 또 생계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까지 생겨 상대적으로 사상교육이 덜 학습된 세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습득이 빠른 나이에 새로운 시스템을 접했다는 점에서 이민 1.5세대가 부모들보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북한 노동당은 오래전부터 청소년과 청년층을 ‘새 세대’라 불러왔다. 김정은 정권은 초기부터 이들 ‘새 세대’에 관심을 갖고 사상교육 강화와 여가생활분야 확충에 신경을 써왔다. 다큐 제작자 박씨는 ‘청년들이 사상을 체화하지 않으면 정권에 위협이 될 거라는 걸 당 역시 알기 때문’이라며 의무교육기간이 11년에서 12년으로 늘어난 것과, 각종 스포츠와 레저 시설이 늘어난 것이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통제를 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예술이나 스포츠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번 올림픽 때 내려올 수도 있는 모란봉악단 같은 예술단들도 그렇고, 스키장, 놀이공원, 물놀이장 같은 레저 시설 만드는 것도 그렇고. 만들어놓으면 시골에 있는 사람들도 직접 가지는 못해도 TV로 볼 수 있으니까요.”

‘장마당 세대’에게서는 겉으로만 정권에 협조하는 모양새가 윗세대보다 더 강하게 드러난다. 20대 중반인 김단비씨와 홍세아씨는 다큐멘터리에서,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과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에 학교에서 과자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교실에서 선물을 받으며 “경애하는 김정일 대원수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에 와 먹기 전에는 집에 걸린 초상화들을 향해 똑같은 인사를 했지만 과자를 먹기 위한 의식으로만 여겼다는 이야기다.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 들여온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옷을 입고, 한국 화장품을 쓰기도 한다는 것 역시 이제는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출신 20, 30대들은 중학교(한국의 중·고교 통합과정)를 다니던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한국식 억양을 쓰거나 한국 연예인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일이 많았다고 말한다. 중학생 때부터 밀수를 했다는 김단비씨는 갖고 있던 외국 옷들을 의심받지 않고 입으려고 친구들과 일부러 ‘유행’을 만든 적도 있었다. 평소 예쁜 외모로 주목 받던 한 친구를 포함해, 친구들 몇몇이 외국 옷들을 번갈아가며 입고 일부러 시내며 극장가 앞을 돌아다닌 것이다. 작은 도시에서 유행은 생각보다 빨리 번졌다는 게 단비씨의 전언이다.

한국 상품이나 콘텐츠를 유통하는 일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는데도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본 사람만 한국 억양과 한국 유행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드라마의 어느 캐릭터가 착용한 옷이나 액세서리인지 알더라도 대놓고 아는 척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북한 어디에 살았든, 탈북한 이들은 거의 모두가 장마당을 안다. 30대 초반 강민씨는 어린 시절 이른바 ‘꽃제비’ 생활을 청산하고 장마당에 뛰어든 경우다. 강씨는 접경지역에서 적은 돈으로 구해온 식량과 물건들을, 기차에 숨어 타고 내륙지역으로 가져가 도매상들에게 파는 식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해 돈을 모았다. 런 생활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건 아니다. 가장 많은 물건을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중국 옆 함경북도와 양강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이어지고 있으며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것이 다큐 제작자 박씨의 생각이다. 한국에서 서울, 광주 등 특정 지역들이 변화의 ‘핫스팟’이었던 것처럼 그곳들이 같은 역할을 해주리라는 기대가 있다. 박씨는 허프포스트에 ‘핵 위협이나 김정은의 말 같은 안보적인 면만 볼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북한을 개방시키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 ‘장마당 세대’ 역시 북한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30대 초반 허시몬씨는 다큐멘터리에서, ”젊은 세대들은 자유를 보면서 자라니까 자유를 갖고 싶어하는 갈망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강민씨는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고, 생각하는 게 있고,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제작자 박씨는 변화에 대한 시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길게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한다. 자라면서 사회와 주위 사람들이 변하는 걸 봤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그 변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의 풀 버전(맨 위)에서 북한 출신 청년들의 더 길고 자세한 인터뷰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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