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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레깅스 불법촬영 무죄'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한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재판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 허완
  • 입력 2021.01.06 10:39
대법원 청사
대법원 청사 ⓒ뉴스1

시내버스 안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한 남성의 행위는 처벌 대상인가?

2심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레깅스가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피해자가 이같은 복장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이다.

재판부는 우선 2심이 ‘성적 수치심’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적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공포, 무기력·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심 판결은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협소하게 이해해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이 표출된 경우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했는데, 이는 ”성적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느끼는 다양한 피해 감정을 소외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피해 감정의 다양한 층위와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처지와 관점을 고려해 성적 수치심이 유발되었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기사 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 기사 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레깅스를 입었다는 사실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촬영을 해도 무방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란 특정한 신체의 부분으로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촬영의 맥락과 촬영의 결과물을 고려해 그와 같이 촬영을 하거나 촬영을 당했을 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해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피해자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는 피해자의 진술은 피해자의 성적 모멸감, 함부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당했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으로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되었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2018년 8월15일 -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4호선 환승 통로 계단에 불법촬영 범죄예방을 위한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자료사진) 2018년 8월15일 -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4호선 환승 통로 계단에 불법촬영 범죄예방을 위한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뉴스1

 

재판부는 또 불법촬영죄가 반드시 노출된 신체부위에 한해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동영상 촬영 당시 피해자는 엉덩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상의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깅스 하의를 입고 있어,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의 굴곡과 신체적 특징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며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과 같이 의복이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피해자의 몸매가 예뻐 보여 이 사건 동영상을 촬영하였다고 진술했으나, 해당 동영상은 피해자의 전체적인 몸매가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는 구도를 취하지 않고,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하반신을 위주로 촬영됐다”며 ”피고인이 ‘심미감의 충족’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8년 5월 시내버스 안에서 하차하려고 서 있는 피해여성 B씨의 뒷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몰래 동영상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시 입고 있던 레깅스는 피해자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피해자 역시 위와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며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며 1심을 깨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항소심 판결 당시 재판부가 판결문에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관련 사진을 첨부하면서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법원 내 연구모임인 젠더법연구회 관계자가 해당 재판부에 판결문에 대한 열람제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해 불법촬영 사진을 공소장에 첨부하지 말라고 일선청에 지시한 바 있다. 불기소장에도 마찬가지로 싣지 않도록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카메라등 이용 촬영죄의 보호법익으로서의 ‘성적 자유’를 구체화해,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고 최초로 판시했다”며 ”또 이번 판결에서는 피해자의 다양한 피해감정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성적 수치심의 의미에 대하여 전면적인 법리 판시를 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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