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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의 유가족, 지인들과 시민들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사망자 38명 중 3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 박수진
  • 입력 2020.05.01 14:00
  • 수정 2020.05.01 14:01
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2차 합동 감식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1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2차 합동 감식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 현장 인근의 모가실내체육관. 희생자 명단이 추가로 발표될 때마다 마지막 한 가닥 쥐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친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1일 오전 11시까지 확인된 사망자 신원이 확인된 이들은 전체 38명 중 33명. 이들 대부분은 전기, 수장, 도장, 설비 등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였고, 중국인 1명과 카자흐스탄인 2명도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이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이 중에는 아들과 아버지 모두가 함께 일을 하다 이별한 경우도 있었다.

냉동 창고 설비 공사에 투입돼 폴리우레탄폼 작업을 하던 이모씨 부자는 불이 나자 나란히 2층 창문에 몸을 던졌다. 30대 아들은 살았지만, 60대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50대 김모씨는 자신만 살아남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지하 2층에서 일하던 김씨는 화재 직후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 같은 층에서 일하던 20대 아들과 이별하고 말았다.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한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한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결혼을 미룬 ‘예비 신랑’ 40대도 결국 결혼식장에 들어서지 못했다.

혼인 신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뜬 20대 가장의 사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혼인 신고 후 현장에서 일한 지 1달여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을 당했다. 그에겐 부인과 5살 아들이 남았다.

카자흐스탄인 희생자 가족도 현장에서 조문했다. 흰색 두건을 쓴 채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 여성은 카자흐어로 탄성을 연이어 내뱉으면서 굵은 눈물을 쏟았다. 일부 취재진이 질문하려고 했지만 ”한국말 잘 못 해. 슬퍼, 슬퍼. 안돼”라면서 자리를 떴다. 함께 온 10대 소녀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중에는 카자흐스탄인 2명과 중국인 1명 등 총 3명의 외국인이 있다. 중국인 희생자 유가족은 피해 가족 휴게시설이 마련된 모가실내체육관에 거처하고 있다. 이들의 영정과 위패도 분향소에 함께 안치돼 있다.

근로자의 날이자 징검다리 연휴인 이날(1일) 합동분향소에는 오전부터 많은 조문객이 찾았다. 주로 희생자 유가족의 지인이 많았으나 일부 시민들도 ‘마음이 착잡해서 절이라도 하고 가겠다’면서 들어갔다. 행정당국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 분향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희생자 유가족들도 분향소를 찾았다. 60대로 추정되는 희생자 모친은 아들의 영정사진을 보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바닥을 두드리면서 울었다. 그는 ”네 자식을 나에게 맡기고 먼저 가면 어쩌라는 것이냐”면서 위로하는 지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쉬라니까, 힘들면 일 좀 쉬라니까 그렇게 가족을 생각하더니 (이런 참변을) 당했다”는 애끓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날(4월30일)처럼 입구까지 왔다가 걸음을 돌리는 유가족도 있었다. ”도저히 못 보겠다”는 한 60대 여성은 눈물을 떨구면서 문화센터 돌계단에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떴다.

한바탕 실랑이도 벌어졌다. 일용직 막노동일을 하면서 알게 된 ‘아는 형님‘이 연락이 닿지 않아 희생자인 것 같다는 추정으로 온 50대 남성이다. 그는 ‘이름을 말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이천시청 관계자와 한동안 언쟁을 벌이다가 끝내 ‘아는 형님’의 영정을 마주했다. 그는 분향소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져서 ”전화를 아무리해도 받지 않더니만…왜 이형이 저기 있냐”고 하소연했다.

현장에서는 유가족 중 1명이 오열하다 실신해 앰뷸런스로 후송되는 일도 있었다.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3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뉴스1

″불길보고 마음이 찢어졌어요. 뭐라도,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노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이봉준씨(77)는 노동절인 1일 아침 8시쯤 경기 이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 들어서면서 이같이 말했다.

아직 유족과 지인의 조문만 받고 있는 분향소에, 이씨는 ‘안타까워서 돕고싶다’며 이날(1일) 이른 오전 택시를 잡아 타고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온 것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몸을 실었다. 젊은 시절 건설현장과 공장 등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그가 눈을 뜨던 시간대다. 이씨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어떻게 (봉사하러) 와야할지 길도 모르니까 택시기사한테 ‘장거리 좀 뛰자. 현장으로 간다’ 하고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어깨에는 일용직을 할 때 짐을 들고 다니던 자주색 짐가방이 들려 있었다. 안에는 작업복이 들어 있었다.

처음 내린 곳은 화재가 난 물류창고 앞, 그을린 건물을 본 이씨는 무릎이 풀려 주저 앉았다. 손에 쥔 화장지로 눈을 닦은 이씨는 ”그 불길 피하랴 나오랴 이리뛰고 저리뛰었을텐데…내 자식 같기도 하고 형제같기도 해서 슬펐다”고 말했다.

화재 피해 가족들의 대기실이 마련된 이천시 모가면 모가실내체육관에는 더 도울 일손이 필요없다는 말에 이씨는 이천시청 공무원 손에 이끌려 합동분향소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반응은 냉랭했다. 이천시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봉사자 명단에 이분은 없다. 저희 센터에서 하면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분향만 하고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위패와 영정 앞에서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는 지난해 고성·속초 산불 당시도 자원봉사를 한 바 있다. ”국가적 재난이 있는 상황에 국민 누구라도 시간여유가 있으면 한달음에 왔을 것”이란다. 이씨는 ”현장 정리가 잘 되면 좋겠다. 유가족분들도 마음 잘 추스렸으면 좋겠다”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합동분향소가 유족·지인만 받고 있는 이유는 사망자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인원이 있기 때문이다.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망자의 신원이 다 확인된 뒤 일반인 조문 시점을 정하는 방안을 피해자 가족들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과 그 주변은 사고 당시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여러 차례에 걸친 폭발과 고열의 유독가스가 휩쓸고 간 물류창고에서 희생자들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참변을 당했다.

사망자 명단 확인 작업도 더뎌지고 있다. 현재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고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지하 2층에 대한 합동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화재로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사망자 38명, 부상자 1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심한 사체 훼손으로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던 9명 가운데 4명의 신원이 이날 오전 추가로 확인됐다. 남은 5명의 신원도 곧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불은 지난달 29일 오후 1시32분쯤 경기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신축 현장 지하 2층에서 시작돼 같은 날 오후 6시42분쯤 꺼졌다.

지하 2층 우레탄 도포 작업 중 원인 미상의 폭발이 발생하면서 불길이 순식간에 확대됐고, 이 과정에서 대량의 유독가스가 분출해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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