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화기로 총구에 화약과 철환(총알)을 장전하고 불씨를 붙여 발사하는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이 나왔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 정도다. 새겨진 명문을 판독한 결과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萬曆) 무자(戊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된다. 장인 희손(希孫), 말동(末叱同) 제작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희손은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 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의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동종은 일성정시의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뉘어 발견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의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손잡이 용뉴(龍鈕)가 달렸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 특징이다. 종 몸체 윗부분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사 지역은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한양도성의 중심부다.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中部) 견평방에 속했던 곳이다. 견평방은 조선 전기 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사법기관 의금부와 왕실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과 상업시설 운종가 등이 자리했던 도성 안 경제 문화 중심지였다. 유적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의 총 6개의 문화층(2~7층)이 확인된다. 금속활자 등이 출토된 층위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16세기 중심) 부분으로, 건물터 유구와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도 같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