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20년 08월 14일 18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8월 17일 13시 22분 KST

[허프 인터뷰] 김종훈 기자는 임정로드 개척한 이유를 "약산 김원봉처럼 독립운동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를 책으로 풀어낸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인터뷰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좇아온 기자가 있다. 회사 차원의 취재는 아니었다. 사비와 연차를 쏟아부은 활동이었다. 출근 전 새벽반에서 중국어를 배웠고, 지난 2년간 중국 답사만 3번을 다녀왔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 대만에도 다녀왔는데, 총을 든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온 적도 있었다. 윤봉길 의사가 총살당한 일본 자위대 부대에 들어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소개한 책 <임정로드 4000km>와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궤적을 좇은 <약산로드 7000km>를 썼고, 최근에는 친일파의 흔적을 좇은 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를 펴냈다.

궁금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 기자가 대체 왜 일제강점기 역사에 집중하는지, 혹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아닌지, 해마다 반복되는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8.15 광복 75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8월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허프포스트코리아 뉴스룸에서 김종훈 기자를 만나 물었다. ”혹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신가요?”

HUFFPOST KOREA/HANGANG KIM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임정로드‘에서 출발해 ‘약산로드‘를 거쳤고 ‘현충원 한 바퀴’를 돌았다

 

- 혹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가? 항일과 친일을 주제로 2년 동안 세 권의 책을 냈다. 

= 하하하. 전혀 아니다. 할아버지께서 6·25전쟁에 참전하셔서 국가유공자이긴 하다. 항일과 친일에 이렇게까지 몰두하는 이유는 ‘자신이 없어서’다. 약산 김원봉은 10살 때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을 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취재하고 책을 쓴다. 못다한 독립운동을 한다는 마음이다.

 

- 첫 책 제목이 <임정로드 4000km>인데, ‘임정로드’는 원래 세상에 없던 말이었다.

= 맞다. 내가 만든 말이다. ‘임정‘은 ‘임시정부‘의 준말이고, ‘임정로드‘는 상하이 임시정부 유적지를 순례하는 길이란 뜻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걸었던 길을 후세대인 우리가 다시 걸으며 그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책이 나오고 ‘임정 뒤에 왜 영어를 갖다붙이냐’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요즘 애들 말처럼 입에 착 달라붙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익숙해지고 또 사람들이 직접 그 길을 따라 걸을테니까. 이제 임정로드는 고유명사처럼 정부 공식 행사에서도, 방송에서도 쓴다. 출처 없이 마구잡이로 써댈 때면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임정로드를 다녀온 사람들의 인증샷을 보면 뿌듯하다. 

김 기자의 <임정로드 4000km>는 다큐와 함께 나왔다. 오마이뉴스의 다른 청년 기자들과 21박22일 동안 임정로드를 걸었고, 글과 영상으로 엮어냈다. 출발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2017년 12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을 때 사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최초였는데, 문 대통령은 함께한 정부 요인들과 함께 청사 앞 계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그 모습이 72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이 임정 요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백범의 계단’에 서서 잊혀져 간 독립운동가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뉴스1 / 청와대 제공
중국 충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 독립유공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17.12.16

- <임정로드 4000km>와 <약산로드 7000km>,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까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째 비슷해 보인다.

=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다루기 때문에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책의 목적은 분명히 다르다. <임정로드 4000km>는 ‘독립운동가들이 걸었던 길을 우리 다함께 걸어보자’는 일종의 여행서, <약산로드 7000km>는 독립운동사의 거두이지만 저평가된 약산 김원봉을 알리는 안내서, 그리고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친일파 발 밑에 독립운동가들이 묻혀있는 기막힌 현실을 바꿔보자는 제안서다. 조금씩 다르지만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공통점이 있다.

 

광복 75주년, 친일파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혔다

광복 75주년을 맞는 올해 ‘친일파 현충원 안장’ 논란이 일었다. 백선엽 장군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면서다. 백 장군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 명이다. 6·25전쟁 주요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로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올랐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독립군 부대를 토벌하는 간도특설대로 활동했다. 백선엽 장군은 이 같은 친일 이력에도 한국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현충원에 묻혔다. 백 장군을 포함해 친일반민족행위자 12명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뉴스1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고인의 위패와 영정사진 등이 장지에 들어서고 있다. 2020.7.15

- 어찌 보면 원수였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나란히 묻힌 건데,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 나란히도 아니다. 친일파 무덤 아래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줄지어 있다. 실제로 보면 더 기막히다. 백선엽과 마찬가지로 독립군을 토벌했던 김백일의 묘에 서면 저멀리 한강과 롯데타워, 63빌딩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명당 중 명당이다. 그 발 아래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있다. 구조가 이렇다보니 독립운동가 묘 앞에 서서 절을 하면, 그 위에 묻혀있는 친일파에 절을 하고 있는 꼴이 된다.

 

-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자주 소통하는 걸로 안다. 이 현실에 대해 뭐라고 하시나?

= 백선엽이 대전 현충원에 묻혔을 때, 독립운동가 차리석의 아들 차영조 선생이 말씀하셨다. ‘왜 우리한테만 양보를 요구하냐, 독립운동하고 3대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한테만 국민 통합을 운운하면서 양보해라고 하는 거냐.’ 후손들이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다. 단지 친일파라는 걸 기록해달라는 것 뿐이다. 실제로 현충원에 가보면 나라가 인정한 친일파의 묘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친일파인지 알려주는 글 한 줄 없다.

 

- 사실 ‘친일파 현충원 안장’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못 고치는 건가, 안 고치는 건가?

= 법 개정이 안 돼서 그렇다. 상훈법국립묘지법을 고쳐야 한다.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였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이야기가 활발히 나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당시 대표 발의한 의원이 지금의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아버지 김근수 선생은 조선의열단 단원이었고, 어미니 전월선 선생은 여성광복군이었다.) 

뉴스1
현충원에서 친일파들의 묘를 이장시키는 이른바 '파묘' 괸련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2020.8.13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등을 거치면서 역사가 화두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친일파 현충원 안장’ 문제가 다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친일파들의 묘를 이장하는 이른바 ‘파묘‘법을 내고 있는데,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 광복회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파묘‘를 찬성하는지를 물었는데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185명이 ‘현충원 내 친일파 묘 이장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엔 미래통합당 의원 43명도 포함이다.

 

”일생에 한 번은 ‘백범의 계단’에 서라”

김종훈
오마이뉴스가 제작한 로드 다큐 '임정'의 주인공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순례길 '임정로드'를 처음으로 함께 걸어낸 사람들이다. 왼쪽부터 김종훈 기자, 중국어 통역을 맡았던 최한솔씨, 김혜주 기자, 정교진 기자다. 2018.6

- 연달아 낸 세 책 모두 ‘가이드북’ 형태로 제작됐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가?

=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책으로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봐야하기 때문이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에서는 현충원에 안장된 비공인 친일파들의 행적까지 기록했다. 함께 안장돼 있는 애국지사들의 역사도 더했다. 사실 나도 인간인지라 쓰면서 화가 났다. 하지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읽으면서 분노하면 실제로 그곳을 찾지 않을 것 같아서다. 또 가이드북으로서 충실하기 위해 지도도 꼼꼼하게 그렸다.

 

″바로 걷고 또 걸어야 길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임정로드 4000km> 110쪽.

 

- 실제 가이드를 하기도 했나?

= 임정로드를 홍보할 때 ”일생에 한 번은 백범의 계단에 서라”는 문구를 썼다. 백범 김구와 문재인 대통령이 섰던 그 계단이다. 책을 내고 독자들과 함께 임정로드를 5번 정도 걸었다. 투어를 마치고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 ”그동안 몰라서 못왔다”는 거였다. 더 많은 분들이 임정로드를 걸으면서 길을 계속 내어줘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지금은 임정로드를 찾는 분들이 늘었다고 들었다. 중국의 자싱이라는 도시에는 김구 기념관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자싱은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밀양사람 김원봉이오!’하고 말하는 그곳이다.) 자싱 김구기념관의 방문객은 한 달에 겨우 5~6명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자싱은 여행 명소가 되었고, 바로 옆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생겼다. 카페의 이름도 ‘킴스카페’다.

 

”애국하는 김기자!”

김종훈
김종훈 기자는 중국, 일본, 대만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취재하기도 바쁠 텐데, 책까지 쓰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 직업이 기자이고, 취재가 일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회사에 묶여있는 몸이다 보니, 마냥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그래서 연차와 사비를 탈탈 털었다. 추가 취재를 한다고 중국, 일본, 대만으로 몇 차례 다니면서 1300만원 정도를 썼다. 책을 쓰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거의 못가진 것 같다. 곧 아내가 될 여자친구의 희생이 컸는데,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다. 

 

- 사비를 들여가며 취재를 하고 책을 내는 이유가 뭔가? 혹시 책이 잘 팔리나?

= 책이 잘 팔리면 좋겠지만, 책을 팔기 위해서 취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역사가 아닌 일상으로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싶다. 나는 대단한 전문가가 아니다. 대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쉬운 말로 풀어내는 역할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다. 일상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숨쉬도록, 시민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고, 산책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다.

HUFFPOST KOREA/HANGANG KIM
<임정로드>를 출판했을 때, 백범 김구가 광복군에게 나눠준 배지와 같은 모양의 배지를 제작했다. 김종훈 기자는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면 이 배지를 착용한다.

임시정부 청사엔 의류쇼핑몰 H&M이, 약산 김원봉의 집터엔 허름한 옷가게가 있다 

 

- 해외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취재하는 일이다보니 참 고생스러웠을 것 같다.

=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다. 국내에서 취재한 내용으로 직접 가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두 번째 청사 자리엔 의류 쇼핑몰인 H&M 매장이 있었고, 약산 김원봉의 집터는 충칭의 한 시장에 있는데 창고대방출을 하는 허름한 옷가게로 남아있었다. 그런 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야 하다니. 오마이뉴스에 입사하면서 기자 소개글에 ‘애국하는 김기자!’라고 딱 한 줄 적었는데, 그 마음이다.

‘웃픈’ 일도 많았다. 중국에서는 영어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고급 호텔에서도 영어는 씨도 안 먹힌다. 그래서 중국에 있을 때는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윤봉길 의사의 생전 마지막 한 달이 궁금해 일본에 갔다. 윤봉길 의사 사형터가 있는 자위대에 관광객인 척 슬쩍 들어갔는데 곧바로 총을 든 일본 군인들이 다가오더라. ”투어리스트(tourist)! 투어리스트(tourist)!”를 외쳤지만 질질 끌려나왔다.

 

- 세 번째 책이 서점에 깔리기도 전인데 벌써 네 번째 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이번엔 무슨 내용인가?

= 이번엔 친일파 기념 사업이다. 서울 곳곳에 친일파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민간 사유지가 아니라 세금이 들어가는 공유지다. 그런가하면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기리는 비나 동상은 어렵게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 전국을 돌면서 이런 현실을 묶어낼 계획이다. 이번에도 발로 쓴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