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은 홍석천에게 그저 평범한 어버이날이 아니었다. 22년 전 부모님께 용기를 내 커밍아웃을 하고,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자식의 갑작스런 고백에 세상이 무너진 것같은 표정을 짓던 부모님을 처음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홍석천은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넷플릭스 시리즈 ‘하트스토퍼’의 영상 일부를 올린 뒤 “22년 전 나도 엄마 아빠한테 커밍아웃했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때의 엄마 아빠 표정을 잊을 수 없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당시의 부모님의 표정에 대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 뭐든지 잘하고 믿어라 했던 아들한테 처음으로 배신당하고 실망한 듯한 표정,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들에 대해 아무 도움도 못줄 거 같은 표정”이라며 “그렇게 22년이 흘렀다. 나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고, 내가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당하는 수많은 차별에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날의 엄마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서 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나는 그렇게 이 나라에서 살아남아야했다”면서 “커밍아웃한지 22번째 맞는 어버이날 내 젊은 시절 엄마한테서 원했던 말들을 영국드라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잘 이겨내고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 어딘가 아직도 상처들이 곪아있나 보다”라고 털어놨다.
‘하트스토퍼’는 영국 남자 중등학교에 다니는 10대 소년 찰리와 닉의 사랑과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홍석천이 공개한 부분은 ‘하트스토퍼’ 속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장면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고백에 잠시 놀란 듯 하지만 이내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면서 따스하게 안아주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 생각하다가도 지금도 정체성과 차별 때문에 힘들어할 또 다른 홍석천과 가족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무겁다”라며 “이쯤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 이란 게 생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말로만 선진국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때다. 그저 드라마 같은 얘기겠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꿈꿔본다. 꿈꾸는 건 자유라지? 그래보자”라고 말을 맺었다.
한편 홍석천은 1995년 제4회 KBS 대학개그제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활발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던 중 지난 2000년 성소수자임을 공개했으며, 2008년에는 친누나의 두 자녀를 입양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서은혜 프리랜서 기자 huff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