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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어떻게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했나

상황이 다급한 프랑스는 코로나19 환자 이송에 군 병력과 고속열차, 헬리콥터 등을 총동원하고 있다.

  • 허완
  • 입력 2020.04.07 17:36
의료진들이 파리 오스테리즈역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프랑스는 중증 환자 치료가 가능하도록 고속열차 TGV를 개조해 환자 이송에 투입하고 있다. 이날 '이송 작전'에서는 파리에 있던 환자 36명이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은 서부 브리타니 지역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의료진들이 파리 오스테리즈역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프랑스는 중증 환자 치료가 가능하도록 고속열차 TGV를 개조해 환자 이송에 투입하고 있다. 이날 '이송 작전'에서는 파리에 있던 환자 36명이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은 서부 브리타니 지역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ASSOCIATED PRESS

파리 (AP) - 역사적인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 고성 유적이 줄지어 있는 루아르 계곡을 통과하는 고속열차에는 20명의 코로나19 중환자와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장비들이 탑승했다.

이동식 중환자실로 개조된 TGV는 열차, 헬리콥터, 제트기, 심지어 전함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동원 작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수용 능력을 초과한 병원의 혼잡도를 줄이고, 수백명의 환자와 수백명의 의료진들을 코로나바이러스 집중 발생 지역 안팎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작전이다.

″우리는 전쟁 중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누차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전사로 내세우며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 강력한 병력을 동원하고 있다.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ASSOCIATED PRESS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ASSOCIATED PRESS

 

이와 같은 극히 이례적인 동원 작전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애초부터 너무 오랫동안 대응을 지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 중 하나이자 세계 최고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갖췄다는 프랑스가 처음부터 이런 위기에 빠져서는 안 됐다는 얘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프랑스에 상륙할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몇 주 동안이나 이어진 은퇴자들의 연금개혁 시위, 1년 내내 진행된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시위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온 상황이었다. 이제 그는 세계에서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를 이끌어 가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파리 남부에 위치한 유럽 최대의 식재료 시장인 헝지스 시장은 임시 영안실로 개조되고 있다. 프랑스의 코로나19 사망자는 8000명을 넘었고, 7000여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프랑스의 병원들은 한계선에 내몰렸다. 의사들은 공급이 부족한 진통제를 배급하고 있고, 마스크를 재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군이 헬기로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클레프몽페랑, 프랑스. 2020년 4월3일.
프랑스 군이 헬기로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클레프몽페랑, 프랑스. 2020년 4월3일. ⓒASSOCIATED PRESS
프랑스 정부의 코로나19 환자 이송 지도. 고속열차와 군용기, 헬기, 전함 등이 총동원돼 프랑스 전역과 해외 영토로 환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코로나19 환자 이송 지도. 고속열차와 군용기, 헬기, 전함 등이 총동원돼 프랑스 전역과 해외 영토로 환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은 전국을 가로지르고 해외 영토로까지 이어지는 환자 이송 작전을 조직하는 것을 한결 용이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3주 가까이 이어진 바이러스 확산 억제 대책은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5일 하루 기준으로는 일주일 만에 가장 적은 사망자를 기록했고, 확진자 증가속도는 둔화됐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에서 뛰어나기로 유명한, 그러나 수십년 동안 예산 삭감이 이뤄졌던 프랑스 보건의료 체계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마크롱 대통령이 최전선에서 코로나19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파리의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분노한 의사들은 대규모 재투자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노트르담을 지키자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움직였다.” 프랑수아 살라샤스 박사가 1년 전 대형 화재로 심각하게 파괴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언급하며 말했다. 사건 직후, 곧바로 성당 재건을 위한 막대한 기부 행렬이 이어졌었다. ”이번에는 노트르담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속도로 연기 속에 무너져내리고 있는 공공 병원을 지키는 문제다.” 

코로나19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렌, 프랑스. 2020년 4월1일.
코로나19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렌, 프랑스. 2020년 4월1일. ⓒASSOCIATED PRESS
코로나19 환자가 군용 헬기 편으로 스위스로 이송되고 있다. 2020년 3월30일.
코로나19 환자가 군용 헬기 편으로 스위스로 이송되고 있다. 2020년 3월30일. ⓒASSOCIATED PRESS

 

많은 사람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코로나19가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인지 예상하지 못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좋지 않은 선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멕시코, 브라질,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이와 비슷한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2월, 마크롱 대통령은 나폴리를 방문해 이탈리아 지도자를 만난 자리에서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다며 여러 차례 볼맞춤 인사를 나눴다. 검사 건수가 제한적이어서 보건당국이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뿐, 이미 프랑스 전역으로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3월 초,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고령의 친지 방문을 자제하라고 말해놓고는 요양원을 방문했다. 같은 날 그는 아내와 함께 파리의 한 극장으로 향했고, 이 극장의 주인은 대통령이 ‘일상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그 시기 프랑스 당국의 공식 집계에서 확진자는 이틀마다 두 배의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인접국인 이탈리아를 휩쓸던 3월 중순, 프랑스는 전국적인 지방선거 1차 투표를 예정대로 실시했다.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은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도 불구하고 화창한 날씨를 즐기던 파리지앵들로 붐비는 세느강가를 산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 도중 볼맞춤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폴리, 이탈리아. 2020년 2월2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 도중 볼맞춤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폴리, 이탈리아. 2020년 2월27일. ⓒASSOCIATED PRESS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에서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외출금지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2020년 3월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에서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외출금지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2020년 3월16일. ⓒASSOCIATED PRESS

 

그러던 마크롱 대통령은 3월16일 급작스럽게 톤을 바꾸더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국적인 바이러스 확산 억제 조치를 발표했다. 일주일 뒤에는 5일 간의 기독교 집회 이후 감염 사례가 폭증한 동부 접경도시 뮐루즈에 군인들이 설치한 야전병원을 방문하면서 공식 석상에서는 처음으로 마스크를 쓴 채 등장했다. 

군과 병원 관계자들은 덜 혼잡한 병원으로 환자들을 이송하고 상황이 심각한 지역으로 의료진들을 보내는 체계를 도입했고, 이 과정에서 군 병력은 핵심적인 역할을 맞았다.

‘병실로 전환된’ 첫 번째 TGV 는 3월26일 첫 운행에 나섰다. 보호장비를 착용한 의사들은 거의 텅 빈 채 큰 소리의 경고 방송만 흘러나오는 동부 스트라스부르 기차역 플랫폼에서 바퀴 달린 들것을 밀어댔다. 2층차리 기차칸에는 환자들, 복잡하게 얽힌 튜브와 선들이 좁은 객실에 간신히 놓였다. 출발 준비가 끝나자 열차는 코로나19 피해를 덜 입은 서쪽 지역의 병원을 향해 속도를 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19 야전병원'을 방문해 현장의 군 인력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뮐루즈, 프랑스. 2020년 3월2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마스크를 쓴 채 '코로나19 야전병원'을 방문해 현장의 군 인력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뮐루즈, 프랑스. 2020년 3월25일. ⓒASSOCIATED PRESS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파리, 프랑스. 2020년 4월1일. ⓒASSOCIATED PRESS

 

군사 작전처럼 진행되는 이같은 이송 작전이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검사 건수와 의료장비 부족 사태에 대한 논의가 피어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필수 물품 공급이 크게 부족해지는 위기로 접어들었다는 게 분명해지자 모든 마스크에 대한 징발을 지시했다.

여론조사 업체 해리스인터랙티브의 장-다니엘 레비는 ”마스크에 대한 문제는 지금 프랑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처음부터 마스크 수급에서 ”충분히 역할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게 여론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는 규모가 작은 인접 국가인 룩셈부르크를 비롯해 스위스, 독일 등으로 일부 환자들을 보내야만 했다. 독일은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확진자수는 프랑스와 비슷하지만 사망자수는 현재까지 5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중도파인 마크롱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극우 지도자인 마린 르펜은 프랑스2 TV에 나와 ”정부는 이 나라의 대응 태세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고, 극좌 진영의 지도자 장-뤼크 멜랑숑은 전직 투자은행가인 마크롱 대통령이 ”자유시장에서 국가의 수요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인물이므로 그의 사고체계가 무너져내렸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코로나19 야전병원'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뮐루즈, 프랑스. 2020년 3월2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코로나19 야전병원'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뮐루즈, 프랑스. 2020년 3월25일. ⓒASSOCIATED PRESS

 

레비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마크롱 대통령은 ”꽤나 권위주의적으로 비춰진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이런 인식은 시위가 한창일 때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사람들이 ”강력한 권위를 가진 인물을 바라는” 지금은 오히려 그의 지지율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랑스 하원인 국민의회는 정부의 코로나19 비상사태 대응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마스크 제조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직은 정부의 대응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질 때가 아니라고 했다.

″전투를 치를 때는 우리 모두가 승리를 위해 단합해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말했다. ”전쟁에서 아직 이기지도 못했는데 사람들을 재판에 넘기려는 이들은 무책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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