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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하위문화의 현장과 성노동 운동 : 활동가 도균님 인터뷰②

  • 친구사이
  • 입력 2018.04.23 18:01
  • 수정 2018.04.23 18:10
ⓒhuffpost
▲ 연극 <만 23/169/73></div> 포스터
▲ 연극 <만 23/169/73> 포스터

성노동자 운동의 계보와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문화운동 : ”지지에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터울 : 성특법 제정 이후에 2004년 한터전국연합회(한, 전국성노동자연대(전성노련), 2005년에 성노동자운동연대를 위한 네트워크, 2006년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 등 성노동운동 단체들이 발족했죠. 도균님은 몇년도부터 성노동운동에 관여하셨는지요?

도균 : 저는 2014년부터 관여했어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가 생긴 게 2009년이고요. 

터울 : 그러면 시간이 좀 흐른 상태에서 합류하신 거군요.

도균 : 그렇죠. 이미 집결지 중심의 운동이 있었고, 전성노련·한터와 노선이 달랐던 민성노련이 평택에서 있었고, 이 민성노련에 당시,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여활모), 사회진보연대라든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페미니스트들이 같이 연대에서 성노동운동 네트워크라는 게 있었는데, 나중에 민성노련이 2007년 넘어가면서 유지가 안되게 돼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교육하기도 어렵고 위원장 맡을 사람도 없고, 제가 느끼기엔 또 그 이후에 집결지 자체가 축소되는 맥락도 있었고, 그것 말고도 새로 성노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한 접근이 보편화되면서 조건만남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런 다양한 맥락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민성노련이 없어졌을 때 성노동운동 네트워크가 당사자 집단이 사라지니까 무너지게 되고, 그 안에서 어쩄든 이 운동이 계속 있어야 된다는 마음으로 지지가 연속돼서 있었고,  저는 지지에 2014년에 가입을 했는데, 제가 가입하고 두 달만에 제가 가입하기 전에 있었던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잔뜩 탈퇴를 했고, 저를 가입시킨 사람도 탈퇴를 했고, (웃음) 그 해 여름에 지지에서 연극을 하고, 겨울에도 연극을 했었어요.

터울 : 어떤 연극을 하셨죠?

도균 : 여름에 했던 연극은 저 말고 다른 분들이 주인공이 돼서,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의 일 상황을, 그 안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면들을 가지고 만든 연극이었고, 당사자가 직접 연기를 했고요. 겨울에 있었던 건 제1회 인권연극제 상영작이었는데, <똑바로 나를 보라>라는 제목이었고. 맑시스트나 페미니스트나, 어떤 되게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성노동자에게 씌우는 낙인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연극이었어요. 그걸 하면서 저는 성격이 되게 외향적으로 많이 바뀌었고, 즐거웠고. 그 다음에 2015년에 <똑바로 나를 보라 2>를 만들어서, 관객참여형 연극으로 만들어서 제16회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상영을 했었고요. 

▲ 제16회 서울변방연극제, 연극 <똑바로 나를 보라 2></div> 포스터
▲ 제16회 서울변방연극제, 연극 <똑바로 나를 보라 2> 포스터

터울 : 그렇다면 지지도 나름 문화운동단체라는 느낌이 있었군요. 

도균 : 네, 조금 그런 게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2014년에 제가 기획을 해서 성특법 관련해서 간담회도 한 번 했었고요. 퀴어퍼레이드랑 같은 날이긴 했지만. (웃음) 그리고 팟캐스트도 한 화만 딱 녹음했는데 그 뒤의 화를 못 만들었어요, 여력이 안돼서. 그리고 2015년 겨울에 지지가 주최해서 호주의 Scarlet Alliance, 대만의 COSWAS(Collective of Sex Workers and Supporters), 일본의 SWASH(Sex Work and Sexual Health)를 초청해서 아시아-태평양 성노동자 인권포럼이라는 걸 했는데, 

터울 : 한국에서 했었나요?

도균 : 네, 한국 서울에서 했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 때 가명을 썼었고, 지지측 성명서를 제가 썼었고, 한국쪽 발제를 제가 맡아서 했었죠.

터울 : 그러니까 되게 폭발적으로, 갑자기 2014년부터 활동을 하시게 된 거잖아요. 성노동자 당사자로서뿐만 아니라 성노동 운동단체에 가입해서 활동가로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도균 : 전 사실 대학 다닐 때 장래희망이 활동가였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그 때 그 지지 가입하기 전에 한 단체에 잠깐 갔었는데, 저는 퀴어의 성노동 얘기를 너무 하고 싶었고, 거기는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너무 저변이 없었고, 그런 얘기가 나오기에 좀 애매한 맥락이 있었어요. 그럼 난 성노동운동에 가면 내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고, 지지에 가입한 뒤에 마침 당사자들이 다 탈퇴하고 남은 사람들이 공격을 받으니까, 저는 그 때 나간 사람들이 가입하자고 해서 가입한 건데 너무 당황스럽고, (웃음) 그런데 저는 이 단체 필요하다고 느꼈고, 제가 진짜 소심한 성격었어요. 정신질환을 그렇게 앓으면서, 3명만 있어도 앞을 이렇게 팔로 가리고, 말 제대로 못하고 이러고 있고, 맥락없고 이런 사람이었는데, 연극을 세 편 하면서 완전히 외향적으로 성격이 변했어요. 저는 그 때 지지에서 함께 했던 동지한테 어쨌든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의 지리멸렬한 그 과정을 거친 이후에, 저를 바꾸어놔주었던 게 운동이었던 거죠. 그리고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어디서도 못하는 내 얘기를. 

터울 : 그게 친구사이의 어떤 면모와도 유사한 것 같아요. 문화운동이 가지는 고유한 힘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랑 되게 유사하단 느낌이 많이 드네요.

도균 : 저는 그래서 문화운동 같은 경우에, 어떤 사람들은 문화운동에 대해 되게 회의적이죠. 한계에 대해서 지적 많이 하고, 거기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이것이 가진 힘과, 이것이 당사자들을 자력화(empowering)하는 게 너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당사자들이 자력화되는 게, 운동의 저변을 넓히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행위라고 생각해서, 

터울 : 그것의 산증인이신 셈이잖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도균 : 그렇죠.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 그만둔 사람도 있고, 저도 지지를 떠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전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터울 : 친구사이에 처음 들어온 게이 친구들이 변해가는 걸 볼 때 너무 신기하거든요. 그런 거랑 좀 유사한 것 같아요.

도균 : 네, 그런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게 되게 엄청난 것 같아요.

▲ 성노동자의 날, 일본 성노동 운동 단체 SWASH 초청 간담회 (2014.6.29)
▲ 성노동자의 날, 일본 성노동 운동 단체 SWASH 초청 간담회 (2014.6.29)

터울 : 그리고 2016년 성노동자네트워크 손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도균 : 그러다가 지지의 내부적인 사정으로 또 사람들이 집단 탈퇴했어요. 저는 남았고. 그런데 운동을 지지에서 계속 해나가는 게 어렵겠다는 제 개인적인 판단이 있었고, 그래도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탈퇴는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반성매매의 페미니즘과 그렇게 아주 우호적일 수는 없는 맥락들이 있는 속에서, 알고 싶었어요. 그걸 왜 NGA에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약간 이 안의 이야기들을 더 넓은 맥락에서 얘기하고 싶기도 하고, 연대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하던 때였는데, 연대를 하는 방법은 제가 먼저 찾아가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다가 2016년 여름에 공동페미니즘학교 기획단도 했었는데, 퀴퍼에 갔었는데 2016년 퀴퍼에서 처음으로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있었어요. 그 전엔 항상 중간에 가고 말았는데. 그리고 같이 행진을 했는데, 너무 이 안에서 어마어마한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때 약간, 성노동자들은 왜 이걸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이 있었고, 해외 활동가들을 여럿 만나면서 임파워링 된 상황에서 이걸 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사람들을 모았고, 진행이 됐었어요. 그래서 20주 동안 21편의 글을 교정교열까지 거쳐서, 전문으로 하시는 분에게 맡기고 해서, 어떤 글은 영문 번역까지 해서 올렸고, 페이스북 페이지, 티스토리, 텀블러에 올리고 했었죠. 바깥에 강연이나 인터뷰도 하러 다니고 했었고. UN Women 이런 데가가 성명서 보내기도 하고, 활동을 활발하게 반년 정도 지속했었어요.

터울 : 그러다가 손을 끝내시게 된 계기가, 

도균 : 좀 내부적으로 힘든 점도 있었고, 실무를 제가 거의 다 감당해야 했어요. 다른 분들은 제가 끌어들인 사람들이었고, 활동 경험이 있거나 한 게 아니니까. 그런데 글을 매번 이렇게 검수하는 과정부터 기획부터 맡기는 것부터, 교정·교열 보냈다가 받고 정리하고 그걸 업로드하는 것까지 전부 다 해야 되고, 인터뷰 약속 다 잡아야 되고,

터울 : 갈려들어가셨군요.

도균 : 몸이 못 버티는 거예요. 매일 새벽에 해가 뜨면 자고, 식도염 때문에 아파서 깨요. 그러고 그 때부터 일을 하는, 매일 그런 상황이었고, 돈도 들어올 데가 없고, 그러다가 하루에 위경련이 세번 와서 응급실에 실려가고, 탈모 오고, 공황장애까지 와서 버스를 못 타게 됐었어요. 

터울 : 그 때 다시 재발했군요.

도균 : 네, 버스만 타면 공황발작이 와서. 그 당시에 대학을 아직 다니던 때였는데, 강의 듣고 있던 걸 하나만 남기고 다 드랍했어요. 그리고 도저히, 정말 집에서 멀리 있는 지하철역까지 한참 걸어가서, 빙빙 돌아서 다니고 이렇게 했었는데, 그러고 이제 내부적으로 어렵고 이런 게 있다보니까, 책임을 못 졌죠. 전 사실 제가 책임을 못 졌다고 생각해요.

터울 : 저는 그렇게 해석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당사자로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어떨지 모르겠는데, 성노동자 운동이 한국에서 잘 됐다고 평가하기가 저는 힘든 것 같아요, 사실은.

도균 : 저도 잘 안된 점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저는’ 거기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것 같아요. 분명히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있었던 성소수자 동아리가 어떤 측면에서 배제적인 면들이 많이 있었고, 나쁜 기억들이 좀 있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그게 저의 어떤 특정한 종류의 자긍심을 처음으로 심어준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성노동자 운동의 앞선 맥락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것이 굉장히 집결지 성노동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었고, 그 안에서 저는 집결지에 있는 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에 대한 고려가 많이 부족했다고 평가하는데, 그럼에도 그 사람들이 성특법 만들어질 때 나와서 나 성노동자다, 이러면서 나서서 싸우고 하지 않았으면, 저한텐 성노동이란 말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터울 : 어떤 경위로든 그런 계보에 대한 감각을 느끼시는 거군요.

도균 : 네, 그래서 굉장한 애증을 느끼면서도 저는 그 계보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터울 : 한 개인이 성노동운동을 다 전체적으로 증거하거나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제가 볼 때는 2014년 이후의 운동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과잉대표되거나, 어떤 의미에서는 과잉된 일들을 떠안으셨던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픈 부분이 있어요.

도균 :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힘든 것도 많았고 괴로운 것도 많았지만, 굉장한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제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사람같이 사는 데 있어서 그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노동 운동이 아니었으면, 아마 제가 굉장히 소심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서 교류할 줄 모르던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훨씬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점에서 저는 함께 했던 사람들이나 그 판을 앞서서 만들었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 아시아-태평양 성노동자 인권포럼 (2015.11.28)
▲ 아시아-태평양 성노동자 인권포럼 (2015.11.28)

성노동자 운동의 국제연대 : ”퀴어운동, 페미니즘 운동 안에 너무 자연스럽게 성노동이 자리해있는 거예요”

터울 : 앞서도 말씀하셨지만 2015년 아시아-태평양 성노동자 인권포럼에 참가하셨고, 2017년에 도쿄 에이즈 위크에도 참가하셨고, 베이징 LGBT센터도 방문하셨는데요. 어느 단체에서 활동했던 것 이상으로 국제연대가 뛰어나게 많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각각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도균 : 2015년 아시아-태평양 성노동자 인권포럼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에서 주최를 했었고, 호주의 Scarlet Alliance의 한 분은 성노동운동에 되게 오랫동안 참여해오신 분이고, 특히 이주와 관련된 성노동의 맥락에서 많은 일들을 알고 있고, 제가 기억하기로 지금은 Scarlet Alliance의 CEO로 계신데, 그 분이랑, 대만 COSWAS에서 두 분이 오셨는데 한 분은 성구매자 운동을 하는 분이었고, 한 분은 활동가분이셨는데(COSWAS는 대만 성노동자와 ‘후원자’의 조합임-편집자 주), COSWAS는 이렇게 두 분이 오셨고, 일본의 SWASH에서 대표분이 한 명 오셨어요. 그렇게 해서 했었고, 저희 집에 그 때 COSWAS 활동가분이랑 Scarlet Alliance 활동가분이 묵다 가셨는데, 그게 나흘이었거든요. 그 나흘이 진짜 저한테는 어마어마한 대격변이었어요. 정말 운동을 이렇게도 할 수 있는데, 저렇게도 할 수 있네,

터울 : 성구매자 활동가라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 같네요.

도균 : 그렇죠. 그리고 한 명의 활동가가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네, 내가 정말 이런 걸 할 수 없는 게 맞을까-이런 것들을 질문하면서, 저 스스로 이게 나의 한계야-라고 했던 게 다 깨지는, 굉장히 어마어마한 기억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2016년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공동페미니즘학교를 할 때 기획단을 했었는데, 그 때도 중국과 멕시코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은 그냥 퀴어운동,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운동 안에 너무 자연스럽게, 그 운동 어딘가에 성노동이 자리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저한텐 너무 충격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성노동 운동이라고 하면 굉장히 튀는, 이상한 어떤 한 운동, 좁고 잘 알 수 없는 운동같은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어쨌거나.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게 어떻게 굉장히 다양한 집단의 권리와 만날 수 있는가-같은 것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겠다고 생각했고,  2016년 겨울에 해 바뀔 때, 그 해 말에 베이징으로 갔었어요. 그래서 베이징에 BCome이라고 해서, 한국으로 치면 <버자이너 모놀로그> 같은 연극의 중국판 같은 퀴어페미니즘 연극을 만드는 집단인데, 자체 제작한 연극이 20편이 넘고, 해외상영도 하는 친구들이에요. 그 친구들 공연을 봤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노동자>였고, 그 친구들이 절 인터뷰하기도 하고 하면서 공연도 보고, 그 때 가면서 소개를 받아서 베이징 LGBT센터, Women’s Voice, Beijing Gender, 이런 단체들을 다니면서 그 단체들을 견학하고 사람들을 만났는데, 자비로 갔죠. (웃음) 그런데 여기서 알게 된 친구가 여기를 소개해주고, 여기를 소개해주고 이러면서, 자금성 이런 거 하나도 안 보고 그냥 그들만 만나고 다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한국과 분명히 다른 조건들이 있는데 그 조건 속에서 만들어나가는 걸 보는 게 너무 짜릿하기도 하고, 뭔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저런 걸 나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그 다음에 2017년에 ‘짓거리’라는 연극 모임을 친구들한테 제안했죠. 젠더와 시선에 대한 <어쨌건>이라는 연극을 세번 상영했었고요. 

▲ 연극 모임 '짓거리', <어쨌건></div> (2017.10)
▲ 연극 모임 '짓거리', <어쨌건> (2017.10)

그리고 지지에서 만든 연극 중에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의 노동 경험을 가지고 만든 연극이 있었잖아요. 제가 유일하게 음향감독했던 작품인데, 그 작품을 일본의 SWASH에서 초청해서 도쿄 에이즈 위크를 가게 됐거든요. 거기 가게 되면서 한국의 당사자 세 명이 가게 됐는데, 그 중에 저도 가게 된 거죠. 가서 얘기를 했는데 되게 경이로웠어요. 이건 약간 하위문화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AV배우, 성노동자, 트랜스젠더같은 사람들이 구에서 산업센터를 빌려서 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행사에서, 사람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앞에 나와서 패널로 자기 경험과 이것과 연결되는 지점들을 막 얘기하면서 활동하는데, 너무 멋있고 부럽고, 끝나고 도쿄 에이즈 위크 공식 뒷풀이에 가 있는데, 중노년 활동가들 되게 많고, 한명 한명이 너무 그 운동의 역사들이고, 그 사람들이랑 같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그 뒤에 AKTA라고 신주쿠 니쵸메(新宿2丁目)에 있는 HIV/AIDS 커뮤니티 센터에도 견학을 갔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저한테는 너무 기뻤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해외연대로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만남들이 저한테는 되게, 한국에서는 너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데, 리프레쉬하고 되게 막 좋아, 다시 해보자-이런 마음으로 돌아오는 계기들이 되는 것 같고,

터울 : 트랜스젠더퀴어분들 중에서도 외국어를 잘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 이유가 그런 외국 기사를 봐야 좀 숨통이 트일 수 있어서, 외국어를 배우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도균 : 네, 뭔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가 뭔가를 획득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라는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꼭 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또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학업이나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탈락한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런데 전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참 잘하는 것 같아요, 해외에 나가서 만나보면. 한국사람들이 학교 교육이나 입시에서 영어를 엄청나게 해대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어쨌든 사람들이 더듬더듬이나마    영어로 말을 하는데, 해외에 나가면 영어 잘 못하는 활동가들이 되게 많고, 국제 연대할 때 자기가 영어를 못하는 게 컴플렉스인 활동가들도 있고, 너무 쟁쟁한 활동가들인데. (웃음) 그런 경우를 보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우리가 이정도로 영어를 잘해야 할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전반적으로 영어를 다들 잘하는 것 같아요.

터울 : 전 영어를 못하는데 부럽습니다. (웃음) 

▲ Beside Collective 포럼, <경계를 사유하다></div> (2017.8.20)
▲ Beside Collective 포럼, <경계를 사유하다> (2017.8.20)

Beside Collective 활동 : ”성공한 덕후가 된 심정이었어요”

터울 : 2017년 Beside 포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도균 : 처음에 Beside 포럼이랑은 별개로 솔여심 포럼이라는 게 있었어요. 솔여심이라는 책읽기 모임이 있었는데, 

터울 : 솔여심이 무슨 뜻인가요?

도균 : ‘솔직한 여성주의자들의 심정‘. 그 때 막 한창 ‘솔직한 여우들의 심정‘이란 게 있었는데, 그걸 따서 모임 이름이 만들어졌고, 저도 책 읽으러 두어번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미국에 가면서, 가기 전에 사람들에게 선물 같은 느낌으로 포럼을 하고 싶어했는데, 어쩌다보니까 되게 커졌어요, 100명 넘게 오고 그랬는데, 그 때 포럼을 열면서 성노동자네트워크 손에서 와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가서 강연을 하게 됐고, 강연한 다음에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두 분이랑 같이 계속 얘기를 하다가, 글쓰고 이야기하는 Collective라는 걸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했어요. 그럼 이름을 뭘로 할까 했는데, 저는 이름은 좀 한국말로 하면 안되나 싶었지만, (웃음) Beside Collective가 됐고, 당시 트랜스 배제적인 여성주의자들의 글이 논쟁이 될 때, 우리 이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이 말에 반박하는 얘기를 하자는 얘기가 있었고, 포럼을 기획해서 정체성의 경계 같은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자, 그래서 ‘경계를 사유하다’는 제목으로 포럼을 열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 3명에 루인님이랑 마쯔님 초빙해서 강의를 쫙 짰고, 저는 Beside Collective 멤버니까, 강연을 하게 됐죠.

터울 : 귀한 만남이었군요.

도균 : 네, 되게 저 빼고 다들 석박사에, 공부하고 이론하고 논문쓰고 이런 분들인데, 주눅들게 되더라고요. (웃음) 농담이고, 되게 귀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2009년 이 때부터 루인님의 굉장한 팬이었거든요. 동아리에서 화나는 일이 있고 속상한 일 있고 주변에 트랜스젠더퀴어들이 너무 없어서 힘들 때, 루인님의 runtoruin.com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을 보면, 뭔 말인지도 못알아듣겠는데 너무 위안을 주는 거 있잖아요.

터울 : 저도 RSS 피더를 통해 꾸준히 포스팅을 읽고 있습니다. (웃음) 

도균 : 그래서 그런 걸 보면서 존경했던 분이었는데, 솔여심 포럼 이후에 루인님이 블로그에다가 제 강연이 감동적이었다고 한 줄 써주신 걸 보고 너무, (웃음) 성공한 덕후의 심정으로 기뻐했고요. 

터울 : 성덕이 되셨군요. (웃음)

도균 : 그러고 같이 작업을 하면서 보니까, 마쯔님도 되게 독특한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어떤 위치성이나 이런 것들이. 그리고 루인님께서도 되게 독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하는 전혜은님이나 이조님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혜은님은 ‘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이조님은 미국에 있으면서 퀴어 관련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각각의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들이 제 관심사나 제가 하는 작업들에 연결되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 제10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세션 :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경계선 위를 여행하다></div> (2018.2.10)
▲ 제10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세션 :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경계선 위를 여행하다> (2018.2.10)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가입 : ”이런 종류의 단체에 나와보는 게 처음인 분들이 많아요”

터울 : 저는 좀 그런 모임의 구성이 되게 재밌고 경이스러우면서, 여행자 얘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으레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결사와 친교의 형태를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점도 있지만 같은 점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행자를 가입하시게 된 경위가 궁금해요.

도균 : 2017년에 어느 페미니즘 강연에 갔는데, 한 교수님께서 절 가리키면서, 질의응답 시간에 제가 손을 드니까 ”거기 남자분” 이러는 거예요. 제가 일어났는데 치마를 입고 있으니까, (웃음) 저를 아는 분이나 본 분들이 웅성웅성하는데, 당황하신 것 같았어요. 제가 앞으로 나가니까, 그 분이 당황하셨는지 그냥 말 안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발언하니까 영광이죠?”라고 하시는 거예요. (웃음) 그 말이 너무, 그런데 저는 사실 그날, 좀 상처였어요. 그리고 추가로 제가 듣는 이야기들이 그날 좀 여러모로 속상했는데, 그 직후에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있어서 갔었고, 그 때 뒷풀이에서 트랜스젠더퀴어들이 자기들끼리만 테이블에 앉아서 공식 뒷풀이를 했어요. 그 뒷풀이에서 여행자 운영진분들도 와있고 그랬는데,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우리 조금 페미니즘 얘기 같은 것도 해보고 같이 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서 단톡방을 하나 팠는데, 거기 오프라인 모임에 제가 꾸준히 나갔었거든요. 그 단톡방 모임을 한번 저희 집에서 했어요. 저희 집에 초대해서 제가 음식 하고 먹이고 나도 먹고 하면서.  그런데 전 활동가 한 분이, 많은 사람에게 굉장히 착취적인 행동들을 해서 공론화된 한 분이 한 만행에 대해서 어쩌다 얘기하게 됐는데, 열 몇 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 여섯 분 정도가 울면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데서 왔는데 울면서 같은 방식으로 당한 걸 얘기하는데, 너무 속이 터지고 화가 나는 거예요. 이게 예를 들어 친구사이나 행성인이면 이 짓을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저는 그 짓 감히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무성애자, 트랜스젠더퀴어들, 논모노섹슈얼들이 있는 이런 단체나 모임들에서는 저 짓을 할 수 있지?-란 생각이 드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러고 이제 그날 여행자 운영진 분들이랑 얘기를 하는데, 그 전에 어떤 재단에서 몇백만원 기금을 받은 게 있었더라고요. 기금 받아놓은 분들이 그냥 탈퇴한 거예요. 기금을 받아놓고 탈퇴하면 남은 사람들은 죽는 거잖아요. (웃음) 더군다나 여행자분들은 대부분이 여행자가 활동 처음 해보는 곳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분들이 이거 어떻게 소진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보고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제가 운영진분들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든가 하면서 소진시키고, 제가 회계 부분을 제외하고 보고서를 다 썼어요. (웃음) 그걸 쓰고 해결하고 나니까 제가 어느새 여행자 운영진이 되어있었죠. 

터울 : 정말 우발적으로 들어가시게 됐군요. (웃음) 

도균 : 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큰일나겠다 싶은 거예요, 저 사람들이. 

터울 : 올해 성소수자 인권포럼 세션도 들었고, 인상이 깊었거든요. 들어가셨을 때 이 곳의 조직원리나 이런 것들 중에 독특하다, 좋다고 생각되셨던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도균 : 사실 자신의 생존이 너무 중요한 상황이니까, 살아남는 게 중요하고, 더 큰 층위의 동질성이 있는 건 사실인데, 너무 자기를 정체화하는 방식나 이런 것들이 다르니까 동질성이 없는 부분이 있고, 그러다보니까 오히려 서로 약간 조심하거나, 아니면 갈등이 있어도 여기에서까지 밀려나면 갈 데가 없으니까, 서로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조심하는 것 같아요. 뭔가 싸움이 날 것 같으면 좋게좋게 얘기를 하게 되고. 그리고 어쨌든 미끄러진 경험들이 있고, 성별이분법이라고 하는-나를 미끄러뜨리고 이상한 존재로 만들게 되는 규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 점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우리가 같은 경험을 해서라든가, 똑같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배제하는 규범이 같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여기가 어떤 이런 종류의 단체에 나와보는 게 처음인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조금 단체도 특이해요. 일 같은 것도, 운영회원들이 실무를 전부 다 맡아서 하고 있고, 대신 운영회원이 6명 정도 되고, 그리고 앞서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 이후로 사람 갈아넣으면 안된다가 제1 목표예요. 다른 단체들 같으면 빨리 사업을 더 해서 단체를 키워야 돼, 이런 마음이 있을 텐데 저희는 우리 이거 돈받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서로 갈아넣지 말아요, 이런 것도 있고, 

터울 : 단체가 2년만에 그런 엄청난 진리를 깨달으셨다는 게 훌륭한 것 같아요. (웃음) 

도균 : 그리고 다른 단체들 같은 경우에 이런 일을 하면 사람들이 그냥 일을 했네, 라고만 생각하는 보고 같은 거, 예를 들어 어디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무슨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답장했습니다, 같은 게 운영진들 사이에 공유되면,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그런 부분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터울 : 뭐랄까 참 부러운 단체예요, 제 입장에서는. 게이커뮤니티가 있고 게이인권운동단체를 하면서 제 입장에는 게이로서의 유성애적 동질성과, 만인이 만인에게 식이 되는 것 등, 이성애보다는 힙할 수 있지만 고전적인 형태의 그런 조직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것들을 보여주시는 게 흥미롭고, 많은 생각들을 좀 하게 했던 것 같아요. 

▲ 워마드 로고.
▲ 워마드 로고.

워마드에 의한 조리돌림과 혐오발언들 : ”그럼에도 각자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터울 : 빡센 질문을 뒤에 넣어놨거든요. 워마드 이야기 좀 합시다. 

도균 : 네, 좋아요. (웃음)

터울 : 워마드,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한 적이 있으시잖아요.

도균 : 몇 번 있었죠. 2016년 퀴어문화축제 갔다 온 다음에, 그 때 제가 제 사진 셀카를 원피스 입은 걸 찍어서 올리면서, 그 때 저는 약간 ”끼순이”란 표현을 쓰는 게 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성은 아닌데 섹슈얼리티적 수행과 젠더 실천이 연결되기도 하는 맥락에서, ”끼순이의 멋짐을 받아라”라고 한 줄을 써서 트위터에 올렸는데, 끼순이 여성혐오 워딩이다, 너 저번에 똥꼬충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라는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뒷풀이가 있으니까 별로 대응을 안했어요. 그냥 그러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답신을 몇 개 했는데, 어느 순간 조리돌림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트위터에 올렸던 제 사진, 제가 치마 입은 사진, 저희 집 고양이 사진 같은 것까지 다 조리돌리면서, 조롱하는 거죠. 저의 외모, 얼굴 평가부터 해서, 저희 집 고양이 살찐 것까지, 오만 종류의 모욕적인 이야기들이 올라왔고,  그 분들 중에 루머같은 거 만든 분도 되게 많았어요. 제가 사실은 여자 좋아하는 의사고, 이성애자인데, 여자들 강간하러 다니려고 페미니스트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웃음) 라고 루머를 들은 분이, 성노동자네트워크 손 처음 만들 때 와서 저한테 그걸 물어본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의사이세요?-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의사로 보여요?-라고, (웃음) 아니면 쟤 포주다, 쟤 포주랑 연결돼있다, 아니면 똥꼬충 뭐 이런 이야기부터 해서 약간 저의 항문건강을 염려해주는 좀 못된 말들? (웃음) 되게 표현하기 어렵네요. 그런 게 있었고,  그 외에도 제가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배제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 저의 경험을 쓰면서,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 하나로 지하철 계단에서 떠밀리고, 버스 정류장에서 차도에 떠밀리는 경험 같은 걸 해본 적이 있느냐고, 트랜스젠더퀴어 이 문제를 덜 중요하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도 되는 거냐, 이런 요지의 글을 쓰면, 이제 그게 조리돌림당하면서 야 우리도 이렇게 폭력을 당하고 남성들에게 폭력을 당하는데, 이런 글이 올라온다든가.  그런데 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거든요. (웃음) 좀 트위터에든 페이스북에든 하고 싶은 말을 다 올리고. 그래서 저는 어느 시점에서 알림을 껐어요. 대화를 정말 진지하려고 해서, 대화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을 갖추고 얘기를 하는 거면 저도 그 대화에 응할 마음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그런데 저쪽은 지금 대화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어떤 것들을 일방적으로 투사하려고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냥 저는 알림을 껐고, 저에 대한 루머들? 좀 어처구니없는 루머도 돌던데, 포주나 의사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꾸하지 않으려고 해요.

터울 : 워마드에서 직접적으로 공격했던 트랜스젠더퀴어 중에서도 제1 대상이 지정성별 남성이고, 남성으로 으레 패싱되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혐오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들의 만화에서도 여탕 들어가면 남성기가 있는 트랜스젠더가 머리 감으면서 ‘나 여자야’ 이러고 있고, 그래서 여성들이 다 놀라고 이런 것들. 그런데 실제로는 트랜스젠더퀴어 분들이 남녀로 분리된 화장실에 잘 못 가셔서 비뇨기 질환에 시달리는 게 현실인 건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실제로 트랜스젠더퀴어가 어떤 사람이고, 만나본 적도 딱히 없는 이런 게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반드시 이 트랜스젠더퀴어 혐오는 기록되어서, 훗날 역사가들에게 조리돌림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균 : 동의합니다. 

▲ 트랜스젠더퀴어 혐오 논리를 담은 웹툰.
▲ 트랜스젠더퀴어 혐오 논리를 담은 웹툰.

터울 : 그런데 어쨌든 본인의 입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이자 성노동자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하셨던 행보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어찌보면 페미니스트라 하실 수도 있는 입장에서, 누군가가 페미니즘을 생물학적 여성에 긴박된 형태와 혐오섞인 표현들을 자신의 페미니즘이라 이야기했을 때, 모두가 그랬을 것 같지만 성소수자들이 되게 비감해지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저들의 페미니즘이 무얼까, 이런 느낌. 

도균 : 저는 오히려 그 분들에 대해서는 기대가 없으니까 실망을 안해요. (웃음) 그냥 또 그러네? 아 귀찮아, 알림 꺼야지. 아니면 제 주변인한테 그러면 너무 화가 나죠. 저 사람 지금 힘들어죽겠는데 왜 저래? 이 생각이 드는데, 제가 오히려 너무 상처받았던 건,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제가 보아왔던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였어요. 그건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이런 폭력들이 알려지고 다가오는 시차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가령 워마드보다 이프북스에 상처받는 거죠.  워마드 분들에 대해서, 전 사실 예전에 어떤 행사에서, 자기 워마드에서 왔다고 밝힌 분들이 막, 본인들이 막 모욕적인 말을 하면서 우는 거예요. 좀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났었고 저도 약간 화가 났는데, 한편으로는 그 눈물을 흘릴 때, 어쨌든 저 사람들이 감각하고 있는 내몰린 감각이 이런 거구나, 여기서 더 밀리면 나는 정말 갈 데가 없어-라는 그 감각이겠구나, 라는 걸 아니까, 

터울 : 네, 그게 워마드의 중요한 조직원리 중의 하나일 것 같아요. 

도균 : 그래서 저는 한켠으로, 한 명의 밀려난 인간으로서, 그 사람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분명히 잘못했지만, 저 사람이 느끼는 그 감각, 위협감이라는 게 이런 거겠구나-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알 거 다 아는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이... 사실 저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서 트랜스페미니즘의 계보와 역사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부분들을 일정하게 누락시키면서 ‘여성’운동으로서 가지고 왔던 맥락들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트랜스젠더퀴어들이 배제되는 과정에 눈감거나 침묵했거나 알지 못했거나 했던 분들이,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조차, 그런 식으로 다시 역사를 쓰고 계보를 잇게 만드는 걸 볼 때, 

터울 : 시대적이고 역사적 한계가 아니라, 주체의 결단에 의한 확신범적 혐오였구나 싶은, 

도균 : 네, 딱 그 표현이 맞네요. 그 때 정말 절망감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제 주변 트랜스젠더퀴어들 중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분들이 없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저는 우리 이거 뺏기지 말자, 우리가 왜 페미니즘을 뺏겨야 되냐, 트랜스페미니즘 얘기하자, 우리 계보를 쓰자, 역사를 보자, 말하자, 루인님 강연 듣고 글 보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어떨 때는 되게 힘에 부쳐요. 저도 진짜 더이상 사람들한테 ‘우리 페미니즘 봐야지’라는 말이 차마 안나오는 순간들이 있고,

▲ <근본없는 페미니즘></div>(2018, 근간)에 대한 이프북스 대표의 입장문.
▲ <근본없는 페미니즘>(2018, 근간)에 대한 이프북스 대표의 입장문.

어떨 땐 처음에는 제가 트랜스젠더퀴어 그룹에서 친분이 좀 덜할 때는 그런 질문을 실제로 받았던 적도 있었어요. 그 분은 저의 운동에 대한 이해가 덜 그려지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당신은 페미니스트들이랑, 분리주의자들이랑 같이 하느냐는 질문을 제가 듣기도 했었어요. 트랜스젠더퀴어들, 성노동자들, 페미니스트, 이들이 분절된 그룹은 아니지만 여길 다니면서, 성노동자 그룹에서는 일정 정도 ‘꿘충‘, 아니면 약간 ‘가짜 당사자’ 같은 어떤 시선을 받는 맥락이 있고, 트랜스젠더퀴어들 사이에서는, 지금은 정말 별로 없다고 느끼지만 한동안 어떤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저를 향한다고 느낄 때가 없지 않았고, 또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있으면 되게, 그런 거 있잖아요. 트랜스 배제적인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할 때 사람들이 저의 의견을 묻는 거죠, 갑자기. 제가 그 순간에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괜찮아지는데, 전 도무지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어떤 상황들, 그런 것들을 겪어왔다고 생각해요.

터울 : 좀 이 사태를 지나치면서, 각자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 혐오가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나비효과처럼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도균 : 네, 저는 그 부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영님 같은 분이 페미니즘을 세계관이라고 얘기하거나, 루인님 같은 분이 페미니즘은 정체성이 아니라 정치학이라고 얘기할 때, 일견 끄덕거리면서도 딱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너무 살아있는 언어로 다가오는 거죠.

터울 : 친구사이에서도 작년에 기획했던 게 ‘게이와 페미니즘’ 연강이었는데, 게이도 페미니즘의 당사자일 수 있다, 남성만 남성성 갖는 게 아니고 여성만 여성성 갖는 게 아니고, 여성성에 대한 경험은 누구나 다 있고, 이런 얘기들을 했던 건데, 그런 얘기를 해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도균 : 맞아요, 워마드의 혐오표현이 처음에는 ‘똥꼬충‘이 시작이었다고 전 느꼈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성노동자에 대한 어떤 애매한 부분들이 있었고, 동시에 ‘젠신병자’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생각할 때, 저는 작년의 그 강연들이 의미있는 작업들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한켠으로 되게 이 안에서 계속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노동 운동이든, 트랜스젠더퀴어 운동이든,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야 되고, 이것을 일종의 정치학으로서 고민을 하고, 이 운동과 같이 녹여지는 지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막달레나공동체 (1985~)
▲ 막달레나공동체 (1985~)

반성매매 운동에 대한 입장 : ”더 울고 싸움나도 좋으니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터울 : 막달레나공동체에 후원을 하고 계시고,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도 과거에 후원을 하셨었죠. 퀴어 성노동자의 입장에서, 반성매매 운동이 어떤 의미이신지 궁금해요. 

도균 : 저는 반성매매 운동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단일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안에 굉장히 다양한 층위와 지평이 있고, 가령 성매매 근절주의에 입각한 입장이 굉장히 강한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다고 생각하고,

터울 : 그렇죠, 현장에서의 문법을 보다 존중하시는 분들도 있죠.

도균 : 네,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 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층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막달레나의집에 후원을 하고 있는데, 올해 그런 이야기들이 오더라고요. 탈성매매한 당사자분들의 욕구가, 그룹홈 같은 것보다 사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사업을 시행하게 됐다는 얘기, 그리고 가출청소년 지원사업이라든가, 노년의 거리 여성 성노동자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도 당연히 성노동 활동가로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고 필요한 지점들인데 제가 못하는 거거든요. 저라는 개인이 할 수 없는 지점의 일들을 하고 있는 집단들이 있을 때... 저 사실 후원 큰 금액 안해요. 작은 금액이예요, CMS고. 다만 그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건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거니까 참여하는 거고. 그래서 그런 다양한 층위 속에서 반성매매에 대한 입장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경우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공적인 공간에서 성매매가 성폭력의 원인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어서, 제가 커밍아웃을 하고,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거 문제적이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제 얘기를 딱 끊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한 사람의 당사자의 말만 듣고 판단할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 그 순간 저의 말은 그냥 한 사람의 당사자일 뿐인 말이 되는 거고, 

터울 : 전형적인, 현장 대 현장의 구도에서 ‘내 현장이 더 중요해’라는 싸움이 되는 거고, 

도균 : 네, 그럴 때 이 안에서의 어떤 발화권력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때 저는 말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이 있었거든요. 아니면 제가 저의 피해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에 대해서 저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여기서 제가 당한 피해만 딱 잘라서 전혀 다른 맥락으로 누군가에게 언급될 때, 전 솔직히 모멸감이 들어요. 나를 소재로 사용해버리는 듯한, 그러니까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던 사건에 대해서 울면서 증언을 했는데, 그걸 떼어가서 자기 좋을 대로 쓴다는 게 저한테는 너무,

터울 : 그 피해경험이 전혀 원하지 않은 맥락으로 배치되었던 거군요.

도균 : 네. 그럴 때 너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그런 건 싫은데,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저는 성노동 운동 안에도 되게 다양한 층위와 지점들이 있고, 반성매매 운동에도 다양한 층위와 지점들이 있을 때, 맞닿아 연결되는 고민의 지점들 같은 걸 보게 돼요. 그리고 저는 그럴 때, 이 곳은 사실 성매매 현장이 따로 있고 성노동 현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장들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만나게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터울 : 그 만나는 방식들이 조금 더 생산적이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람일 것 같아요. 

도균 : 그런데 또 그런 게 있죠. 기본적으로 조명하는 관점 자체가 각자의 서로 다른 세계관,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기 떄문에,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거리 차이부터 확인하게 되는. 이 때 이걸 내려놓고 얘기한다는 게 불가능한 거예요. 모든 말과 발화에 이것이 묻어있고, 사실 그걸 서로 가장 민감하게 캐치해야 되니까. 

터울 : 저는 세계관의 차이도 있지만, 정말로 근저하고 있는 현장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도균 : 저도 그 지점을 생각하게 되는 게, 예를 들어 상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상담이 필요해서, 어떤 문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 분들을 주로 만나겠죠. 제가 주로 만나왔던 사람들은, 저 사람 성노동 얘기해, 나도 내 얘기 하고 싶어-라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왔겠죠. 제가 만난 현장과 저 분들이 만난 현장은 너무 다를 것이고, 그것이 몇년, 혹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누적돼왔을 때, 상대와 얘기할 때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의 얼굴부터 떠오를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러니까, 저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럴 때 솔직히 말하면, 한 행사에 저한테 굉장히 무례하게 얘기했던 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싫고 미워요. 그러면서도 한켠으로는, 저 사람도 얼마나 많은 삶의 얼굴들과 무게가 그 순간에 자기의 어깨를 짓눌렀을까란 생각을 하는 거죠. 나도 그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날을 세웠기 때문에, 

터울 : 그래서 제가 섭외드릴 때 기획서에, 잘못된 개념 사용이나 잘못된 추상화는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된 현장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썼고, 그 현장과 현장이 좀더 아름답고 바람직하게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과제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인터뷰도 그런 바람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고요.

도균 : 저는 사실 아름답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더 울고 싸움나고 해도 좋으니까,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인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 기록팀,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div>, 여이연, 2018(근간).
▲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 기록팀,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이연, 2018(근간).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와 ‘성노동자 대나무숲’ : ”저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터울 : 자연스럽게 페이스북 페이지 얘기로 넘어가고 싶어요.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와 ‘성노동자 대나무숲‘, 제가 작년에 되게 인상깊었던 게, 흔히 싸우는 이미지인 이 두 그룹의 이야기들이 서로 연대하기도 하고 서로 엮여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성판매여성의 경우는 올해 책으로 나오게 되잖아요. 이런 활동들이 굉장히 흥미롭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더불어서, 이게 정말 인터넷 매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이 있지 않나, 2010년대부터 시작한 트위터에서의 개인적인 성판매/성노동 관련 커밍아웃들이, 그것들의 기조를 잇는 흐름이지 않은가, 처음에는 분산된 현장에서의 분산된 목소리였다면,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이후에 인터넷 사이의 연결과 새로운 관계의 발명들이 꾀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도균 : 저는 성노동자네트워크 손도 많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어요. (웃음) 내가 무의미하게 갈려들어가진 않았어-라는 마음을 살짝 가지면서, 저는 사실 그 사람들의 현장이 분리된 현장일까를 생각해보면, ‘성노동자 대나무숲‘에다가 내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쓰는 사람들과,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어찌보면 같은 가게에서 일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웃음) 저는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에 당사자가 쓰신 글들에서,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랑 비슷한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제가 하고 있던 고민들 같은 것들, 고민하는 지점과 같은 걸 보고 계신 걸 볼 때마다 굉장히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그 때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가 강제로 셧다운됐을 때, 제가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에 제안을 해서 제가 성명서를 썼어요. 그렇게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나오기도 했고. 저는 솔직히 말하면 너무 바람직하고 더 많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가끔 무서워요. 사람들에게 저는, 성노동자의 상을 고정적으로 보지 마세요, 이런 것도 있고 난 이런 경험도 있고 이런 다양함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제 경험을 또 과대대표해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일 때,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이상한 회의감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이야기하면 좋겠고, 그 많은 이야기들이 만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생산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기도 하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욕망이기 때문에, 저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터울 : 저도 현장과 현장이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걸 보면서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게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오랫동안 현장에서의 운동의 구도가 고착되었을 때 여러 부정적인 효과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이유는 알겠으나, 각자의 자력화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다다를 때 드는 절망감들이 있는데, 그런 차이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이야기들을 서로 섞어서 할 수 있다는 건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도균 : 저는 그래서 조금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업들을 올해, 내년 정도에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에서 얼마 전에 탈퇴를 했거든요. 저는 제가 성노동 운동의 계보선상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한 달에도 서너명씩 와서 그런 얘기를 해요. 남 얘기인 것처럼 제 친구가 성노동을 하는데 이렇대요-라든가, 제가 지금 성노동을 하는데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든가, 아니면 저 성노동을 할까 고민돼요-같은 얘기들을 상담하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걸 일일이 얘기하고 있다보면, 좀 이 사람들이 이야기할 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너무 들어버리는데, 그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자기 방식대로 그려나가는 건 너무나 다양하고, 그럴 때 저는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는 스스로에 대해서 좀 회의감이 오거나, 아니면 같이 뭔가 얘기할 수 있다는 것에서 기쁨이 오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런 오해도 있는 것 같아요. 저같은 경우에, 나 성노동할까 고민중이야-라는 얘기를 들으면 100 중의 99는 그냥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럴 때 얘기를 듣다 보면, 상대가 지금 왜 어려운 사정에 빠졌는지가 보이고, 그 때 중요한 건, 일단 당장 가치판단부터 하면서, ‘너 지금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면 ‘너 지금 잘 생각했어‘, 이런 얘기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공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넌 요즘 이래서 힘들구나, 그럼 너는 그 일을 하면 이런이런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접근하면서, 그 때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적다든가, 뭔갈 알지 못한다든가, 아니면 뭔가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거나 착각을 해서 이게 나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때, 물론 해결해줄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저는 당신이 아직 일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겪어보지 않아서 이런 착오가 일어난 부분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나 내 주변인들의 경험에 미루어보면, 이런이런 문제나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당신에게 성노동이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당신이 하면 하는 건데,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말해라, 내가 이런이런 건 못 도와주는데, 내 주변에 이런이런 사람이 있어서 이런이런 건 도와줄 수 있다-라고 얘기하거든요. 전 그걸 하는 단위가 절실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조언이 필요한 거예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터울 : 성노동 운동의 활동가로서 상담이 들어올 때 성노동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시는 거군요. 

도균 : 네, 그래도 그런 정보 제공은 매우 중요해요. 예를 들어 내가 여기 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누군가가 저 그 일 해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할 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면, ‘글쎄,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은데’라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 무게로 제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무게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물론 쉽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씁쓸해지죠. 지금 내가 뭐하고 있지 싶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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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라 더 허슬러, 이승훈 역, <남창 일기>, 햇빛서점, 2018.

‘남창 일기’(2018)와 퀴어 하위문화 : ”그 삶 속의 모습을 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터울 : 마지막 질문 두 개가 남았는데요. <남창 일기>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요. 발문도 쓰셨는데요.

도균 : 아, 너무 재밌었고요. 출판사에서 추천사를 부탁하시면서 처음에 먼저 텍스트를 주셨는데, 사진 없이 텍스트만 죽 보는데 그냥 엉엉 울었어요.

터울 :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도균 : 남창이든 게이든지, ”우리들에게는 이런 ‘생명의 연결 방식’도 존재한다”(132쪽)는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막... 그러면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남창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숨기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숨기고 싶으면 숨기도 되는데, 여전히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맞는데, ”본심을 위장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일지라도 세상을 지키는 일은 되지 못한다”(131쪽), 그 말이 너무 눈물나게 만드는 거예요, 사람을.  그리고 저도 너무 낭만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진 않은데, 책의 저자가 말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몇년간 이 일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고객과 너무 감정조절을 제가 못하게 되면 저는 관계를 종료해요. 그게 나를 지키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서, 힘들어서. 그런 순간들이 언뜻언뜻 떠오르기도 하고, 책에 선물 받은 것들의 목록을 써놨잖아요. 그럴 때 저한테 만날 때마다, 돈을 조금밖에 안 주는 아저씨였지만, 매번 선물을 주던 사람이 있었어요. 자기가 몇 개피 피우다 남은 담배 한 갑, 되게 허름하고 낡은 아우터, 이런 걸 주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 생각이 막 나면서, 아니면 제가 만나왔던 다양한 구매자의 얼굴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휴식인 사람들이 있었고, 그냥 어떨 때는 당시 세월을 잘못 타고 태어났네요-라는 말밖에 해줄 수가 없을 때, 그 얼굴들이 막 스쳐지나가면서 눈물이 막 되게 났는데,  한편으로는 좀 그런 것도 있죠, 그 사람은 되게 고급스런 물건을 받고, 단골도 너무 많고, 

터울 : 잘생기고, 몸 좋고, 

도균 : 네, 잘생기고 몸 좋고, 섹스만 하는 사람인데 전날 자위를 두 번이나 해서 사정을 했는데도 또 만나러 나가고 노쇼를 안하고, 뭐라고? (웃음) 이러면서 흠칫흠칫 순간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어떤 부분들에서는 이제 또 연결되고. 그 분이 어쨌든 해외의 매춘과 관련된 학회에 갔다가 들었던 이야기들을 언급하면서, 여기서 손님에 대한 상담하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했을 때 다 손들었다는 얘기를 할 때, 나도 그런데-하는 생각을 하게 된 측면이 분명히 있긴 했거든요. 되게 미주알고주알 자기 얘기를 다 해요. 심지어는 사별한 아저씨가 절 만나가지고, 전 돈받으려고 만났는데, 저를 끌어안고서 막 자식들 다 자기 재산 물려받을 생각밖에 없다고, 자기 너무 슬프다고, 사별하고 자기 너무 외로운데 자식들은 자기를 돈으로밖에 안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저한테 해요. 그럴 때 이제 토닥여주면서, 그래도 저번에 첫째 아들이 이래줬다면서요, 뭐 이런 얘기를 하면 또 자식 자랑을 해요. (웃음) 바로 태세 전환해서. 그런 장면들, 제 인생의 장면들.  저는 사회성이 되게 없었고, 20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사람과 교감하는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 지금도 그런 부분들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면서도 거리를 유지하고, 인간과 관계맺는 방법을 저는 성노동 하면서 배웠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좋았어요.

터울 : 게이들 중에서도 성노동이나 찜방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해방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대개 보면 생애사적 맥락이 있고, 모범적이거나 규범적이지 않은 친구들이 많고. 그런 어떤 현장들에 대해서 너무 쉽게 낙인찍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막상 들어보면 이해가 되거든요. 왜냐하면 그게 당장 들을 땐 배덕감이나 도덕적인 이물감이 있거나, 아주 특별한 병든 사람으로 취급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런 측면이 있어서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균 : 그리고 사실 그 도덕이라고 말하는 그것이 어쩌면, 게이를, HIV/AIDS 감염인을 낙인찍는 그 도덕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약간, 저는 그것들이, 저한테는 분리되어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성소수자 운동에 관심 갖다가 성노동 운동을 하니까, 너 왜 관심사가 바뀌었어? 이런 얘기를 듣고, 성노동 운동을 하다가 여행자 활동을 하면, 너 관심사가 바뀐 거야?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난 계속 같은 걸 하고 있는데?-란 얘기를 하거든요. 

터울 : 세상의 낙인과 억압은 의외로 얼굴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

도균 : 네,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같은 놈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웃음) 그럴 때 조금... 그러니까 저는 되게 화장실 크루징, 공원 크루징, DVD방, 찜방, 사우나 이런 데 되게 많이 다녔고, 지금도 많이 다니고 있고. 지금은 금지약물로 지정된 랏슈에 미쳐있었을 때도 있었어요(RUSH[러쉬, 포퍼]는 2013년 12월 한국 식약청에서 임시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었다-편집자 주). 그 때가 부산에 있던 때였거든요. 아파서 부산에 있던 때였는데, 또 한켠으로는 되게, 그래서 연구모임 POP의 활동들을 보면 너무 좋은 거예요. SM하거나 크루징하거나, 성거래 하거나, 아니면 트랜스젠더가 옷을 입은 거 말고 크로스드레서라고 불리는 어떤 맥락들에 굉장한 반감 같은 걸 보게 될 때, 저는 그 삶 속의 모습들을 보지 않고 거기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상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얼마만큼의 내용을 담보하고 있나-란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 2017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DOR) 행사 중 도균님 발언 (2017.11.18)
▲ 2017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DOR) 행사 중 도균님 발언 (2017.11.18)

퀴어 하위문화와 퀴어 성노동 운동의 전망 : ”이런 길도 있었으면 좋겠고, 길이 있다는 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터울 :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웃음) 퀴어 하위문화와 퀴어 성노동 운동의 전망을 말씀해주시죠.

도균 : 지금껏 없었거나, 어두웠고, 앞으로도 밝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제가, 사람들이 저한테 ‘너 게이 아냐?‘라고 물을 수 있는데, 저는 그 때 ‘아닌데?‘라고 말할 것 같은데, ‘넌 거기 속해 있는 사람이잖아‘라고 말할 때는 ‘어, 맞아‘라고 대답할 것 같거든요. 저한테는 ‘퀴어 하위문화’란 말이 제 삶을 가리키는 어떤 말이기도 해요. 삶의 어떤 부분들이나 제 인생의 궤적을 가리키는 말들이고. 어떤 하위문화나 퀴어 성노동의 다양한 이름들이요. 그럴 때, 그걸 내가 주체로서 계속 해나갈 거야-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이러다가 또 지쳐서 좀 쉴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걸 하는 것, 그걸 내가 살면서 게속 하면 내 인생이 인생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조금 더 드러나면 좋겠다는 마음? 이걸 어떻게 드러나게 할 것인가가 너무 중요한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되게 공감가게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서, 그렇게 공감가게 얘기하는 것이 과연 근본적으로 이것에 얽히는 낙인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인가에 대한 어떤 두려운 마음이 있고, 그 안에서 되게 줄다리기하듯이 말을 하게 되는데, 두려워요 사실, 아직도. 지금도. 이 얘기들이 과연,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하지만 소식지가 나왔을 때 어떻게 읽힐까, 그리고 이것들이 다시 어떻게 문제가 되면 어떡하나, 그 생각도 들고. 그런데 저는 성소수자 운동하는 분들이,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좀, (웃음) 다소 싸가지 없는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네요. 

터울 : 도균님의 이야기를 죽 들어보고 느끼는 것은, 이 퀴어함에 즉해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모든 변태성이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어떤 것들을 벗어나서 규범적인 세계로 가야 인생이 시작되는 게 아니고, 지금 겪고 있는 이 수많은 혼종적인 퀴어성들 안에서 내가 머물 때, 그 머무는 가운데에서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럼에도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삶의 윤리를 쌓아갈 수 있다는 그 서사의 힘이 있는 것 같거든요. 앞으로도 그 힘을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말씀해주신 도균님의 삶의 경험을 보는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균 :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거기가 길이 되잖아요. 그냥 좀 이런 길도 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길이 있다는 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터울 :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도균 : 고생 많으셨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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