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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연달아 취소'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2019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

직접 방문한 페스티벌 현장은 관객들의 분노와 야유소리로 가득했다.

  • 김태우
  • 입력 2019.07.29 16:02
  • 수정 2019.07.29 18:42

지난 2017년 바하마 그레이트엑수마섬에서는 대규모 음악 축제 ‘파이어 페스티벌’(Fyre Festival)이 열렸다. 미고스와 디스클로저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공연을 예고했고 발라 하디드, 켄달 제너 등 유명 모델들이 행사를 홍보했다. 또 수천 달러에 달하는 티켓은 호화로운 숙소와 식사를 약속했다. 티켓은 단 며칠 만에 완판됐다. 

그러나 주최 측이 약속했던 ‘호화로운 페스티벌’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고급 호텔급 숙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전날 쏟아진 폭우에 젖은 매트리스와 방수조차 안 되는 텐트가 있었다. 또 최고급 음식을 제공하겠다더니 정작 관객들이 받은 건 토스트 두 쪽에 치즈, 샐러드가 담긴 스티로폼 상자였다. 분노한 관객들은 다른 관객들의 짐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떠나려던 이들은 항공편이 없어 공항에서 노숙해야 했다. 

파이어 페스티벌 입장권 구매자들은 주최 측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그 후 행사를 주최한 사업가 빌리 맥팔랜드는 금융 사기죄로 기소되어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빌리 맥팔랜드
빌리 맥팔랜드 ⓒPatrick McMullan via Getty Images

그로부터 2년 뒤, 한국에서 ‘파이어 페스티벌’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27~28일 양일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서 열린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에서였다. 

 

7월 26일

허(H.E.R.)

ⓒMonica Almeida / Reuters

지난 3월 28일,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주최사: 페이크버진) 측은 1차 라인업을 공개했다. 헤드라이너인 제임스 블레이크와 허(H.E.R.), 다니엘 시저와 멘 아이 트러스트(Men I Trust)가 참가한다는 내용의 공지였다. 지난 1일 발표된 최종 라인업에는 총 19팀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러던 지난 26일,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개최를 하루 앞두고 의 불참 소식이 전해졌다. 주최 측은 “27일 선셋 스테이지에 출연 예정이었던 H.E.R.의 공연이 전일 갑작스러운  아티스트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취소되었다. 2018년 첫 내한이 아티스트에 의해 일방적 취소된 데 이어 어렵게 성사시킨 재내한에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또 그녀를 기다렸을 팬분들께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허는 주최 측의 설명과 달리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기치 못한 문제(unforeseen logistical issues)로 인해 27일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공연에 출연하지 않게 됐다”라고 밝혔다. 

ⓒHUFFPOST KR/TAEWOO KIM, INSTAGRAM/HERMUSICOFFICIAL

공연 당일인 27일 허의 ‘일방적 취소’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소속사 소니뮤직은 “H.E.R.은 7월 27일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로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이었으나 주최 측인 프로모터와의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참석이 어려워졌다”라며 반박에 나섰다. 

허 불참 소식이 전해진 이후 주최 측은 페노메코의 이름이 표기된 타임 테이블을 게시했다가 급히 삭제했다. 

ⓒInstagram/holidaylandfest

이에 대해 페노메코 소속사 밀리언 마켓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페노메코는 허의 출연, 불참과 관계 없이 공연 초반 섭외 단계부터 이미 공연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최 측의 실수로 페노메코가 라인업에 포함된 채 공지되어 많은 팬들이 또 한번 혼란을 입게 된 상황이 되었고 주최 측은 사과의 공지나 설명 없이 (페노메코를) 라인업에서 다시 제외시켰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뒤늦게 섭외된 건 힙합 듀오 XXX였다. 이들은 27일 오후 2시부터 2시 30분까지 서브 스테이지인 홀리데이스퀘어에서 공연을 펼쳤다. 

 

조지(Joji)

미국 힙합 레이블 88rising 소속 아티스트인 조지는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팬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그의 공연은 27일 오후 4시 2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될 계획이었으나 전날 45분으로 단축됐다. 공연 시간 단축에 대한 주최 측의 설명은 전혀 없었다. 

 

7월 27일

우천 공지

ⓒHOLIDAY LAND FESTIVAL

기상청은 행사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27, 28일 모두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주최 측은 앞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2019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우천 시에도 예정대로 진행되며 우천으로 인한 환불, 변경 및 교환은 불가하다”라고 안내했으나 공연을 하루 앞둔 26일 ”행사 당일 오전 9시 인천 중구 운서동 기준 강수량이 25mm 이상, 10m/s 이상일 경우 출연진과 논의 후 오전 10시(*매표소 10시 30분 오픈, 입장은 12시 30분부터)에 행사 진행 여부를 다시 한번 공지하겠다”라고 말을 바꿨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들을 배려하지 않은 처사였다. 이날 공연은 화창한 날씨 속에서 정상 진행됐다. 

 

아미네(Aminé) 애프터 파티

아미네는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만의 ‘신개념 애프터 파티’에 출연했다. 이는 첫날 공연 종료 이후인 28일 새벽에 열렸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에 열리는 일반적인 애프터 파티와 달리 첫째 날과 둘째 날 공연 사이에 진행됐다. 

주최 측은 앞서 이 행사가 유료로 진행되며 페스티벌 양일권 소지자는 2만원, 28일 티켓만 구매했거나 페스티벌 패스를 아예 구매하지 않은 이들은 4만원에 파티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이후 논란이 불거지자 주최 측은 애프터 파티 입장권을 페스티벌 팔찌 착용자 전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페스티벌 패스가 없는 이들의 입장을 제한한다고 공지를 수정했다. 

 

7월 28일

인천 머드 축제

ⓒHUFFPOST KOREA/TAEWOO KIM

28일 공연은 머드 축제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진흙과 흙탕물이 범벅인 현장에서 진행됐다.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내린 비 때문이다. 주최 측은 이날 오전 10시 ”강수량 0.1~1.0 바람 6m/s로 행사 취소 기준인 강수량 25mm, 바람 10m/s 이하의 수치로 확인됨에 따라 오늘 페스티벌은 예정대로 진행된다”라고 공지했다. 다만 ”간밤의 많은 비로 인해 홀리데이 스퀘어 무대의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재정비 후 입장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HUFFPOST KOREA/TAEWOO KIM

입장이 시작된 2시경 정작 관객들이 무대를 관람하는 무대 밑은 전혀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잔디 위 발판은커녕 비를 피할 천막마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고, 앞서 반입을 금지하겠다던 장우산이나 슬리퍼도 다수 포착됐다. 

주최 측은 전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공연 현황을 활발히 중계하던 것과 달리, 28일에는 오전 공지를 제외하고 관객들이 폭우와 강풍에 항의하며 댓글을 쏟아내는 내내 별다른 게시물을 올리지 않았다. 

 

공연 취소 사태

ⓒHOLIDAY LAND FESTIVAL

이날 공연할 예정이었던 아티스트 10팀 중 4팀은 무대에조차 오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시작은 DJ Light였다. DJ Light의 공연은 서브 스테이지인 홀리데이 스퀘어 무대 재정비로 인해 취소됐다. 

강풍 속에 진행됐던 사브리나 클라우디오의 공연 직후 주최 측은 홀리데이스퀘어에서 진행될 예정었던 빈지노의 공연이 무대 재정비로 인해 30분간 지연될 것이라고 안내했다. 빈지노의 공연은 1시간 넘게 지연되다 뒤늦게 취소됐다. 취소 소식은 주최 측 대신 빈지노의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INSTAGRAM/REALISSHOMAN

그는 ”예정되어있었던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에서의 제 무대가 강풍으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라며 ”저를 보러오신 팬분들 정말 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라고 사과했다. 

7시경 주최측은 홀리데이스퀘어 무대를 철수하고 메인 스테이지인 선셋 스테이지에서 남은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며 추후 일정은 재공지하겠다고 알렸다. 

행사는 아미네의 공연으로 재개됐다. 타임 테이블대로라면 다니엘 시저가 먼저(6시 30분~7시 40분) 무대에 올랐어야 했으나 주최 측은 이에 대한 설명 없이 ”아미네 공연 이후 세부 타임테이블 공지드리도록 하겠다”라고 안내했다. 아미네의 공연 역시 15분 단축되어 진행됐다.

ⓒHUFFPOST KOREA/TAEWOO KIM

아미네 공연 이후 공지하겠다던 타임 테이블은 결국 백지화됐다. 50분가량 대기 끝에 행사 프로덕션 대표가 무대에 올라와 남은 공연 취소를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9시 7분경 ”우천으로 인해 다니엘 시저와 앤 마리의 예정된 공연은 뮤지션의 요청으로 취소되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라며 무대 위 화면에 띄워둔 공지 사항을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환불 및 취소 규정은 내일 오전(29일) 중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공식 웹사이트 및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지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태풍과 바람과 비에 관계된 문제였다. 우리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이들의 격앙된 말투는 되레 팬들의 분노를 샀다. 비는 이른 오후쯤 그쳤고, 앤 마리와 다니엘 시저 공연이 예정되어있던 저녁 시간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앤 마리와 다니엘 시저의 공식 입장

페스티벌 측이 (공연 취소가) 내 결정이라고 말했다니 믿을 수 없다. 나는 무대에 오르고 싶었지만 무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을 경우 모두 내 책임이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페스티벌 측이 (공연 취소가) 내 결정이라고 말했다니 믿을 수 없다. 나는 무대에 오르고 싶었지만 무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을 경우 모두 내 책임이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HUFFPOST KR/TAEWOO KIM, TWITTER/ANNEMARIE

앤 마리는 이날 ”뮤지션 요청으로 취소됐다”라는 주최 측의 발표를 뒤늦게 전해 들었는지 ”나는 공연을 취소한 적이 없다. 주최 측이 내 결정이라고 발표했다니 믿을 수 없다. 나는 무대에 오르고 싶었지만 만약 무대가 무너져 사람들이 죽는다면 그건 다 내 책임이라는 내용의 서약서에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라며 분노를 표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내 라운지를 급히 섭외해 60분간 무료 공연을 진행했다.

다니엘 시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전 문제로 인해 공연을 진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이해해줘서 고맙다”라며 무대 취소 이유를 밝혔다. 

ⓒINSTAGRAM/DANIELCAESAR

7월 29일

페이크버진 입장

오전 중 환불 및 취소 규정에 대해 공지하겠다던 주최 측 말과 달리 입장문은 12시 정각이 돼서야 게시됐다. 페이크버진은 이날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28일 취소된 아티스트의 공연에 대한 온라인상의 근거 없는 루머들에 대한 입장을 비롯, 28일 종합적 상황 규명과 안내, 그리고 관객분들에 대한 보상 체계를 준비하기 위해 프로덕션, 공연장, 기획사를 비롯한 관계 업체들이 내부 논의 중에 있으며 오늘 중으로 최종 공지드리겠다”라고 알렸다.

ⓒINSTAGRAM/HOLIDAYLANDFEST

페이크버진은 입장문 말미에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실망감을 안고 돌아가신 많은 관객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덧붙이기는 했으나 미숙한 행사 운영에 대한 사과 없이 ”근거 없는 루머”를 운운했다. 현재는 댓글창 마저 닫아둔 상태다. 

페이크버진 측 관계자는 29일 오후 허프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사전 준비 미흡과 환불 등에 대한 정보는 ”금일중 공지할 예정”이라며 행사 진행에 대한 자세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페이크버진은 행사를 4일 앞둔 지난 23일, 창립 5주년을 맞았다. 이들은 “2013년 오늘 한여름의 폭우가 쏟아지던 수요일 저녁 500명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FAKE VIRGIN 이름으로 첫 공연이 진행되었다. 2019년 오늘, 꿈 같은 라인업과 함께 우리의 5주년을 기념하는 역대급 페스티벌을 앞두고 있다”라며 5주년을 맞이한 소회를 밝혔다. 이들이 말한 ‘역대급 페스티벌‘은 결국 ‘역대급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총 공연 시간 중 약 280분에 해당하는 무대가 취소되었고 다니엘 시저는 팬들조차 보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이들이 추구하던 ”최고의 음악 축제”는 수많은 관객들의 실망과 함께 끝이 났다. 

 

김태우 에디터: taewoo.kim@huffpost.kr

 

업데이트: 2019년 7월 29일 오후 6시 40분 페노메코 소속사 밀리언마켓의 설명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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