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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5일 15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05일 15시 46분 KST

헛된 희망보다는 무기력을!

청춘을 겪어본 적도 없이 청춘의 종말을 맞이한 30대 청년에게

huffpost

“서른넷, 청춘은 이미 끝났다.” 작년 공무원 시험에 네 번째 낙방한 뒤, 한 청년이 올린 카톡 대문 글이다. 그는 서너 해 전부터, 메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의했었다. 길고 긴 그의 메일 내용은 언제나 지리멸렬했고, 고민의 힘듦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생활을 이겨내고 언젠가는 세상에서 활개 치며 살고 싶다, 선생님께서 제게 힘이 될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내 삶은 언제부터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겨내고 싶다는 사연이 주를 이루었다. 세 번째 낙방을 한 뒤, 그는 또 긴 메일을 보내왔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고시원 밖의 세상을 생각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더 시작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불끈 화가 나서 그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렇게 삶을 유예하면서까지 정말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고시원에서 보낸 지난 4년 동안의 삶은 내게 가장 안전한 시간이었고, 그 삶을 벗어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고, 이것은 ‘포기하지 않는 도전’이라는 명분 아래 저질러지는 내 비겁함’이라고 자백했다. 

뉴스1
자료사진

나는 그가 이번 메일에서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난 그에게 너의 솔직함으로 인해 얼마간이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합격하라는 말 대신 합격해보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다시 시험에 불합격했고, 스스로 청춘의 종말을 인정했다. 나는 위로도 아니고 힐난도 아닌 문자를 보냈다. “청춘을 겪어본 적도 없는데, 언제 청춘이 끝났나요?” 그러자 그의 답은 이랬다. “내 청춘은 이미 고등학교 때, 오기도 전에 사라졌어요. 사실 지금껏 저는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자라지 않았던 것 같구요. 그래서 서른넷에 청춘이 끝났다가 아니라, 17살에 이미 끝난 청춘을 서른넷에 확인한 거죠.”

그는 고등학교 때 국제통화기금(IMF)을 겪었고, 그 환난의 전형적인 피해자이기도 했다. 지금 한국의 30대는 아이엠에프와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다. 그들이 출산을 거부하는 이유에서부터, (나이답지 않게) 삶의 전망을 신경증적으로 불안해하는 데까지, 심리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악용되기도 한다. 자본가와 기득권층 무리는 불안을 가장 효과적인 통치 전략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이들은 ‘몰락을 예정한 삶의 예’ 또는 ‘재정 부담을 양산할 비과세자 집단’으로 상정해 두고 다수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는 아주 좋은 증거로 활용한다. 온 나라가 나서서 십수 년째 청년 실업 해소를 외치는데, 정작 취업을 시켜줘야 할 자본가들은 명퇴와 정리해고를 쉴 틈 없이 해대는 해괴한 상황이다. 자본가들로부터 돈 받아먹고, 비호해주는 권력층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난센스는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생존을 걸고 취업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에게 이 구조가 왜 느껴지지 않겠는가? 이 무자비한 구조에 갇혀 버린 청춘들은 무기력하다.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기력의 시위라도 하라고 말이다.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