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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6일 11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6일 11시 50분 KST

2018년을 돌아보며 인간의 존엄을 다시 생각한다

어쩌다 인권을 둘러싼 환경이 이렇게 나빠졌는가.

Jurkos via Getty Images
huffpost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했던 올해, 인권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 개념인 인간의 존엄에 대한 경멸과 부정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전세계를 휩쓸었다. 어쩌다 인권을 둘러싼 환경이 이렇게 나빠졌는가.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인간 존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도 늘었다.

최근 창간된 <인권운동>에서 류은숙 인권활동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무미건조한’ 보편의 언어로서의 인권은 ‘텅 빈 그릇’ 같아서, 누가 갖다 써도 되고, 누가 무엇을 그 안에 담아도 되는 것처럼 섬세하지 못하다. 가령, 인권의 초석이라는 ‘존엄성’이라는 말만 봐도 그렇다. 여성의 낙태권을 반대하는 종교계 등의 세력도,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주장하는 쪽도 모두가 ‘존엄성’을 내세운다. 존엄한 죽음을 요구하는 쪽도 존엄사를 반대하는 쪽도 ‘존엄성’을 내세운다.”

존엄성은 라틴어의 디그니타스 혹은 영어의 디그니티를 번역한 말이다. 원래는 어떤 사람의 지위에 걸맞은 품위, 그리고 사람의 인격과 자존감이라는 뜻을 가진 어휘다. 나중에 인권에서 말하는 ‘존엄’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그것은 이마누엘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에 나오는 뷔르데(Würd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존엄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내재적 기본가치를 뜻한다. 사람은 가격을 매기거나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다. 인간의 고유한 개별적 완결성을 지향하는 원칙이 존엄성이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존엄하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존엄도 지켜야 한다. “자신을 벌레 취급 하는 사람은 나중에 짓밟히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

인권(인간권리)은 인간을 존엄하다고 동의하는 바탕 위에서 법이나 제도상의 ‘권한’을 결합시킨 개념이다. 인권에서 인간 존엄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법적인 권리만 남게 된다. 이 때문에 인권과 관련 있는 모든 국제 문헌에서 잊지 않고 존엄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을 필두로, 사회권규약, 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아파르트헤이트범죄처벌협약, 교육차별철폐협약, 인신매매억제협약, 고문철폐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여성정치권리협약, 아동권리협약, 이주노동자권리협약, 장애인권리협약, 강제실종철폐협약, 유럽인권협정 사형폐지부속의정서, 헬싱키협정, 유럽연합기본권헌장 등 주요 국제인권규범에는 인간 존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러 나라의 헌법에도 존엄이 나온다. 2차대전의 추축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의 헌법에 인간 존엄이 명시되어 있다. 일본 헌법 13조는 “모든 국민이 개인으로서 존중받는다”고 규정하는데 학자들은 이를 인간 존엄 원칙으로 해석한다. 유럽에서 늦게 민주화되었던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의 헌법에도 인간 존엄이 들어 있고, 남아프리카 헌법에서도 존엄성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민주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한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헌법에서도 존엄성 조항을 찾을 수 있다.

한국 헌법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는 2장의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선언한다.

흥미롭게도, 존엄이 제일 먼저 포함된 헌법은 민정이양으로 박정희가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63년 12월17일에 시행된 헌법 제6호였다. 그 8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나와 있다. 취임식 일주일 전에는 세계인권선언 15주년을 기념하는 우표 2종을 발행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의 1조에서도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난 70여년은 인간 존엄이라는 키워드가 지배한 시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인간 존엄이라는 말이 인권 관련 문헌에 잘 등장하지 않았다. 마그나카르타에는 나오지 않고, 영국권리헌장에는 현재의 도덕적 의미가 아닌 뜻으로 나온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이나 미국독립선언 혹은 미국연방헌법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노예폐지운동이나 여성참정권운동,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의 발기문에서도 존엄이라는 어휘가 쓰이지 않았다.

결국 2차대전이 끝난 후에야 인간 존엄을 인권의 토대적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이 인권 개념에 큰 변화를 줬다고 할 수 있다. 왜 20세기 후반에 인간 존엄의 원칙이 인권에서 이렇게까지 중요해졌을까.

전후 세계질서의 수립 과정에서 인권의 보편화를 추구하게 되었으므로 그 전까지 지배적이었던 유대-그리스도교적 천부인권 사상으로서의 자연권을 넘어설 ‘보편적’ 논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즉, 서구적인 천부인권(天賦人權)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서 인권이 도출된다고 하는 인중인권(人中人權)을 내세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칸트의 정언명령적 도덕관은 매력적인 대안이 되었다.

또한 인간 존엄 사상은 민주주의의 시대정신과도 부합했다. 신분과 차별을 타파하고 독립적인 개별 존엄자들이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평등하게 참여한다는 원칙은 현대의 정치문화와 잘 맞았다.

인간의 개별적 존엄을 인정할 때 몇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우선, 인권의 내용이 당사자들의 주관적 요구와 견해를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경향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인간 존엄에 관한 여러 해석과 요구들이 각축, 경합, 절충, 타협하면서 인권의 목록이 확장되었다.

탈종교적, 세속적으로 인권이 방향을 전환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 존엄을 어떤 초월적 원칙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 결과 인간 존엄이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어떤 객관적 방패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인간 존엄은 우리의 의지와 실천만큼만, 딱 그만큼만 보장된다.

또 다른 차원의 오해도 있다. 인권에서 인간 존엄을 규정하기 전까지, 즉 2차대전 끝나기 전까지는 야만의 시대였지만 그 후 국제적으로 인권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나서부터는 세상이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보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식의 단절론적 인권 세대관은 오류이자 위험한 인식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확산되면서 갑자기 인간 존엄의 기반이 악화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푸틴, 시진핑 유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의 등장이 인권을 악화시킨 독립변수인가, 아니면 더 깊은 원인이 따로 있고 이들은 매개변수에 불과한가.

마지막으로, 인간 존엄 사상의 토착적 등가물을 찾아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우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세계적 수준의 인권 이론으로 손색이 없다.

결론적으로, 인간 존엄이란 인간의 고유한 개별적 완전성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인간을 상향평준화하려는 지적, 실천적 지향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의 개별적 완전성을 해체하여 그 구성요소들의 경제적·사회적 효용성만 써먹으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 반인권적 패악이다.

존엄이라는 단어를 주문처럼 되뇐다고 해서 인간이 자동적으로 존엄해지진 않는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라는 절규에 호응할 때, 광화문 여성들의 외침에 귀 기울일 때, 한국 국적이 없는 이방인의 처지를 같은 인간으로서 헤아릴 때에만 모든 인간의 존엄이 조금씩 늘어날 수 있다.

칸트가 한 말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은 인간의 의무를 계속 준수하는 전진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인간 존엄의 진정한 뜻을 되새기는 것으로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 어떨까.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