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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4살 ‘젊은 노인’에겐 노화보다 불평등이 무섭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노인들
노인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만 65살 이상을 모두 ‘노인’이라 부르지만, 그 중 ‘전기 노인’으로 분류되는 만 65~74살은 기존에 알려진 노인 이미지, 인식과 다르다. 특히 75살 이상 ‘후기 노인’과 경제·사회적, 육체·심리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기 노인은 노년기에 진입했지만 일상생활 수행 능력에서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많다. 일정 정도 경제력을 갖춘 집단이고, 경제활동과 사회 참여도 활발하다. 정보화기기 활용 능력 역시 우수한 편이다.

새롭게 등장한 이러한 ‘젊은 노인’들이 지닌 사회적 불안에 초점을 맞춘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곽윤경 박사팀의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의 과제-노인의 사회적 불안>을 보면, 우리 사회의 ‘젊은 노인’은 비록 다른 세대에 견줘 낮은 수준이지만 전반적으로 보통 이상의 불안을 느끼고, 특히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불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평등→불공정과 경쟁 순 불안요인

연구팀은 전국 만 65살 이상, 74살 이하 남녀 노인 1000명을 상대로 2021년 6월 2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설문지를 통한 방문면접 조사를 벌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1점(전혀 불안하지 않다)~5점(매우 불안하다) 척도로 불안 정도를 물었는데, 65~74살 노인의 응답은 평균 3.30점(95% 신뢰구간, 최대 허용오차 ±3.10%P)으로 나타났다. 이는 ‘젊은 노인’도 보통(3.0) 이상의 사회적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사회적 불안이 아닌 개인 불안(2.15점)과 노인 불안(상실 불안과 노화 불안 포함·2.94점)은 보통(3점) 이하였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Getty Images

젊은 노인들은 무엇 때문에 가장 불안해하는가?

곽 박사팀은 △사회적 불안 인지(‘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안하다고 생각하십니까?’·3.49점) 이외에 네 가지 요인으로 사회적 불안을 분류했다. 그 가운데 △불평등(‘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등 4개 문항)이 가장 높은 3.71점을 기록했다. 이어 △불공정과 경쟁(‘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뒤떨어지게 될 것 같다’ 등 7개 문항)이 3.41점, △불신/희망없음(‘나에게 미래는 희망이 없어 보이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등 6개 문항)이 3.19점, △적응/안전(‘범죄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등 7개 문항)이 3.05점 순으로 높았다.

 

저소득층은 물론 소득·재산 많아도 불안 만연

사회적 불안은 경제 상태와 직결된다. 전체적으로 소득이 낮고 재산이 적을수록 불안도 더 높았다. 다만 소득이 높은 계층도 높은 불안을 보여 우리 사회에서 불안이 전반적으로 만연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사회적 불안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만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가령 재산이 많은 노인 집단은 특히 적응/안전, 불신/무망영역에서 불안이 높았다. 연구팀은 “재산이 높은 노인 집단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하락할 것에 대한 불안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고, 재산에 영향을 주는 정책에 민감하다”며 “노인의 불안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정책을 보강하면서 재산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책적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소득이 낮은 노인은 사회 불안 중에서 적응/안전 불안이 특히 높았다. 연구팀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노화가 진행되면서 정보에 뒤처지고 소속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노인들의 사회 적응력을 유지 또는 강화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게티이미지

은퇴 후 5~10년 사이 불안감 최고조

소득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주된 일자리에서의 은퇴는 사회적 불안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다. 은퇴로 인한 불안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은 은퇴 이후 5년 이상~10년 미만 사이였다.

은퇴 직후부터 5년 미만 기간 3.28점이었던 불안 수준은 5년 이상~10년 미만 기간에 3.42점으로 높아졌다. 그러다 10년 이상~15년 미만에 다시 3.36점으로 내려올고, 15년 이상이 되면 3.26점으로 떨어지는 흐름을 보였다.

통상 은퇴 직후에는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등으로 버티다 은퇴 후 5~10년 재정적 어려움에 건강 등 노화 불안까지 겹쳐 사회적 불안이 급상승하는 노인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시 불안감이 낮아지는 것은 대체로 후기 고령기에 이르면 노인들이 참거나 포기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회참여로 불안 대처…불안도 높을 땐 참거나 유흥·과식

사회참여 활동이나 폭넓은 사회관계는 대체로 불안을 낮춰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젊은 노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불안 대처방식은 사회적 교류(1순위 기준 34.2%, 1~3순위 중복 기준 115%)로 나타났다. 열에 아홉(88.4%)은 각종 모임에 참여했는데, 참여하는 모임 대다수는 친목모임(81.1%)이었다.

사회적 교류에 이은 불안 대처방식은 수면·티브이(TV) 시청 또는 컴퓨터·스마트폰 이용, 여가·문화·종교 활동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회적 불안 수준에 따라 대처방식에 차이가 나타났다. 불안도가 낮은 노인들은 사회적 교류와 여가 등 사회 참여와 사회관계를 활발히 하는 반면, 불안 수준이 높은 노인들은 그냥 참기 또는 유흥, 과식, 폭식, 미식을 통해 대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개년에 걸쳐 한국의 사회적 불안이란 주제를 지속해서 탐색하고 있다. 사회적 불안에 대한 이해는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고 개선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2020년에는 청중년층의 불안을 살폈고, 내년에는 장년층의 불안을 연구한 뒤, 2023년에는 사회보장제도에서 불안 대응 기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0년 전국 만19~44살 청·중년층 311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사회적 불안의 인지 정도가 5점 척도에 4.14점으로 65~74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바 있다. 이들의 사회적 불안의 주요 요인은 노인층과 달리 정부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이었다.

 한겨레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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