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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물 유포한 장교가 '삭제 의향'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관대한 처분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자료 사진. 
자료 사진.  ⓒboonchai wedmakawand via Getty Images

 

피해 여성의 얼굴과 신상정보 등이 담긴 보복성 영상물을 유포한 현역 장교에게 군사법원이 ‘영상을 삭제할 뜻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최근 대법원이 디지털성폭력과 관련해 양형기준을 높이며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가해자에게 관대한 판결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익원)은 지난 9일 현역 장교 ㄱ씨에게 불법촬영물 유포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을 보면, ㄱ씨는 지난 2월 20대인 피해자 ㄴ씨와 성관계를 가진 뒤 불법촬영물을 국내외에 잘 알려진 성착취물 누리집에 올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포한 영상에는 피해자의 얼굴 및 출신 학교까지 노출돼 있어 신원 식별이 가능하며 해당 영상물이 재유포될 가능성이 높아 피해자에게 극심한 불안감과 고통을 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ㄱ씨가 초범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피해자와 합의한 사실이 없는데도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피고인 부담으로 디지털 장의업체와 계약하고, 이 업체에 동영상 모니터링 및 삭제 의뢰를 하고자 하는 의향을 피해자 쪽에 전달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한 의지를 보이는 점” 등을 감경요소로 본 것이다.

불법촬영물을 삭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만으로 형을 낮춰주는 것은 피해의 불가역성을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피고인은 삭제 의뢰 의향을 밝힌 것에 불과한데다 설령 영상 일부를 사후적으로 삭제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피해자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피고인이 회원수가 많은 국외 인터넷 누리집에 영상을 올려 광범위하게 유포시킨 점을 고려해 무거운 처벌을 내렸어야 한다”고 짚었다.

지난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의결한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권고안에도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조처’가 특별 감경인자에 포함돼, 형을 낮추기 위한 가해자의 ‘꼼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삭제 행위가 피해자에게 피해 회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는지 결과를 보고 감경 여부를 판단해야지, 삭제 행위 자체나 그 의지를 가졌다는 것 정도가 참작 사유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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