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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하남까지 원정충전 웬 말이냐' 친환경적인 김씨가 수소 전기차 구매 후회하는 까닭

김씨의 수소전기차 생활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수소차 충전하는 모습, 3D 렌더링 (자료 사진) 
수소차 충전하는 모습, 3D 렌더링 (자료 사진)  ⓒaudioundwerbung via Getty Images

“왕복 158㎞ 떨어진 충전소에 가봐야 400㎞ 남짓 (탈 만큼) 충전됩니다. 충전하러 오가느라 충전량의 40% 가까이 써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강원도 춘천에 사는 김아무개(40)씨는 지난 9월 수소전기차를 산 뒤 ‘원정 충전’ 불편 탓에 신경이 곤두선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수소전기차를 사면서 온실가스 감축과 미세먼지 저감 등에 이바지하게 됐다는 뿌듯함까지 느꼈다. 올해 안에 춘천에 충전소가 생긴다는 소식과 내년부터는 수소전기차 구입 지원금이 1000만원이나 줄어든다는 소식도 김씨의 결단을 앞당겼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실은 처참했다. 수소차를 산 뒤엔 운전하면서도 늘 계기판을 보는 게 습관이 됐다. 남은 충전량을 정확히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차 및 수소충전소 등록 현황
수소차 및 수소충전소 등록 현황 ⓒ한겨레

 

가장 가까운 충전소가 79㎞나 떨어져

춘천에서 가장 가까운 충전소는 경기도 하남에 있다. 춘천시청을 기준으로 79㎞ 떨어져 있고, 시간은 1시간20분가량 소요된다. 자칫 주행가능 거리가 80㎞ 이하로 떨어지면 견인차량을 불러 하남까지 가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에, 남은 주행가능 거리가 100㎞ 정도만 돼도 조바심이 났다. 휘발유차나 경유차는 기름이 떨어져 멈춰서도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면 되지만, 수소차는 그런 서비스가 없다.

거리만 문제가 아니었다. 김씨는 추석을 앞둔 지난달 말 경기도 하남시에 갔다. 충전량이 200㎞ 이상 남았지만 조바심을 이기지 못한 탓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발 직전에 충전소에 전화해 충전기가 고장 나지는 않았는지 거듭 확인했다. 수소충전소 고장이 잦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충전소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충전기는 한대뿐이었고 차량 세대가 충전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되겠지’라는 기대와 달리 차량 한대당 충전시간은 15~20분씩 걸렸다. 결국 한시간 가까이 기다린 뒤에야 충전할 수 있었다. 김씨는 “미리 혼잡하지 않은 시간을 물어보고 그 시간에 왔으니 망정이지…. ‘차량 7대 충전하는 것 기다리느라 진이 다 빠졌다’는 지인의 말이 뼈저리게 실감 났다”며 진저리를 쳤다.

 

충전해봐야 40%는 충전하러 오가는 길에다 버려

하지만 충전을 끝내고 운전석에 앉아 계기판을 본 김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충전했지만 충전량이 400㎞를 조금 넘어서는 정도였다. “1회 충전 시 최대 600㎞를 주행할 수 있는 연료를 주입할 수 있지만 원래 완충을 하지 않고 조금 여유를 두고 충전을 하고 있다”는 ‘날벼락’ 같은 설명을 들었다.

충전을 위해 왕복 158㎞나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번 충전으로 실제 운행가능 거리는 300㎞에도 못 미치는 셈이었다. 김씨는 충전소 관계자로부터 “강원도에 충전소가 없다 보니 방문자의 70% 정도가 강원도 운전자다. 원주는 여주충전소가 가까운데 그쪽이 고장이 잦다고 이곳까지 온다. 강원도 사람들은 앞으로 충전소가 확충될 때까지 2~3년은 더 고생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김씨는 그날 이후 더는 충전소를 찾지 않는다. 김씨는 “수소차를 타면 저절로 친환경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충전하는 게 너무 번거로워 웬만한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다니게 됐다”고 푸념했다.

등록 현황
등록 현황 ⓒ한겨레

 

지난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한대당 최대 4250만원의 보조금을 줘가며 수소차 구매를 장려하고 있지만 충전소 등 기반시설 부족 탓에 운전자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공개한 ‘17개 시·도 자동차 연료별 등록 현황’을 보면, 지난 8월 말 기준 등록된 수소차는 모두 8911대인데, 전국에 있는 수소충전소는 37곳뿐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강원도는 울산, 경기도, 서울, 경남, 부산에 이어 여섯번째로 많은 699대의 수소차가 등록돼 있지만, 충전소는 단 1곳 삼척에만 설치돼 있다. 삼척은 강원도 오른쪽 아래 끝에 위치해 춘천에서는 200㎞ 이상 떨어져 있어 세시간가량 운전해 가야 한다. 게다가 고압충전이 아닌 중압충전 방식이어서 용량의 50~60%만 충전할 수 있다.

지난 8월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삼척에 문을 연 수소충전소. 하지만 문을 연 지 2주 만에 수소탱크 이상 문제로 고압충전이 아닌 중압충전 방식으로 50~60%만 충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월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삼척에 문을 연 수소충전소. 하지만 문을 연 지 2주 만에 수소탱크 이상 문제로 고압충전이 아닌 중압충전 방식으로 50~60%만 충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척시 제공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춘천 운전자들은 시·도 경계를 넘어 경기도 하남까지 원정 충전을 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19년까지 86곳에 수소충전소를 설치됐어야 하지만, 8월 현재 실제 설치 대수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원도만 해도 원래 지난해 말까지 춘천과 원주, 삼척, 속초, 평창 등 5곳에 수소충전소 설치가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강릉에서 수소탱크 폭발 사고가 나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이 수소충전소 건설에 반대하고 나서 설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충전소 건설 초기만 해도 주민설명회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사고 이후 해당 지자체에서 주민설명회를 요구하는 등 절차가 엄격해졌다. 춘천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충전소도 주민 반대로 공사가 전면 중단됐고, 언제 설치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수소충전소의 잦은 고장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장섭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6월 전국 수소충전소 26곳(폐업·시험용 충전소 등 제외)에서 발생한 고장 사례는 총 156건이나 된다. 충전소 한곳당 6건, 한달에 최소 한번은 고장이 났다는 이야기다.

 

‘기반시설 확충 게을리했다’ 지적 이어져 

수소경제를 내세우며 수소차 보조금만 대폭 올렸을 뿐, 기반시설 확충을 게을리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수소차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강원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4250만원(정부 2250만원+지자체 2000만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내 유일 수소차인 현대자동차 ‘넥쏘’ 가격이 6890만~7220만원 수준이지만, 실제 부담액은 2천만원대에 그치는 셈이다.

춘천에서 수소차를 운전하는 박아무개(41)씨는 “8월이면 춘천에도 충전소가 생긴다는 말만 믿고 차를 샀는데 몇달째 주차장에 세워만 두고 있다. 지역별로 수소충전소가 건설되는 상황에 맞춰 보조금을 지급했으면 수요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도 있었다. 충전소는 생각하지 않고 정부와 지자체가 수소차 보급에만 열을 올린 것 같다”고 비판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사업 초기만 해도 수소차 보급과 함께 점차 충전소도 확충될 것으로 기대했다. 공교롭게 사고가 겹치면서 주민들의 반대 민원이 이렇게 커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수소차 공급이 과잉 양상을 보이는 만큼 내년부터 수소차 보조금을 500만원 축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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