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즐기면서 하는 스포츠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여성 지도자 최초로 U-20 여자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황인선 감독 인터뷰

첫 여성 축구 대표팀 감독이다.
황인선 20살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한 카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황인선 20살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한 카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닦아 놓은 길을 걷는 법이 없었다. 그가 지나간 뒤에야 길이 생겼다. 그런 그가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여성 지도자 최초로 20살 이하(U-20) 여자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하며 유리천장을 깨부쉈다. ‘개척자’ 황인선(45) 감독 이야기다. <한겨레>는 황 감독을 13일 경기 고양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에 황인선이 있었다

황 감독은 지난달 20살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첫 여성 축구 대표팀 감독이다. 여자축구 더블유케이(WK)리그 8개 구단 가운데 절반인 4개 구단의 감독이 여성일 정도로 과거보다 여성 지도자의 입지가 넓어졌다고 하지만, 대표팀 사령탑은 처음이기에 대중의 관심이 컸다. 황 감독은 “솔직히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얼떨떨하면서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 지도자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고 했다.

사실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익숙하다. 여자축구 1세대로 꼽히는 그는 위례정보산업고에서 축구를 시작해 울산과학대, 인천 현대제철, 서울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4∼2004년 국가대표로 뛰었고, 2007년엔 서울시청 코치로 부임해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황 감독은 “특히 저는 창단팀에 많이 갔다”면서 “솔직히 창단팀에서 활동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번에도 ‘처음’이니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본인은 ‘꽃길’을 걷지 못했지만, 그는 후배들의 이정표였다.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길을 찾듯, 많은 이들이 그를 보며 공을 찼다. 특히 2003년 일본과 아시아축구챔피언십 3·4위전에서 결승 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안긴 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 골로 한국은 1-0 승리를 거두며 사상 첫 여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월드컵 본선 직행 덕분에 여자축구 대표팀은 본격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황인선 감독이 지난달 15일 경기 파주시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대표팀 1차 소집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황인선 감독이 지난달 15일 경기 파주시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대표팀 1차 소집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공격 또 공격, 맨시티처럼”

황 감독은 공격 축구를 지향한다. 그는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하는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를 예로 들었다. “그 정도 수준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많이 볼을 소유하면서 공격적으로 뛰는 팀을 만들겠다”며 “공격적인 전술이 오히려 수비적인 전술보다 체력 소모가 적다. 공격적으로 해야 90분 내내 전방압박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공격적인 전술은 그의 축구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달리는 게 너무 좋았던” 그는 초등학생 땐 육상 선수였다. 육상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입학과 동시에 학교에서 육상부가 없어졌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축구부였다. 차선책이었지만, 축구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가 있었다. 그는 “달리기를 할 땐 아무 생각도 안 든다. 하지만 축구는 뛰면서 항상 생각해야 한다”며 “볼 하나를 두고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고, 항상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집중해야 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황 감독은 좋은 경기를 펼치기 위해선 선수들이 공을 차며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축구는 결국 공을 갖고 있어야 즐겁다”면서 “강팀이라고 자꾸 수비만 하면 힘은 힘대로 들고 축구가 아니라 노동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구는 보는 사람이 재밌다면, 축구는 하는 사람이 재밌다”며 웃었다.

황인선 감독이 6일 전북 남원시 남원어린이교통공원축구장에서 대표팀 2차 소집 훈련을 지도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황인선 감독이 6일 전북 남원시 남원어린이교통공원축구장에서 대표팀 2차 소집 훈련을 지도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모두가 ‘골 때리는’ 사회를 위해

즐거운 축구에 대한 철학은 그가 강조하는 ‘소통 리더십’의 밑바탕이다. 황 감독은 “예전에는 (감독이) 시키면 (선수는) 무조건 토 달지 않고 했다. 요즘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선수가 스스로 생각하며 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임 전까지 A대표팀에서 코치를 맡아 콜린 벨 감독을 보좌했던 그는 “벨 감독은 선수들에게 칭찬을 많이 한다. 선수들이 스스로 소통하면서 창의적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게 한다. 국내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이런 지도 방식을 벤치마킹해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한 발 더 뛰는 팀”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사령탑 부임은 처음이지만, 그는 각급 대표팀 코치를 맡아 선수들을 지도해 왔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장이 “황 감독은 국제대회 경험과 해당 연령대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황 감독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스스로 미래를 그리도록 돕는다. 그는 “지금 A대표팀서 뛰는 지소연(30·첼시)이나 장슬기(27·현대제철), 여민지(28·수원도시공사) 같은 친구들도 연령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부각됐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은 내년에 열릴 20살 이하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SBS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

대표팀 감독을 맡은 만큼 좋은 성적을 내는 건 기본적인 목표다. 하지만 황 감독은 근본적으로 축구를 하는 즐거움을 알리겠다는 포부가 있다. 황 감독은 <에스비에스>(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언급하며 “정말 열정적으로 축구를 한다. 그분들이 하는 걸 보면서 정말 놀랐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축구를 한다. 우리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대표팀도 진심을 담아 즐겁게 축구를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축구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에 축구를 시작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축구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모든 이들이 망설임을 넘어 ‘골 때리는’ 사회를 위해, 그는 또다시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뛰기 시작했다.

한겨레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