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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포스트 에디터들이 말하는 '무한도전'에 대한 기억들

마지막 방송만을 남겨뒀다.

  • 김태우
  • 입력 2018.03.31 14:19
  • 수정 2018.04.02 19:03

13년 동안 무려 563회가 방영됐다. 두 번의 파업을 거치며 결방하던 기간도 있었지만, 자그마치 13년 동안 토요일 저녁을 지켜왔던 MBC ‘무한도전’이 오늘(31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끝이다.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진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그맨이 되었고, ‘무한도전‘은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무한도전’은 모두에게 다른 추억을 남겼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들에게도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을 남겨준 프로그램으로, 누군가에게는 ‘진작 끝났어야 할 프로그램’으로 기억됐다. 

마지막 방영일을 맞아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10명에게 직접 물어봤다. ‘무한도전’은 당신에게 어떤 추억을 남겼는가?

 

도전은 이제 교훈이 아니다

ⓒMBC

나만 빼고 다 고양이가 없었다. 나만 빼고 다 ‘무한도전’ 팬이었다. 이 전설적인, 그리고 전설이 될 프로그램에 대한 압도적인 애정은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 프로그램의 종영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는 건 꽤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앞에 있는 걸림돌을 치우면서 나아가기만 하라고 외치는 것이 더는 교훈적이지 않은 시대가 왔다. 남성들만으로 점령된 TV로부터 여성의 부재를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 ‘무한도전‘은 한국 TV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고, 종영함으로써 한국 TV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무한도전’을 사랑했든 아니든, 이런 프로그램이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 김도훈 편집장

 

재미와 잠, 둘 중에 하나 

ⓒMBC

친한 선배 한 명은 “‘무한도전’ 덕분에 내 결혼생활이 유지된 것 같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언제든 전화해도 만날 수 있는 그 형은 토요일 만큼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내와 저녁을 함께 먹으며 ‘무한도전’을 봐야만 한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신성불가침의 시간. 다른 때에는 싸우더라도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인기 장수 프로그램이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게 됐다. 나 역시 “토요일 저녁이면 할 일 없이 집에서 ‘무한도전’이나 보는 남자”라고 할 때의 그 남자였다. 평일 저녁에도 소파에 누워 야구나 보는 남자인 내가 토요일 저녁에 ‘무한도전’이나 보고 있는 건 매우 당연한 이치다. ‘무한도전’의 재미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시간이 되면 나는 TV를 켜고 누웠다. 재미있으면 방송을 끝까지 봤고, 재미없으면 보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처럼 ‘무한도전’이 지난 12년간 나에게 준 건, 모든 걸 내려놓고 널브러질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재미와 잠, 둘 중에 하나는 얻었을 테니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 강병진 에디터 

 

‘정말 대단한 승부’에 관한 기억

‘무모/한 도전’은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05년 봄에 첫 방송을 했다. 동기, 선배들과 삼천 시켜놓고 아무 맛 나지 않는 뻥튀기를 씹으면서 얘기한 최초의 예능 프로그램. 뭔가 많이 다를 것 같았지만 결국은 대학 입학 전과 별로 다를 게 없었던 주말 저녁, 집에서 ‘목욕탕에서 물빼기’ 편을 봤던 기억이 난다. 출연자의 말대로 ”정말 대단한 승부”였다.

인상적이었던 것과 관계없이 재미로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면 ‘주말의 명화’ 편에서 광희의 더빙 연기 부분을 꼽고 싶다. 이제 3년 가까이 지났으니 다시 볼만하겠다. - 박수진 에디터

 

‘뻘짓’에서 우러나온 절박함의 에너지

 

스무 살 넘어서는 처음이었던 거 같다. TV를 보면서 으하하 소리를 내면서까지 웃은 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달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때였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는 가지 못했고, 그랬더니 가고 싶은 회사가 하나도 없어 보이던 날들이었다. 처음 무한도전을 보게 된 날도 그랬다. 그냥 아르바이트 끝나고 돌아와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웬 사람들이 버스랑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출연자가 정확히 누구였는지 버스는 무슨 색깔이었는지 검색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고는 다짜고짜 빵 터졌다. 그러다 문득 그 한심할 정도로 분주한 ‘뻘짓’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절박함 같은 게 느껴졌다. IMF 때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할 때 즈음엔 뉴스에선 청년 실업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나오던 ‘방전의 시대’에,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 도무지 없는 것만 같던 때, 평균 이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기를 쓰고 저걸 왜 할까 싶은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모았던 것 같다. 까짓거 해보지 뭐, 살아보지 뭐, 하면서. - 이진우 에디터 

 

이촌역에서 ‘무모한 도전’을 추억하다

 

3월 31일 막을 내리는 ‘무한도전‘을 향해 수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13년 동안 이어진 역사를 곱씹으며 화려했던 시절을 반추하고 있다. 그런데 내 기억 속 ‘무한도전‘은 보는 즉시 휘발돼 버린 듯하다. 떠들썩했던 거대 프로젝트들은 그닥 기억에 남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쩌면 가장 ‘무한도전’ 다웠던, 우리 모두 가장 순수했었던! ‘무모한 도전’이다.

아직도 또렷한, 2005년 4월 30일 ‘무모한 도전’ 2회는 인간과 도시 문명 사이의 대결이 주제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한도전’ 멤버가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뿐이었던 그 시절, 멤버들은 무려 지하철에 도전장을 냈다. 검은색 쫄쫄이를 입은 멤버들은 서울지하철 4호선 이촌역 옆길에 선 채로 지하철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달렸다. 정말 무모하게.

그 뒤로 무모한 도전은 목욕탕 물빼기, 탈수기와의 빨래 짜기 대결, 모기향과의 모기 잡기 대결까지... 웃음과 짠함을 동시에 던지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보여줬다. 그래도 지하철과의 달리기 시합만큼 순수하게 황당했던 도전은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촌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무모한 도전을 떠올릴 것 같다. 그 검은색 쫄쫄이와 함께! - 김성환 에디터

 

‘무한도전’을 보다가 뉴욕을 꿈꾸다

ⓒMBC

‘무한도전‘은 8년간의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무한도전’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악마는 구리다를 입는다’ 특집을 보면서 언젠가 뉴욕으로 떠나길 꿈꿨다. 무도 멤버들이 패션지 어시스턴트로 변신해 편집장에게 받은 미션을 수행하는 특집이었는데, ESB(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층수를 알아오거나, 뉴욕대 앞 띵크 커피로 두유 라떼를 사러 가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악마는 구리다를 입는다’ 특집이 방영되고 2년 뒤, 나는 결국 뉴욕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꾸준히 돌려보던 그 특집에서처럼 패션지에서 1년간 일해보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나의 유학 생활을 지켜줬다. 한때 뉴욕인지 한국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게 한국인으로만 가득 찬 띵크커피에 구시렁거리거나, 전처럼 재미가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던 적도 있었지만, 나의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쉬울 뿐이다. ‘무한도전’만큼 내게 큰 추억을 남길 프로그램이 또 나오기는 할까? - 김태우 에디터

 

더 이상 ‘무한도전’을 보지 않는 그녀

 

오랜 친구 J는 ‘무한도전’ 열혈 시청자였다. 그녀는 대학 시절 내내 토요일 저녁에는 늘 집에서 ‘무도‘를 봤고, 월요일이 되면 지난주 무한도전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말해주곤 했다. ”야, 무도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좀 봐!” 매주 그녀는 ‘무도’ 이야기를 끝맺으며 그렇게 날 타박했다.

무한할 것 같던 그녀의 ‘무도’ 얘기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얼마 전, 처음으로 J에게 내가 먼저 ‘무도’ 이야기를 꺼냈다. ”‘무한도전’ 폐지한대.” J는 태연했다.

″그래? 근데 이제 그거 재미없어서 안 봐.”

오히려 내가 왜? 라고 물었다. J는 담담했고, ”야, 무도 좀 봐!”라고 날 타박하지 않았다. ”진짜 노잼이었거든”이라고 말하는 J를 보며 이상하게도 ‘무도’가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열혈팬이었던 시청자가 이런 혹평을 남기고 떠나버렸다니, 어쩌면 진작 끝났어야 할 프로그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김현유 에디터 

 

지상파 전성기와 함께 사라진 무한도전의 청춘

 

무한도전의 전성기는 공교롭게도 지상파 전성기의 막바지와 겹친다. 두 번의 파업, 케이블 프로그램의 부상 등이 맞물리면서 무도의 압도적 아우라는 사라져갔다. 한창때를 생각해보면 이건 꽤 예상외의 쓸쓸한 종방이다. 나부터도 보지 않은지 오래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아마도 지상파를 멀리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하나의 기억은 그래도 선명하다. 2010년 1월 어느 날, 당황스럽게도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꺼이꺼이’ 울었던 그 날. 무도는 두 복서(최현미와 텐코 츠바사)의 대결을 다뤘는데, 한일전이라는 식상한 선악 구도를 무도답게 피해갔던 것 같다. ‘집념과 집념의 대결’이라던 문구도 기억난다.

돌아보니 그때가 무도의 청춘이었다. 청춘의 무도는 시대를 살짝 앞서갔고, 에너지가 싱그러웠다.

그사이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상파는 마지막 전성기를 떠나보냈고, 온갖 케이블 예능이 그 틈을 비집고 시장을 장악했으며, 텔레비전은 스마트폰에 자리를 뺏겼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됐다. 그러고 보니 무도는 내가 20대일 때 시작했구나. 잘 가라 무도야. 너의 청춘을, 나의 청춘처럼 기억하마. - 김원철 에디터

 

집안의 적막을 채우던 소리들

 

혼자 사는 집은 이따금 적막이 찾아온다. 나 혼자 콧노래를 불러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게 애처로울 때가 있다.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특히 혼자서 집안일을 할 때. 지나간 방송 아무거나 틀어놓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에피소드를 최소 두 번 이상씩은 본 것 같다. 나중엔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그래도 의리로 보았다. 이제 종영이라니... 그들의 수다가 그리울 것 같긴 하지만 재방송 보면 되니까 괜찮다. - 백승호 에디터

 

종영은 아쉽지만 슬프지 않은 이유

 

예능 프로그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숨바꼭질을 하든, 스튜디오에 마련된 거대한 놀이기구에 올라타 기이한 게임을 하든 별 관심이 없었다. 시시콜콜 늘어놓는 이야기들이나 어설픈 퀴즈 대결에도 흥미가 없었다. 모든 건 그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약속대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다. 

무한도전은 달랐다. 예능이지만, 예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을 무대로 추격전을 벌였고, 레슬링 무대에 도전했고, 김장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서로 어색해하는 두 멤버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언젠가부터 무한도전을 매주 챙겨보지 않게 됐다. 더 눈길이 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별일 없이 삼시 세끼를 차려 먹거나, 머나먼 낯선 땅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손님을 맞이하거나. 민박집 손님맞이의 소소한 일상이 또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어쩌면 이 모든 건 무한도전 덕분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세트나 극적인 설정 없이도 충분히 재밌는 예능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됐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예능은 그래서 더 재밌어졌다. 무한도전 종영이 아쉽지만 슬프지는 않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 허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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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무한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