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0년 03월 08일 10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3월 08일 16시 17분 KST

넷플릭스 '넥스트 인 패션' 초대 우승자 디자이너 김민주는 자신이 없어서 겸손한 게 아니다

세계 여성의 날|허프가 만난 한국 여성 ①

3월 8일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 여성 두 명을 만나 그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번째 여성은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넥스트 인 패션’의 우승자 김민주이며, 두 번째 여성은 저질 체력의 직장인이었으나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는 체력의 소유자가 된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씨입니다.

삼성디자인교육원(SADI) 패션디자인학과 졸업생,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석사, 한국인 최초 H&M 디자인 어워드 대상 수상자, LVMH 영 디자이너 프라이즈 준결승 진출자. 이렇게만 봐도 인상적인 디자이너 김민주의 이력서에 최근 한 줄의 경력이 더 추가됐다. “‘넥스트 인 패션’ 초대 우승자”

NETFLIX
김민주

패션 디자이너 김민주는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에서 17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종 우승자로 선정됐다. ‘넥스트 인 패션’은 전 세계에서 모인 디자이너 18명이 상금 25만 달러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네타 포르테’ 입점 기회를 놓고 겨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지난 1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편이 동시에 공개됐다.

김민주는 지난 5년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민주킴’(MINJU KIM)을 운영해왔다. 이전까지 해외 생활을 해온 그는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가 하면, 아이돌 그룹(방탄소년단, 레드벨벳) 의상을 제작하며 국내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가 ‘넥스트 인 패션’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한국에서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넥스트 인 패션’ 마지막 회에서 그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김민주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넥스트 인 패션’은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그리고 내가 얼마나 능력있는 디자이너인지를 깨닫게 했다. 지금 나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프로그램이 공개된 지 한 달여만인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김민주는 일상으로 돌아와 브랜드 활동에 한창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25만 달러를 손에 쥔 이후에도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제가 했던 걸 인정받았잖아요. 변하지 않고 똑같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NETFLIX
김민주

‘넥스트 인 패션’ 초대 우승자, 민주 킴

‘넥스트 인 패션’ 초대 우승자가 된 걸 축하해요. 프로그램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한국에서 알려지고 싶었어요. 제가 뭘 하는지, 어떤 브랜드를 운영 중인지, 왜 이런 옷을 만드는지를 너무 알려주고 싶었어요. 홍보가 중요한 데 이거(‘넥스트 인 패션’)만큼 괜찮은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든 거예요. 친언니의 엄청난 푸쉬로 참가하게 됐는데 사실 저는 걱정이 많았어요. 이미 5년 정도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니까 많이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재충전도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패션을 좋아하고 이제까지 자기 브랜드를 끌어왔던 디자이너들을 만날 것 아니에요? 그 사이에서 ‘제 지친 마음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출전하게 됐어요.

캐스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패션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에서 민주씨를 추천했다고 하던데.

=저도 그건 비하인드로 들었어요. 어떻게 알고 나한테 연락을 했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비즈니스 오브 패션에서 꼽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열 명의 신인 한국 디자이너 중에 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연락이 온 건 2018년 겨울쯤이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걸 계획하고 있는데 어때?”라고 묻는 정도였어요. 진지하게 연락이 온 건 2019년 1월이었고요. TV쇼에 출연하는 것이다 보니까 과정이 정말 복잡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걸 자료로 축약해서 보내야 했거든요. 예를 들면 재봉을 하거나 원단을 펼치는 모습, 스케치하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보내야 했어요. 포트폴리오도 보냈고 화상 인터뷰도 엄청 많이 했어요. 정신 감정도 해야 했고요.

정신 감정을요?

=문항을 보니까 600개나 되더라고요. 화상 통화로 한 시간 동안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사람을 바라보는지 다 확인을 하셨어요. 나중에 결과를 받았는데 꽤나 괜찮게 나온 거예요. 그분이 저보고 “너는 강한 멘탈을 가졌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이틀마다 새로운 옷을 만들어야 했는데 압박감이 심했을 듯해요. 화면에서도 그 부담이 느껴졌어요.

=화면은 현실을 미화해 보여주곤 하잖아요. 실제로는 더 심했거든요. 카메라는 돌아가고 옆에서는 다 만들고 있으니까 안 할 수는 없고요. 근데 뭐, 서바이벌이니까요. 경연 도중 인터뷰할 때 엔젤(*경연 초반 김민주와 한 조를 이뤘던 중국인 디자이너)이 그러더라고요. “아무도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 이건 너무 심해” 그래서 제가 “그래도 서바이벌이다. 해야지”라고 했거든요. 그런 장면은 다 편집됐더라고요.(웃음)

촬영은 총 한 달 반 동안 했다고 들었는데, 매 과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요?

=처음 18명이 시작했을 때는 이틀 과제하고 이틀 쉬고를 반복하고 주말 하루는 인터뷰를 했어요. 그러다 12명으로 추려졌을 때 가속도가 붙었어요. 이틀씩 과제를 세 번 진행하고 하루 인터뷰를 했죠. 다니엘(*김민주와 결승에 함께 오른 영국 출신 디자이너)과 정말 힘들다고 했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서바이벌이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스케줄이 당연한 거죠. 극한의 상황에 저희를 두고 얼마만큼 할 수 있느냐를 보는 게요. 서바이벌이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프로젝트 런웨이’나 ‘도전 슈퍼모델’ 같은 다른 패션 관련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출연자들이 서로 협동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건 우리가 학생이 아니라 이미 자기 브랜드를 운영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서 하나의 옷을 만들어 내게 되거든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촬영 중에도 자기 브랜드에서 일하듯 자연스럽게 서로의 의견을 물어본 것 같아요. 사회 경험이 없는 상태로 경연에 출전하면 욕심이 나기도 할 텐데 저희는 이미 그런 시기를 지났거든요. 철저한 심사 덕분이기도 할 테지만 서로 배척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NETFLIX
'넥스트 인 패션' 준결승 진출자, 왼쪽부터 애쉬튼 히로타, 다니엘 플레처, 김민주, 엔젤 첸

참가자 중 안젤로(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와 마르코(미국 출신 디자이너)가 눈에 띄었어요. 안젤로는 항상 행복해 보였고, 마르코는 촬영 중 사고로 다쳤는데도 치료만 받고 복귀해 과제를 완성하는 모습이 인상 깊더라고요.

=안젤로는 사람이 딱 방송에 나온 그 자체예요. 재봉은 아예 못 하지만 엄청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거든요. 그 친구는 사람이 너무 착해요. 중간에 다른 출연자들에게 요가도 가르쳐주고 손도 마사지해주는가 하면 향초도 가져와서 피워주기도 했고요. 자기 호텔 방에는 항상 꽃을 꽂아뒀어요. 정말 사랑스러웠죠. “우리가 지금 모인 건 너무 행복한 일이고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다”라고 해서 저희 모두 좋은 기운을 받았어요.

마르코는 다친 뒤에도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급하게 하다 보니까 다친 건데 사실 우리들 잘못인 거잖아요. 물론 제작진의 잘못도 있었고요. 폴대를 잘 설치해뒀어야죠. 그런데 마르코는 그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고 가서 치료받고 돌아와서 바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아, 근데 애쉬튼(마르코의 파트너)은 제작진이 폴대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데 대해서 조금 화나긴 했던 것 같아요. 둘은 너무 친한 친구 사이거든요.

시청자로서 신기했던 건 디자이너들의 속도였어요. 주제가 주어지자 마자 어떻게 그렇게 바로 디자인을 생각해냈나요?

=살려고요.(웃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30분 만에 디자인을 정해야 시간을 쪼개서 잘 쓸 수 있으니까요. 막 던지는 거죠.

경연이 진행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어요. 가장 힘들었던 과제는 뭐였나요?

=솔직히 힘들었던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저를 넣는 거였어요. 저는 제 옷을 입은 사람이 섹시하지 않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란제리 과제’를 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섹시가 뭔지는 알겠더라고요. 저는 ‘섹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액티브웨어 과제도 어려웠어요. 그런 소재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날 현장에 가보니까 평소와 다른 재봉틀이 있더라고요. 직기 재봉틀이랑 수영복 같은 소재를 박는 삼봉 재봉틀은 다른 데,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걸 가지고 어쩌라는 건지… 30분 만에 마르코한테 다 배워서 할 수 있었어요.

반면에 자신 있는 과제도 있었나요?

=정장 만드는 과제가 자신 있었어요. 그건 기술이 중요하고 어떤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스트리트웨어를 만들 때는 엔젤이 스트리트웨어 전문이니까 자신이 있었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록 챌린지도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김민주와 엔젤은 록 챌린지에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그때는 엔젤이 텐션이 너무 떨어진 상태였어요. 사람이 뭘 할 수가 없는 상태인 거예요. “하던 일 멈추라”고 했는데 엔젤이 만들어둔 옷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에서 보인 대로 네 시간 만에 제가 남성복을 다 만들었어요. 그때 잘할 수 있었는데 엔젤이 너무 힘들어했어요. 확실히 저희의 전공은 저희가 잘해요. 프린트와 패턴, 정장, 레드카펫까지는 너무나 순조로웠는데 그 뒤로는 체력도 떨어지고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NETFLIX
엔젤 첸과 김민주

중간중간 인터뷰를 보니 항상 똑같은 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경연이 모두 끝난 뒤에 한 번에 촬영한 건가요?

=과제가 끝나고 주말마다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인터뷰할 때는 항상 똑같은 옷을 입었고요. 매 과제에 대한 기억을 살려야 했죠.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 화가, 프리다 칼로

‘쇼 스토퍼’(Show stopper,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마지막 의상)가 마지막 과제로 주어졌을 때 영국 출신인 다니엘은 1920년대 ‘브라이트 영 씽’(Bright Young Things, 1920년대 런던의 젊은 사교계 명사들)을 생각해냈고 민주씨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떠올렸어요. 그 순간 프리다 칼로를 컬렉션 주제로 삼은 이유는 뭐였나요?

=제 브랜드는 겉에서 보기에 굉장히 부드럽고 여성스럽지만 동시에 그 반대의 미를 같이 보여주려고 해요. 너무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이상하면서도 모호한 아름다움을 항상 생각하는 거죠. 프리다 칼로는 저에게 그런 인물이에요. 옷을 입은 걸 보면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내면은 굉장히 어두웠어요. 그 누구보다 어두운 삶을 살았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본인이 하고자 하는 걸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한 거죠.

항상 프리다 칼로를 주제로 한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사실 너무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미 프리다 칼로에 대한 컬렉션을 한 번씩은 선보였거든요. 장 폴 고티에도 그렇고 정말 많아요. 자료를 찾아보면 다른 디자이너가 한 게 되게 많이 나와서 왠지 비교당할 것 같고 이미 나온 옷과 비슷한 게 나올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때는 망설일 새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순간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떠오른 거예요. 이제까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못 해봤던 것, 그 순간엔 그것 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프리다 칼로를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 화가”, “강인한 여성의 대명사”라고 칭하며 그처럼 되고 싶다고 했어요. 프리다 칼로의 어떤 면을 닮고 싶었나요?

=프리다 칼로에 대한 영화를 봤을 때 가장 감명 깊었던 건 무슨 상황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걸 굽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감성을 작업으로 표현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도 그 사람의 강인함을 닮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잖아요.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고요. 저는 프리다 칼로를 그렇게 봤거든요. 그에 대한 영화를 볼 때 “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NETFLIX
김민주
NETFLIX
김민주의 쇼 스토퍼

영화감독들은 작품을 구상할 때 ‘이 역할은 이 배우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잖아요. 디자이너도 그런 마음이 들곤 하나요? 특히 마지막 ‘쇼 스토퍼’ 웨딩드레스를 꼭 입혀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특이하게도, 저희 브랜드는 뮤즈가 없어요. 디자이너들은 알렉사 청이라든지, 뮤즈를 두고 이미지를 만들잖아요. 저희는 그런 게 없어요. 제가 프리다 칼로를 주제로 정했으면 프리다 칼로가 입는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번 컬렉션을 만들 때 프리다 칼로가 지금 이 시대에 있다면 이런 옷을 입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옷을 만들었어요. 앞선 과제들과 달리 마지막 과제에서는 모델을 고를 기회도 주어졌어요. 제가 ‘프리다 칼로’ 컬렉션을 만들면서 피부 톤이나 인종이 다양한 모델들을 원했어요.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다르게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제가 다니엘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단 한 가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니엘보다 조금 더 오래 일을 했다는 것. 그거 하나였던 것 같아요. 정말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조건이었잖아요. 누구 하나 나은 조건 하나 없이요. 그래서 이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다니엘이 영국에 돌아가서 자기 컬렉션을 들고 왔으면 내가 그를 이길 수 있었을까?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속상했거든요. 돌아가서 제대로 된 컬렉션을 들고 오면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름 엄청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 짧은 시간에 컬렉션을 만들어 낸 게요. ‘내가 이런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이름이 불렸을 때는 어땠어요? 화면에서도 그 감격이 느껴졌어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넥스트 인 패션! 날 따라와~” 이런 거 안 했을 것 같아요. (웃음) 그때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엄지를 척 들고 깜짝 놀라서 너무 울기도 했고요. 화면에 조금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

네타포르테가 함께 하는 경연이기 때문에 판매 가능성도 중요시됐어요. ‘넥스트 인 패션’은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일상과 굉장히 가까웠잖아요. 주제 자체도 그랬고요.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워야 했죠. 그러다 보니까 ‘과연 내가 우승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심 기대는 했지만요. 이름이 불렸을 때는 끝났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긴 것도 좋았지만 더 이상의 챌린지는 없다는 생각이었죠. “이제 집에 간다!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끝나기 전에 다니엘이랑 약속을 하나 했어요. “우리 중 누가 되든 누가 떨어지든 상관없다. 경연 끝나고 일주일 동안 같이 여행을 하자. 같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자” 그래서 경연 마치고 다니엘이랑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가고 일주일 동안 여행을 했죠.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마르코도 만났고요.

다니엘과는 원래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워낙 친해 보여서요.

=아니요. 거기서 처음 만났어요. (웃음)

NETFLIX
다니엘 플레처와 김민주

해외 출신 한국인 디자이너, 여성, 그리고 인간 김민주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었나요?

=촬영할 때 다른 참가자들이 “민주야, 이기면 상금 어디다 쓸 거니?”하고 묻길래 “이길지, 안 이길지 모르는 데 뭔 돈 얘기를 벌써 하냐”라고 맨날 그랬거든요. “네가 이길 것 같아”라고 하면 “난 잘 모르겠어”라고 하고요. 그래서 제 인터뷰는 다 편집됐어요. 저는 “이기는 건 내 목표가 아니야. 매 순간 최선은 다하겠지만 우승은 운에 달렸지” 그런 말을 많이 했던 많이 했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따라줘야 하거든요. 외국인들은 이런 마인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저의 이 진지한 모습은 빠지고 개그 코드로만 뽑혔더라고요.

인터뷰에서 종종 남들이 잘한다고 해도 겸손한 모습을 보이곤 했어요. 겸손한 모습이 아시아 여성의 특성이라는 의견도 나오더라고요.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그 모습이 좋다고 생각해요. 겸손함에서 나오는 진짜? 외국인들은 항상 당당하잖아요. “난 너희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러 나왔어” 이러면서요. 저는 진지해서 그래요. 조금 더 잘하고 싶어서 한 번 더 고심하고요. 제가 끝까지 노력했다는 걸 증명하려고 한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겸손해지려고 하는 거죠. 그래야 더 좋은 게 나오니까요. 그래서 나온 모습이지 ‘나 못해’ 이런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 이름을 더 알리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 경연을 거치면서 그 목표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충분히 다가갔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반응을 받고 있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세요. ‘역시 TV만 한 게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사람들에게 좋은 무언가를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쏟아지는 패션, 어떤 면에서는 너무 반복되는 패션 업계 속에서 다들 조금 지쳐있는 상황이기도 했잖아요. 그 속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한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사람들이 알고 있던 패션 세계에서 그 경계를 조금 더 넓혀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미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해요.

NETFLIX
김민주, '넥스트 인 패션' 런칭 행사

한국에서 시작해 해외로 진출하는 디자이너는 많아도 반대 사례는 드물어요. 민주씨는 해외에서 시작해 한국으로 들어온 사례인데, 그 이유가 뭔가요?

=저는 외국에서 쭉 공부를 했잖아요. H&M 디자인 어워드도 벨기에 디자이너 자격으로 나갔고 대상을 받았을 때도 벨기에 신문에 벨기에 디자이너라고 나왔어요. LVMH 영 디자이너 프라이즈에도 벨기에에 있을 때 참가했고요. 저 자신도 한국 디자이너라고 생각을 잘 못하고 있었어요.

정구호 선생님께서 서울 컬렉션 총괄 감독을 하셨을 때 “내가 토대를 둔 곳에서 판매도 하고 잘 돼야지 브랜드가 더 오래갈 수 있다. 아무리 밖에서 잘해봐야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못 받으면 오래 못 간다”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국내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제품도 올려봤고 서울 곳곳에서 프리젠테이션과 프리오더도 해봤어요. 처음에는 고객이 5명 밖에 없었는데 그게 10명으로 늘어나고 그 기세가 계속된 거죠. 저는 제 고객을 만나는 게 좋고, 쇼룸에 오신 분들에게 옷도 입혀드리고 설명도 해드리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그런 걸 조금 더 늘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에 나를 더 알려서 우리 옷을 입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단순하게.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질감도 느꼈을 듯해요.

=격차를 많이 느꼈어요. 사람들은 저희 옷이 굉장히 독특하고 특이하다고 얘기하는 데 제 눈에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거든요. 외국 사람들은 아웃스탠딩(outstanding, 특출하다)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웃스탠딩한 걸 두려워해요. 그런데 저희 옷은 아웃스탠딩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우리 옷이 좋은 거라고 인식시키는 게 어려웠어요. “이거 무섭지 않아, 입을 수 있어!”라는 인식을 주는 게요. ‘넥스트 인 패션’이 좋았던 건 10화까지 제가 왜 이런 옷을 만드는지, 이게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계속 보여줬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더라고요. 분명 우리나라에는 좋은 문화도, 좋은 디자이너도 많거든요. 사람들도 조금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기가 입는 옷과 선택의 폭이 넓어질 테고, 더 멋져질 테니까요.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라던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 생각나네요.(웃음) 경연 내내 브랜드 경영을 맡은 언니의 제어를 넘어 창의적인 걸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언니 역시 “제가 동생의 창의력을 막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다”라며 눈물을 흘렸고요. 경연 이후에 달라진 건 없나요?

=없어요. 언니는 똑같은 언니예요. 저희가 서울 컬렉션이나 다른 쇼를 하면 다섯에서 여섯 피스는 제가 무조건하고 싶은 걸 해요. 언니가 기회는 주는데 저는 1부터 10을 다 달리고 싶다면 저희 언니는 5에서 7까지만 달리라고 하는 거죠.

제가 ‘넥스트 인 패션’ 출연하기 전에 저한테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연락을 한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창의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미친 걸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제작진이 원하는 건 제가 생각하는 ‘앤트워프의 창의력’이 아니었어요. 주제도 데님에 정장에… ‘우리 언니랑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제로 저를 막아버린 거죠.(웃음) 언제쯤이면 창의력 있는 주제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는데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NETFLIX
김민주

사실 예전부터 저를 지켜봐 온 분들은 제가 엄청나게 달라진 걸 느끼실 거예요. 당시에는 창의력밖에 없는 아이였거든요. 10년이 지난 지금 프리다 칼로 컬렉션을 한 거 보면 큰 차이가 있어요. 프리다 칼로 컬렉션마저도 저한테는 ‘미친’ 게 아니에요. 저한테는 20% 정도? 하지만 패션이라는 게 ‘야단법석‘이어서 예쁘고 멋지다기보다는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하면서 만드는 복합적인 예술이잖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디자인‘이기도 하죠. ‘디자인’이라는 건 사람을 위해 어떤 것을 만드는 행위를 뜻하잖아요.

그렇다면 100%의 김민주 스타일은 뭔가요?

=100%를 다 보여줄 기회가 생기면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전시를 열어서 패션 작품을 만드는 것. 집요하게 장인 정신도 더하고 예술적인 걸 만드는 거죠. 저는 그래픽 면에서도 더 나아갈 수 있는데 더 못 나아갈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림 그리는 걸 멈추지 않고 있어요. 어느 순간 브랜드가 다 자리를 잡고 나면 예술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저한테 도움이 돼요. 창의력을 끝까지 분출하라고 이끌어주는 데서 100%의 김민주가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싫어하지만요. (웃음)

한국에서 알려지고 싶다는 목표에 다가섰다고 했는데, 지금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나요?

=저랑 저희 팀은 이제까지 우리가 했던 걸 인정받았잖아요. 그래서 변하지 않고 똑같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디자인을 알리고 싶은데 지금 워낙 시국이 이러니까 내부 정리를 하고 있어요. 상금을 쓸 곳이 드디어 추려졌어요. 국제적인 플랫폼을 사용해서 브랜드를 더 발전시키는 거죠. 저희를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희 브랜드가 아직은 소비자들의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지는 않아서요. 그러다 보니까 해야 할 일이 많더라고요. 디자인 면에서는 항상 해왔던 걸 똑같이 변하지 않고 해야죠.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민주씨와 만나게 됐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도 여성 디자이너로 성장하며 벽을 느낀 적이 있어요. 패션계에는 워낙 남자들이 많고 ‘넥스트 인 패션’에서 보셨듯이 모두가 퀴어잖아요. 저는 여성은 물론이고 모두 다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목소리가 있다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게 언젠가는 목표에 닿거든요.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말은 여성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하고 싶어요. 옛날 저희 교장 선생님이 항상 저한테 그 말을 해주셨던 말이거든요. 그게 지금 저를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김태우 에디터: taewoo.kim@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