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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에서 문대통령 겨냥한 극단적 혐오구호가 터져나온 이유와 의미

"문 대통령, 재기해"

ⓒ뉴스1

″문 대통령은 재기하라.”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선 낯선 구호 하나가 터져나왔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여성이 ”문재인 대통령도 재기십시오”라고 규탄하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일제히 ”재기해, 재기해”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1만8000명, 주최 쪽 추산 6만명이 참가했다.

‘재기하라‘는 말은 2013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후 ‘메갈리아’ 등 여성 사이트에서 이를 희화화해 반여성주의적 남성을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은어로 사용돼 왔다. 문 대통령을 겨냥해 ”투신해 목숨을 끊으라”고 규탄한 셈이다.

‘재기하라’는 단어가 품은 극단적 혐오와 조롱의 의미는 주최 쪽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굿모닝충청’에 따르면, 이날 이 단어를 처음 제기한 여성은 ”저희는 합법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대통령의 문제된 발언을 폭로하게 되었다”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말하는 ’제기해‘는 사전적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도 제기하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기하라‘고 직접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자락을 깐 것이다. 하지만 맥락상 실제로는 ‘재기’라는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날 집회에선 또 `페미대통령`이란 문구가 적힌 띠지를 두른 한 여성이 무대에 꿇어앉아 `곰`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로 얼굴을 가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했다고 매일경제가 전했다. ‘곰’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인 ‘문’을 뒤집은 것으로,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문 대통령을 비하하는 용도로 써왔다. 여성 인권 집회에서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극단적 혐오 구호와 극우 집단에서 유래한 단어가 한꺼번에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문제삼은 것은 문 대통령의 3일 국무회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수사기관의 ‘성차별 편파수사’ 논란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편파수사라는 말이 맞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처리를 보면 남성 가해자의 경우에 구속되고 엄벌이 가해지는 비율이 더 높았다. 여성 가해자인 경우는 일반적으로 가볍게 처리됐다. 그게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여성에 대한 편파 수사 문제를 왜곡하고 일방적으로 남성을 편들었다며 규탄을 쏟아낸 것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당시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수치심, 명예심에 대해서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말한 점도 비판했다. 여성들의 정당한 분노 표출을 ‘원한’이라는 단어로 좁혀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뉴스1에 따르면, 이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하며 여성의 표를 가져가 당선된 문 대통령은 저희를 더이상 실망시키지 말라”며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이번 집회의 직접적 계기가 된 ‘홍익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 사건’의 경우 피의자인 여성 모델을 구속하고 포토라인에 세우는 등 이례적인 방식으로 경찰 수사가 진행돼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구체적 사례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외면한 채 ‘일반적인 처리 현황’ 등을 들어 현실을 왜곡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에 따르면,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치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진희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혜화역 시위를 두고 ‘여성들의 원한을 풀어야 한다’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자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며 “여성들을 달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과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를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당시 “우리사회가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 등 여성들이 입는 피해의 무게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며 “몰카 범죄 및 유포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가볍고 너무나 미온적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하는 등 여성들의 불안과 불만을 어느 정도 대변했다는 점을 들어, 집회 참가자들도 한 면만을 보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한쪽에서 나온다.

여성혐오 반대에서 출발한 집회가 도를 넘는 남성혐오적 구호로 얼룩질 경우 집회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장미혜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매일경제와 한 통화에서 ”시위가 남성혐오화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대화를 본질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대부분 여성이 일상적인 공포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수사기관의 대처가 미온적이고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알리는 시위의 순기능을 저해하고, 제도화·법제화 등 실질적인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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