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11월 05일 14시 56분 KST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 가족을 숨겨준 92세 노인이 생존자의 손주들을 만났다

당시 그리스 유대인의 81%가 사망했다

92세의 그리스 여성이 자신이 홀로코스트 당시 구해준 유대인 가족들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났다. 주최측은 이런 종류의 만남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멜포메니 디나와 디나의 두 언니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 베리아에서 온 유대인 모데카이 가족 일곱 식구를 숨겨준 것은 75년도 넘은 일이다. 모데카이 가족은 위험에 노출돼 다른 은신처를 찾아야 할 때까지 디나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모데카이 가족은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살아있는 남매 중 두 명이 자녀와 손주들을 데리고 11월 4일에 디나를 그때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총 40명 정도였다고 예루살렘 포스트는 전했다.

최연장자인 사라 야나이(86)는 십대였던 디나가 당시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고 회상했다.

“이제 우리는 아주 행복한 대가족이고, 그건 전부 그들이 우릴 구해줬기 때문이다.” 야나이가 AP에 말했다.

EMMANUEL DUNAND via Getty Images
Greek World War II rescuer Melpomeni Dina (C) reacts as she is reunited with holocaust survivors Yossi Mor (R) and his sister Sarah Yanai, whom she helped escape in 1943, at the Hall of Names at the Yad Vashem Holocaust Memorial museum in Jerusalem on November 3, 2019. (Photo by Emmanuel DUNAND / AFP) (Photo by EMMANUEL DUNAND/AFP via Getty Images)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들을 구해준 비유대인과의 재회 기념식은 점점 드물어져간다. ‘의인을 위한 유대인 재단’의 스탠리 스탈 부회장은 1992년부터 매년 생존자와 구조자의 재회 기념식을 열고 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에 밝혔다. 하지만 사망했거나 장거리 이동이 힘든 상태인 사람들이 많아서, 디나와 모데카이 가족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내게 있어 이것은 아주, 아주, 아주 특별하다. 한 문이 닫히고, 다른 문이 열린다. 재회의 문은 천천히 닫히고 있다.” 스탈이 AP에 말했다.

이스라엘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기념비는 1994년에 디나(결혼 전 성은 지아노풀루였다)를 ‘여러 국가의 의인들’에 추가했다. 홀로코스트 기간 중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2만7000명 이상의 비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칭호다.

야나이의 부모인 멘테스 모데카이와 미리암 마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그리스 북부 베리아의 자영업자들이었다고 야드 바솀은 밝혔다. 마리는 옷 가게를 하며 지역 여성들을 대상으로 바느질을 가르쳤다. 학생 중 하나가 디나의 언니인 에프티미아 지아노풀루였다. 지아노풀루는 가난한 고아였기 때문에 마리는 바느질 수업비를 받지 않았다. 

1941년에 그리스가 독일과 이탈리아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나치가 그리스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모데카이 가족의 삶이 달라졌다. 1943년 3월, 인근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유대인을 체포하고 추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은 숨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가짜 신분증을 구해주었고, 버려진 터키식 모스크 다락방에 나무 천정을 지었다. 모데카이 가족은 거기서 1년 정도 살았지만 좁고 환기가 나빠 건강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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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World War II rescuer Melpomeni Dina (C) poses for a group photo with holocaust survivors Yossi Mor (C-L) and his sister Sarah Yanai (C-R), whom she helped escape in 1943, along with their descendants at the Hall of Names at the Yad Vashem Holocaust Memorial museum in Jerusalem on November 3, 2019. (Photo by Emmanuel DUNAND / AFP) (Photo by EMMANUEL DUNAND/AFP via Getty Images)

 

도시 외곽에 있는 단칸방 집에서 두 여동생과 살던 에프티미아 지아노풀루가 이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전부 십대였던 세 자매는 배급받은 식량을 모데카이 가족과 나누었고, 소유하고 있던 근처의 땅에 농사를 지어 부족한 식량을 보충했다. 자매 중 둘째인 비들렘 지아노풀루는 농장에서 일하고 나서 10명이 먹을 식량을 자루에 담아 등에 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유대인 가족 중 당시 6세이던 슈무엘이 중병에 걸려 병원에 데려갔으나 숨졌다. 곧 누군가 모데카이 가족을 당국에 신고했다. 에프티미아 지아노풀루스의 친척이 나서서 모데카이 가족이 근처의 베르미오 산맥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고, 지아노풀루스 자매는 이들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기 가족의 옷가지를 주었다. 모데카이 가족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산속에서 버티다가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나치 독일의 독일 점령은 1944년에 끝났다. 홀로코스트 당시 최대 7만명의 그리스 유대인이 사망했는데 이는 그리스 유대인의 81% 정도라고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관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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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World War II rescuer Melpomeni Dina (2nd R) greets descendants of holocaust survivors Yossi Mor (R) and his sister Sarah Yanai (3rd R), whom she helped escape in 1943, at the Hall of Names at the Yad Vashem Holocaust Memorial museum in Jerusalem on November 3, 2019. (Photo by Emmanuel DUNAND / AFP) (Photo by EMMANUEL DUNAND/AFP via Getty Images)

AP에 따르면 야나이와 남동생 요시 모르는 그리스에서 몇 년 전에 디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디나가 그들의 자녀와 손주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데카이 가족이 숨어살기 시작했을 때 겨우 1세 정도였던 모르(77)는 디나 덕택에 자신이 ‘아름다운 대가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르는 “그들은 아주 가난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내 어머니의 선한 마음 때문에 어머니를 사랑했고, 그래서 우리를 구해주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에 말했다.

디나는 모데카이 가족의 후손들을 본 경험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행사장에 온 기자들에게 말했다. 전쟁 중 자신과 언니들의 행동은 “옳은 일이었다”고 했다.

AP에 이제는 “조용히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 HuffPost US의 92-Year-Old Who Hid Jewish Family During Holocaust Meets Survivors’ Grandchildren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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