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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체력에서 철인으로 : 53세 여성의 인생을 바꾼 것은 운동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허프가 만난 한국 여성 ②

3월 8일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 여성 두명을 만나 그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여성은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넥스트 인패션’의 우승자 민주킴이며, 두 번째 여성은 저질 체력의 직장인이었으나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는 체력의 소유자가 된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씨입니다. 

여전히 찬 바람이 몰아치는 3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거리에서 영미씨를 처음 만났다. 몸을 숙이고 도로 끝에서 사이클을 타다 멈춘 모습이다. 작다. 날렵하다. 단단하다. 날쌘 다람쥐 같은 느낌이랄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런 아우라를 풍기는 50대 여성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처음 마주하는 단단한 50대 여성을 앞에 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운동 중인 영미씨 
운동 중인 영미씨  ⓒ이영미씨 제공

영미씨가 운동을 처음 시작한 건 마흔살이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던 영미씨는 출판사 에디터가 되었고 여느 다른 직장인처럼 저질 체력의 소유자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던 그때, 영미씨는 운동을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생기와 활력이 부러웠고,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밤에 공터를 달렸고, 바구니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집 앞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질 체력의 직장인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슈퍼 체력이 될리는 없다.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서서히 늘려갔다. 공터 한바퀴로 시작한 달리기는 열바퀴로 늘어났고, 아침 수영의 맛에 빠져들었고, 출근길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남편을 따라서 간 철인 3종 모임에서 두 아이를 둔 동갑내기 여성이 익숙한 솜씨로 힘든 운동을 해내는 걸 목격했다. 그런데 웬걸. 이 여성뿐만이 아니었다. 대회에 나간 남편을 응원하러 갔다가, 이 힘든 운동에 도전한 몇몇 여성들을 또 마주쳤다. ‘운동선수 출신도 아닌데 나 같은 평범한 여성이 저렇게 힘든 운동을 해낼 수 있다고?? 정말?? 그럼 혹시 나도??’ 영미씨 마음에서는 ‘나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갔다. 

영미씨의 키는 153cm다. 영미씨는 작지만, 크다. 
영미씨의 키는 153cm다. 영미씨는 작지만, 크다.  ⓒ이영미씨 제공

2007년, 운명의 첫 경기 날. 폭우가 쏟아졌다. 수영을 해야 하는데 영미씨 앞에 있는 것은 잔잔한 호수가 아니다. 철렁이는 흙탕물에는 죽은 쥐 한마리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도저히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수영장 물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두려운 경험”이 또 없었건만, ‘수영장처럼 딱 25m만 가보자‘고 생각했다. 두려움과 공포에도 낑낑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결국 영미씨는 첫 경기를 완주해내는 ‘인간승리’를 거두게 된다. 비록 꼴찌긴 해도. 이날의 경험은 영미씨의 운동에, 그리고 인생 자체에도 중요한 티핑 포인트가 되었다.

 

몸이 서서히 강해지면서 인생이 달라지다

철인 3종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영미씨는 이제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철인이다. 페달을 힘겹게 돌리면서도, 눈앞의 한 고비만 넘어 보자고 마음먹고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묵묵히 오른다.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영미씨는 아무리 죽을 것 같은 가파른 언덕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우쳤다.

단단해진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 눈물콧물 흘리며 좌절하다가도 다시 일어나 운동하고 완주하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인생의 고비 앞에서 쉽게 무릎 꿇지 않았다. 큰 도전을 앞두고 움츠려 들 때마다 ”죽은 쥐가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에서 1.5km나 수영을 하고 나온 내가 뭔들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소극적 성격, 막연한 공포심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몸이 자라면서 점점 운동장에서 밀려났던 여자아이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다시 운동장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와 그 중심에 서게 됐다. 그곳에는 책상 앞에서 맛보지 못한 희열과 성취감이 있었다.

약 20년 전의 모습. 영미씨는 아들을 둔 엄마이다. 
약 20년 전의 모습. 영미씨는 아들을 둔 엄마이다.  ⓒ이영미씨 제공

영미씨의 현재 한국 나이는 53세다. ”실례지만 몇살이세요?”라는 질문에 영미씨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이를 잊고 산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흔살 일 때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아요. 전 지금이 절정이거든요.”

영미씨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향해 ”사회의 잣대에 휘둘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저도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사회의 잣대에 휘둘리기 쉬웠을 것 같아요. 이 나이에는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여자니까 얼굴은 하얗고 몸은 날씬해야 하고 등등.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잣대는 남자들의 그것과 다르잖아요.”

ⓒSANGAKWAK / HUFFPOSTKOREA

″여성들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서서히 강해지는 자신’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육체적으로 강해져서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무엇이든 당당하게 맞서길 바랍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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