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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9일 10시 56분 KST

수애 주연 '상류사회'가 강남 빌딩 값 그림 '행복한 눈물'을 소환하는 이유

영화 속 낯익은 현실 풍경 찾기.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상류사회’에서 미술관 부관장인 수연(수애)은 미술품 거래를 통해 대기업 자금 세탁을 한다.
한겨레
‘상류사회’의 풍경은 몇년 전 삼성의 비자금 세탁용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거래된 의혹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오랜 격언은 2018년 한국에서도 적확하게 적용된다. 현실을 가감 없이 담는 다큐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도 많은 작품이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딴청을 피우면서 교묘히 우리 사회의 민낯을 날카롭게 헤집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풍자하는 작품이 연이어 관객의 환호를 받으면서 올해도 이런 경향은 지속하고 있다. 현실과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최근 개봉작 속 낯익은 장면을 짚어본다. (주의: 스포일러 포함)

■ 장면① 비자금 세탁 통로 ‘미술품 경매’

29일 개봉하는 ‘상류사회‘의 주인공 수연(수애)은 미술관 부관장이다. 겉으로는 멋진 큐레이터지만, 실제 그가 하는 일은 ‘미술품을 통한 재벌의 비자금 세탁’이다. 그는 파리 옥션에서 브로커와 짜고 재벌 소유 작품을 거액에 낙찰받아 몸값을 올린 뒤, 작품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자금을 세탁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시사회 뒤 신분 상승을 위해 몸부림치는 수연이 ‘신정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사실 지난 2008~2014년 줄기차게 언론에 오르내렸던 ‘서미갤러리’ 사건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당시 오리온·삼성·CJ 등 대기업의 비자금 창구라는 의심을 받은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는 몇 차례 검찰에 구속됐다. 결국 무죄를 받긴 했으나 당시 홍 대표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삼성 측에 거래하며 자금을 세탁해줬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비단 이 사건뿐 아니라 미술품을 통한 비자금 세탁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재벌의 위법행위 중 하나다.

■ 장면② 자본을 무기로 한 일탈적 성매매

‘상류사회’ 속 미래그룹 한용석(윤제문) 회장이 보여주는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사회 기득권의 위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예술 행위를 빙자해 미술관의 새 직원(실제로는 성매매 대상)과 낯뜨거운 정사를 나눈다. 한 회장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수족 같은 비서도 죄의식이라곤 없다. 이 장면엔 일본의 AV배우 하마사키 마오가 캐스팅됐는데, 영화 공개 전부터 과도한 노출이라는 논란을 불렀다.

이는 지난 2016년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폭로한 ‘이건희 성매매’ 의혹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뉴스타파는 이 회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젊은 여성들에게 돈을 건네주는 모습과 “네가 오늘 수고했어. 네 키스 때문에 오늘 ○○했어” 등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결국 성매매와 성매매 알선에 대한 처벌은 없었고, 지난 4월 대법원은 이 동영상을 촬영·유포한 일당에게 최고 4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 장면③ 조폭과 국회의원의 더러운 결탁

최근 2016년 개봉한 ‘아수라‘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았다. 에스비에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조폭과 정치인의 유착 의혹을 보도하자 순식간에 화제에 오른 것이다. 조폭과 정치권의 결탁을 그리는 영화는 그동안 끊임없이 만들어졌다. ‘상류사회’에도 조폭과 정치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그려진다.

말끔한 겉모습과 유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백광현(김강우)은 멀쩡한 사업가 처럼 보이지만, 정치인과 재벌의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조직폭력배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장태준(박해일)의 선의에 선뜻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태준을 이용해 기업의 비자금을 만들려는 한 회장과 보수정당의 안 의원(김해곤), 정대표(남문철) 등과 긴밀하게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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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현장을 보고도 입을 다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목격자’는 백주대로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져도 외면하는 시민들의 이기심을 반영한다.

■ 장면④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방관자 효과 생활밀착형 스릴러를 내세운 ‘목격자‘가 220만명을 동원하며 ‘신과함께2’, ‘공작’의 틈바구니에서 선전한 것도 현실과의 싱크로율 덕이다.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봐”, “내 가족이 피해를 볼까 봐” 침묵하는 주인공 상훈(이성민)과 주민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현실적 공포를 안겼다.

이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다는 ‘방관자 효과’(제노비스 신드롬)와 연결된다. 1964년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35분 동안 칼에 난자당해 죽어가는 걸 많은 사람이 보고도 지나친 데서 유래한 용어다. 한국에도 이런 사례는 흔하다. 지난해 부산에서 한 여중생이 300m를 끌려가며 집단 폭행을 당하는 데도 행인들이 신고하지 않은 사건, 서울 강남 대로변에서 20대 남성이 별거 중인 아내를 흉기로 수차례 찔렀지만 시민들이 그냥 지나친 사건 등은 목격자 속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 감독과 제작사가 말하는 싱크로율은? 상류사회 변혁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특정 사건이나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은 없다. 현실에 비슷한 사건이 있다면 우연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목격자 조규장 감독 역시 “전형적인 집단 방관자적 태도에 관한 사건을 떠올렸을 뿐”이라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이 커 관객 몰입도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특히 상류사회는 제작사가 ‘내부자들‘을 선보인 ㈜하이브미디어코프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제작사 관계자는 “내부자들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병헌이 ‘지금은 현실이 영화를 이겨버린 상황’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와 현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빗대고 반영하지 않나. 그런 차원으로 봐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