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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6일 14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12월 26일 15시 36분 KST

2010년대의 가장 큰 문화적 비극은 '스타 배우'의 멸종이다

할리우드의 비즈니스 모델이 인물보다 상품 위주로 바뀌었다

연도의 십 자리 숫자가 바뀌면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2010년대의 시작을 앞둔 2009년 12월 31일, 우리는 때 이른 죽음을 겪었다. 디즈니가 40억달러를 주고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수많은 코믹북 캐릭터들을 영원히 리사이클할 수 있는 권리를 샀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할리우드를 바꿔놓을 거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스타 배우의 시기가 그렇게 죽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물론 스타들은 아직도 존재한다. 영화에도 가끔 나온다. 그런 영화들이 큰 돈을 벌어들이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미국 문화의 핵심에 스타 배우가 있던 시절은 사라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말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

2010년대에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소니, 폭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등 주요 스튜디오들은 각기 정도는 달랐지만 전통적인 스타들을 우선시하지 않는 쪽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매력만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스타 배우들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스타 배우들은 오래 이어지는 프랜차이즈와 연관이 없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본인의 호감도만으로 시대정신을 화면에 담아내고, 셀러브리티 역할을 해낼 의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마블 등이 기업 엔터테인먼트를 독점하면서 브랜드가 스타가 되었다. 이제 대중 미디어를 몰아가는 것은 배우가 아니라 신비한 동물, 아기 요다, 늘 변하는 어벤져스 출연진이다. (다섯 명에게 크리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와 휴먼 토치 외에 맡은 역을 두 개만 대보라고 물어보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플랫폼이 유명세를 민주화시켜, 스타 배우들이 우위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는 사실이다.

Columbia TriStar via Getty Images
톰 행크스와 댄젤 워싱턴. '필라델피아'(1993)

내 생각에는 이것이 2010년대의 가장 큰 문화적 희생자이며, 2020년대에는 더욱 커질 것 같다. 할리우드는 이제 인간보다는 제품을, 기술보다는 자본을 중요시한다.

배우가 기존에 있던 카탈로그에서 끌어낸 캐릭터, 마케팅 술책으로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닌 다양하고 공감 가는 캐릭터들을 연기하면 우리는 한 사람의 여러 차원들, 그를 둘러싼 더 큰 세상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연기자들을 기반으로 한 산업은 최소한 돈벌이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는 척은 할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게 아닌, ‘팬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드마크만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산업은 그런 척도 할 수 없다.

이게 전부 디즈니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2009년의 마지막 날은 그 누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운명적 영향을 낳았다.

한때 조안 크로포드, 로버트 레드포드, 윌 스미스 등의 대스타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할리우드는 이제 지적재산권을 더 선호하고, 특정 배우에 대한 선호는 뒷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신작’을 보러 가지 않는다. 우피 골드버그나 짐 캐리의 자리를 이어받을 코미디 배우를 찾을 생각은 포기하라.

2010년대는 1920년대 이후 확실한 스타 배우가 가장 적게 배출된 시대였던 것 같다. 제니퍼 로렌스가 미국의 마지막 연인에 등극했지만, 2016년 이후로는 히트작이 없다. 멜리사 맥카시와 케빈 하트는 헤드라인에 오르는 일이 드물고 프랜차이즈에 출연하지도 않았으며 수입이 줄어들었다. 드웨인 존슨은 ‘분노의 질주’를 통해 액션 블록버스터의 왕이 되었으나,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프로레슬링 커리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 스틸러 옥타비아 스펜서는 2011년에 오스카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지만, 2019년에서야 주연을 맡았다. 산드라 불록, 조지 클루니, 매튜 맥커너히 등의 베테랑은 간간히 성공을 거뒀으나, 그들의 커리어를 규정하는 성인 지향 영화들은 유행이 지났다. 최고의 몸값을 받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 헴스워스 등은 코믹북을 영화화한, 사실상 저절로 팔리는 작품들로 대부분의 수익을 올린다. 남녀를 불문하고 2010년대를 거치며 이런 수요에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배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가 아닐까.

Sunset Boulevard via Getty Images
우피 골드버그와 패트릭 스웨이지, '사랑과 영혼'(1990)

스타 배우가 멸종 위기종이 된 상황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입지를 잠식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스타 배우들은 감상할 권위자들에 굶주린 대중들에 의해 수십 년 동안 인기를 누렸다. 초기 무성영화에는 크레딧이 없었기 때문에 관중들은 스튜디오에 배우가 누구인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영화 테크놀로지는 인상적이었고 이야기들은 (많은 경우) 훌륭했지만, 스크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매력이 없다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초기의 할리우드에서는 배우가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192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스타 배우라는 개념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계약을 기반으로 한 스튜디오 시스템은 바뀌었지만, 배우는 신성한 존재로 남았다. 그들이 산업을 주도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도록 부추겼다. 잡지 산업과 토크쇼가 커지면서 스타들은 사람들의 거실에서 화려한 친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스크린에서나 밖에서나, 우리가 좋아하는 연기자들은 우리의 욕망, 세계관,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인종과 젠더에 기반한 약점들을 드러내 주었다. 영화는 스스로에 대해 계속 언급하는 하나의 연속체가 되었다. 톰 행크스는 제임스 스튜어트를 이어받았고, 메릴 스트립은 캐서린 헵번의 왕좌를 차지했으며, 덴젤 워싱턴은 제 2의 시드니 포이티어가 되었다. 20세기에 할리우드에 찾아오는 어떤 경제적 변화도 스타덤은 감당해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왔다. 9/11 테러 후, 주류 영화들은 점점 더 위험회피적이 되어가며, 균일한 슈퍼히어로 장르와 엄청나게 자본주의적인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부상했다. 2008년의 불황 이후에 스튜디오들은 정교한 시각 효과를 위해 제작비를 늘렸지만 막대한 출연료를 받는데 익숙해진 정상급 배우들에게(한 편당 1000만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배우도 있었다) 돈을 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중규모 예산 영화들(‘스팅’, ‘사랑과 영혼’, ‘제리 맥과이어’ 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에 추가로 현금을 가져다 주던 VHS와 DVD 수익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동시에 2008년에 ‘아이언맨’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어 디즈니가 마블을 매입하게 되었다. 또 ‘스타워즈’를 만든 루카스필름을 2012년에, 20세기 폭스를 2019년에 사들였다. 할리우드는 유성영화가 등장한 이래 가장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모든 게 달라졌다. 오리지널 영화를 찾는 1급 배우들은 소규모 영화쪽으로 몰렸고, 현재 그쪽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붐비고 있다. 스트리밍 붐이 텔레비전의 르네상스를 낳으며,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대작 영화들으로 한정되는 상황이다(‘해리 포터’ 속편이나 프리퀄, ‘미녀와 야수’ 실사판, 마블 등)

새로 발견될 것이 별로 없는 듯하고, 미국에서 극장에 간다는 행위의 매력은 사라졌다. 영화들이 속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는 건 다시 만들어지도록 설계되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2편, 3편 등은 첫 편의 플롯을 조금씩 바꿔서 보여주기 때문에 캐릭터들은 부침을 겪어야 한다. 모든 게 크로스오버나 아슬아슬한 순간, 뻔한 절반의 결말을 향해 가는 영화에서 배우들은 경험을 폭넓게 탐구할 수 없다. 게다가 블루스크린 세트장은 본질적으로 이 세상 같지가 않다. 웰메이드 블록버스터가 나쁠 것은 전혀 없지만, 대부분은 아주 웰메이드가 아니다. 앤 해서웨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하는 연기는 ‘프린세스 다이어리’,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할 수 있는 연기만큼 깊지 못하지만, 요즘 주요 스튜디오들이 이런 영화들의 제작을 허가하기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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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노팅 힐'(1999)

한편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 지속 시간을 파괴했고 인플루언서라는 짜증나는 포스트모던 셀러브리티들을 만들어 냈다. 전통적인 유명세가 가진 광채는 모두가 광채를 원하는 현실을 낳았다. 재능으로 셀러브리티가 된 사람들 대부분은 계산적이고 이미지에 집착한다. 그들과 우리가 이어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외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여함을 의미한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아름다운 이미지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감정들은 멀티플렉스 밖에 존재하는 세상에도 색을 입힌다. 반면 소규모의 유명세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영상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소규모의 유명세는 걸러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아를 중심에 두어, (팔로워가 많든 적든) 다들 그들의 존재가 모든 것이 솟아나는 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타인에게 공감하려 하기보다는, 타인들이 우리에게 공감하길 원한다. 스타 배우들은 이런 공식에 맞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 고양과 즐거움을 위해 진화하는 스타들이 없는 미래에 우린 무얼 잃게 될까? 영화들이 더욱 디지털이 되고 현실과 멀어진다면? 영화들이 소음은 최대화하고 일상의 인간들은 최소화하는 빠른 감각적 공격이 된다면?

“스크린에 비친, 현실보다 거대해 보이는 스타 배우들을 올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던 때의 교환은 제법 간단했다.” 평론가 타이 버가 영화 스타덤의 역사를 다룬 2012년의 책 ‘우리 같은 신’(Gods Like Us)에 쓴 글이다. “우리의 일상적 딜레마를 꿈 같은 무대에서 펼쳐내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돈을 냈다. 우리 자신이 우리보다 더 예쁘고, 똑똑하고, 터프하고, 혹은 우리 만큼 겁먹지 않는 사람들로 대체되는 걸 보았다. 스토리는 야망의 위험함, 사랑에 빠질 때의 짜릿함, 노래와 춤의 즐거움을 보여주었다. … 우리는 스타를 원하지만, 스타들이 가진 것들을 갖길 더욱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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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크로포드와 베티 데이비스, '제인의 말로'(1962)

하지만 이제 우리는 스타를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예전처럼은 아니다. 이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여성팬이 많은 배우들이 우리들처럼 세월을 견디는 걸 지켜보며 함께 늙어갈 수 없을 것이다. 베티 데이비스의 눈, 캐슬린 터너의 목소리, 에디 머피의 웃음은 모두 과거의 특징들이다. 이들의 선천적 카리스마에 의해 인기를 얻은 특징들이다. 플롯 장치가 아닌 개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관객과의 이런 유대는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 물론 백만장자인 스타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서구 엔터테인먼트의 퇴행, 우리의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현실에 뿌리내린 것들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상황에 대해 눈물을 흘리자.

할리우드가 마침내 유색인종, 퀴어 등 잘 대표되지 않았던 집단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는 지금에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는 게 특히 참담하다. 마침내 미국 대중 문화는 포용성의 갭을 치료하고 포식자들을 쫓아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인재들을 보여줄 오리지널 영화의 수는 적었다. 마이클 B. 조던은 ‘블랙 팬서’에서 복잡성이 있는 슈퍼빌런 킬몽거를 멋지게 연기했지만, 45년 전에 마블 코믹스에 등장한 이 캐릭터는 어떤 신인 배우라도 연기할 수 있었다. 킬몽거를 조던만의 캐릭터로 만들어주는 건 거의 없었다. 나는 다양한 배우들의 세대가 이와 같은 교환성을 겪을 것을 우려한다. 그들이 GQ 표지에 얼마나 근사하게 나온다 해도 말이다.

우리와 배우들의 관계는 약해졌다. ‘고스트버스터’는 재탕이고 반년마다 다시 나오는 ‘배트맨’도 이를 바로잡지 못한다. 영화에 관한한, 우리의 인간성은 쪼그라들고 있다. 신들은 사라졌다.

 

* HuffPost US의 The Decline Of The Movie Star Is The 2010s’ Great Cultural Tragedy를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