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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100억 낸 국내 기술, 삼성은 특허료 안내려 ‘꼼수’

삼성전자는 합의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

ⓒ한겨레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등에서 쓰이는 모바일 핵심 기술을 특허 사용료를 내지 않고 3년 동안 쓰다가 소송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가 재직했던 국립대 쪽을 여러 차례 만나 특허 소유권을 주장하는 맞소송을 내도록 부추긴 정황이 22일 드러났다. 삼성전자와 달리 인텔은 이 교수 쪽에 100억원의 사용료를 내고 특허 기술을 쓰고 있다.

사연의 시작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종호 서울대 교수(전기공학)가 당시 재직하던 원광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은 합작 연구로 ‘벌크 핀펫(FinFET)’이라는 기술을 발명했다. 이 기술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 등에 쓰이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로 높은 성능과 저소비 전력을 통해 모바일 기기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통상 특허권은 발명 당시 소속 기관이 가지는데, 미국 법원에 제출된 공개 서류를 보면 원광대는 특허 출원을 지원하지 못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카이스트도 예산상의 이유로 국외 특허는 거부하고 국내 특허만 출원했다.

기술의 핵심 연구자인 이 교수는 2002년 3월 경북대로 이직한 뒤 경북대에도 국외 특허 출원을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결국 이 교수는 개인 명의로 국외 특허를 출원한 뒤, 특허권 활용을 위해 설립된 카이스트의 자회사 ㈜케이아이피(KIP)에 특허 권한을 양도해뒀다.

이 기술이 주목을 받게 된 건 2012년이다. 인텔이 이 기술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교수와 케이아이피가 문제를 제기해 특허 사용료로 100억원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15년 갤럭시S6부터 이 기술을 써온 삼성전자는 인텔과 달리 특허 사용료를 내지 않고 버텼다.

당시 삼성전자가 턱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고, 이에 케이아이피는 2016년 미국 텍사스 동부지법에 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2017년 말에는 국내 특허에 대해서도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케이아이피 쪽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전자에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지만 무시당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미국 특허 소송 재판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다. 미국 특허심판원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등이 이종호 교수의 특허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제기한 특허 무효 심판을 기각했다. 이후 삼성전자 등은 법원에 ‘특허의 권리가 잘못 설정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으나 지난 2월 재판부는 이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 특허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 미국 변호사는 “보통 이런 경우 (재판에서 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틀(합의) 수순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패소할 경우 3년 가까이 지급하지 않은 특허권 관련 손해배상액이 최소 수백억원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합의’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말부터 경북대 쪽과 10여차례 접촉해 이 교수의 특허가 경북대 소유임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전자가 경북대를 끌어들여 특허 소유권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실제 특허 소유권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소송이 기각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제용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삼성전자가 우리한테 이 특허가 경북대 것이냐고 (먼저) 물어왔다”고 인정했다.

삼성전자의 요청을 받은 경북대는 1심 판결(6월11일)을 코 앞에 둔 지난 4일 이 교수 쪽에 “관계 법령 및 국가연구개발 협약서 등에 따르면 미국 특허의 소유권은 경북대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미국 특허에 대해 경북대 소속으로 양도 확약서를 제출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경북대는 변호사 등 전문가와 함께 논의하자는 이 교수 쪽 제안을 거절했다.

문제는 경북대가 특허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경북대는 이 교수가 미국 특허를 출원할 당시 경북대 소속이었다는 점과 특허 기술 관련 연구개발과제 협약서의 내용을 근거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002년 7월 맺은 협약서에는 ‘산업재산권 등 무형적 결과물 중 정부출연금 지분에 상당하는 부분을 을(경북대)의 소유로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특허 기술은 이 교수가 원광대에 재직하던 때 발명했기 때문에 경북대의 주장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교수는 경북대에 재직하기 전인 2001년 12월 이 연구과제의 공동 주체였던 카이스트에 특허 기술을 양도했고, 카이스트는 2002년 1월 국내 특허를 출원한 뒤 국외 특허권은 이 교수에게 다시 넘긴다는 확인서까지 썼다.

게다가 이 교수가 2003년 경북대에 제출한 연구과제 보고서를 보면, 이 교수가 해당 기술을 이미 미국에 특허 출원했다는 사실까지 기재되어 있다. 이에 대해 경북대 쪽은 “특허가 수십개다. 과제를 검토하는 사람이 다 검토할 수도 없다. (당시에는) 우리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국책과제 특허 문제를 담당하는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쪽이 권한을 넘긴 경우 특허 권한은 전적으로 해당 교수에게 있다”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학교가) 해당 기술 발명 연구에 기여한 게 없다면, 특허 신고 당시 교수의 소속이 해당 학교에 있다는 것만으로 학교가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케이아이피의 의뢰로 이 사건을 검토한 정연택 변호사도 의견서에서 “(경북대가 소유권의 근거로 든) 협약서는 발명 완성 이후인 2002년 7월에 작성됐고 해당 연구 기간도 2002년 7월1일부터이기 때문에 이 기간 전인 2002년 1월에 이미 완성된 발명을 협약서의 적용 대상이 되는 연구 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북대가 승소 가능성이 낮은데도 삼성전자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소송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지난 4월 케이아이피가 법원에 제출한 공개 자료를 보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10여차례에 걸친 삼성전자와 경북대의 접촉 과정이 드러난다. 특히 이 자료에는 지난 3월 삼성전자 쪽 변호인이 경북대 쪽에 변호사만 열람이 가능한 자료를 제공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케이아이피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경북대에 보상을 제안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제용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은 “(케이아이피와 삼성전자의 소송에 대해)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면서도 “삼성전자와는 관계없다. 우리 프로토콜(규칙)을 따라서 하고 있다. 법무공단에 의뢰한 결과 미국 특허는 경북대 소유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북대의 또 다른 특허 담당자는 카이스트가 이미 이 교수에게 국외 특허권을 양도한 사실에 대해 “그 부분은 모른다”고 답했다. 경북대가 특허 소유권과 관련해 중대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소송에 나섰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galaxy 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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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쪽은 한겨레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특허 소유권은 경북대 등 해당 기관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재판 중인 상황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단국대 창업지원단장인 손승우 교수는 “한국은 대기업들이 특허를 무단으로 탈취해 가는 기업문화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며 “기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정상적인 연구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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