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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때 미국에 이민 온 나는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싫고, 백인을 동경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시아계인 게 자랑스럽다

‘난 다른 동양인보다 백인에 더 가깝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저자 샤론 권
저자 샤론 권 ⓒCOURTESY OF SHARON KWON

3살 때 미국에 온 순간부터 살아남기 위해 백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한때 내가 한국인인 게 너무 싫었다. 금발 푸른 눈에 마른 몸매의 백인을 TV와 영화에서 보며 동경했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내 작은 눈과 평범한 몸이 싫었다. 미디어에는 온통 아름다운 백인들만 보였다. 심지어 부모님조차 내게 코를 성형하고 광대뼈를 깎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부모님 눈에도 그게 아름다워 보였던 거다. 미의 기준이 백인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인인 게 부끄러웠다. 미국에서 다른 이들의 눈에 우린 미개하고, 시끄럽고, 마늘냄새나고, 어색한 영어와 이상한 억양을 갖은 사람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폐쇄적이었고 다른 이들과 소통이 어려워 보였다. 

그런 이유로 미국에서 살면서 다른 동양인과 가까이하기 싫어했다.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처럼 나도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과 같다고 인정하기 싫었다. 아시안인들이 항상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게 너무 싫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느꼈다. 한국어에 비해 영어는 훨씬 조용하고 침착하게 들렸다. 난 내가 다른 동양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다른 동양인들을 놀리곤 했다. ‘난 다른 동양인보다 백인에 더 가깝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겨우 3살 때 미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거의 평생을 백인의 삶을 동경했다. 성장기에 나는 백인들의 문화에 참여하고 싶어 필사적이었다.  

저자 샤론 권
저자 샤론 권 ⓒCOURTESY OF SHARON KWON

성인이 된 후 방문한 한국에서 인생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꼈다

백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들의 시선으로 동양인을 바라봤다. 인종차별 농담에 웃고, 그들이 동양인에 가지는 페티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내 문화적 배경을 비웃을 때도, 외모를 놀릴 때도 맞장구쳤다. 그게 내 생존 방식이었다. 학교 갈 때 다른 백인 아이들이 먹는 점심 도시락을 싸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한 친구가 내게 이상한 냄새가 남다는 말을 한 순간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수를 뿌렸다. ‘한국인 냄새’를 완전히 가리고 싶었다. 

좀 더 나이를 먹은 후에야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부모님은 대가족 출신으로 한국에 친척이 많았다. 미국에서 난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에서는 환영받았다. 서울 생활은 천국이었다.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을 느꼈고 미국에서 그렇게 싫었던 한국어도 너무 좋게 들렸다. 미국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을 느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서 슬픈 역사를 배웠고 식민주의가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잘 살기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왔지만 사실 이 꿈은 백인에게만 해당된다. 희망을 안고 미국에 온 후 부모님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다시 삶을 시작해야 했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러스 폭동 때 경찰은 백인 동네만 지키고 흑인과 한국인이 주로 사는 동네는 폐허가 됐다. 현재는 많은 아시아 여성들이 인종차별 증오 범죄의 대상인 걸 실감하고 있다.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백인처럼 살 수 없다. 

 

한국에 대해 한인 교회와 좁은 한인타운을 넘어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됐다

미국에 돌아온 뒤 새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한인 교회와 좁은 한인타운에서만 배운 걸 넘어서 진짜 한국을 알게 됐다. 이제 한국인이라는 내 배경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존중하게 됐다. 먼저 나와 같은 한국계 미국인 상담사를 만나 인종차별 경험과 정체성 문제를 상담했다. 비로소 이런 문제를 겪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성장기에 아무런 지침이나 지원 없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런 상담 치료를 받고 내가 한국인이면서도 미국인으로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샤론 권
샤론 권 ⓒCOURTESY OF SHARON KWON

요즘에는 한국어와 영어 모두 유창한 게 자랑스럽다. 한인타운에서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심리 상담을 제공할 때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김치 담그는 일도 좋아하고 매년 김치를 만들어 매운맛을 즐기는 미국인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어디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을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질문의 진짜 뜻을 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라는 뜻이다. 이제 항상 이 질문에 자랑스럽게 ”난 한국계 미국인이다”라고 답한다. 미국은 모든 인종과 사이즈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인 곳이다. 세계에 백인만 행복한 미국이 아닌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미국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저자 샤론 권은 옐로체어콜렉티브에서 인종차별 트라우마와 정체성으로 힘들어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및 이민자들의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그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독자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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