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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폭우로 비를 쫄딱 맞은 배봉산 토끼들이 긴급구조됐다. 구조 당시 토끼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 진흙탕 물을 뒤집어 쓰는 등 피해를 입은 토끼들.

  • 이인혜
  • 입력 2020.08.06 10:09
  • 수정 2020.08.06 10:10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 사육장 내 토끼들이 연이은 폭우로 목숨을 잃거나 건강이 악화돼 보호소로 옮겨졌다.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 사육장 내 토끼들이 연이은 폭우로 목숨을 잃거나 건강이 악화돼 보호소로 옮겨졌다. ⓒ한겨레/토끼보호연대, 하이 제공

 

무분별한 사육장 조성으로 논란이 일었던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 토끼들이 연이은 폭우 피해로 긴급구조됐다. 산속에 지어진 사육장 안 지반이 폭우로 무너지고, 지붕이 없어 비를 쫄딱 맞은 새끼 토끼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동물권단체 하이와 토끼보호연대는 “며칠째 쏟아진 폭우로 토끼들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 아기토끼 60여 마리를 임시보호소로 옮겼다”고 5일 밝혔다. 이들은 “3일 오전 현장을 방문해 사육장 안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내고, 고랑을 파서 사육장을 정비했다. 구청에 요구해 방수막 설치와 바닥에 짚 까는 작업을 했지만, 저녁부터 다시 비가 쏟아져 새끼들의 구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배봉산 토끼사육장 모습. 토끼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거의 없다.
평소 배봉산 토끼사육장 모습. 토끼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거의 없다. ⓒ한겨레/토끼보호연대, 하이 제공

 

앞서 이들 동물단체는 지난 7월10일 동대문구와 배봉산 토끼사육장에 관한 협약을 맺고 토끼들의 중성화, 건강관리 등을 도와왔다. 토끼사육장은 동대문구가 지난해 시민들의 볼거리를 목적으로 배봉산 둘레길에 만든 것으로, 중성화하지 않은 60여 마리의 토끼를 사육하다가 개체 수가 늘어나자 구민을 대상으로 무책임한 무료분양을 진행해 논란을 빚었다.

이후 동대문구 내 유기토끼가 급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동대문구는 동물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들과 ‘토끼관리 보호 협약’을 맺고 사육장의 점진적 폐쇄를 결정했다. 협약서에 따르면, 동대문구는 토끼들의 중성화 및 건강관리를 책임지며 추가적인 토끼 반입 및 번식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동물단체는 동대문구를 도와 암수분리 작업, 중성화와 사후 관리, 사육장 실태 모니터링 등을 맡기로 했다.

구조 당시 토끼들은 진흙탕 물에 젖어 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구조 당시 토끼들은 진흙탕 물에 젖어 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겨레/토끼보호연대, 하이 제공
폭우로 사육장 바닥이 무너지거나 물 웅덩이가 생겨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폭우로 사육장 바닥이 무너지거나 물 웅덩이가 생겨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겨레/토끼보호연대, 하이 제공

 

동물단체는 지난달부터 토끼들의 중성화 및 수술 뒤 보호를 진행하고 있다. 최승희 토끼보호연대 활동가는 “중성화 수술 뒤 회복을 기다리는 개체가 15여 마리, 이전에 건강 등의 이유로 보호소로 데려온 개체가 30여 마리 된다. 이번에 구조한 새끼 토끼들까지 더해져 보호소가 꽉 찬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 3일 구조한 새끼 토끼들을 포함하면 보호소 내 개체 수는 100여 마리가 넘는다. 지난 6월30일 애니멀피플 보도 당시 동대문구청이 밝힌 사육장 내 개체 수 60여 마리와는 큰 차이가 나는 숫자다. 최승희 활동가는 “당시 토끼굴 안에 있어서 안 보였던 토끼들과 그사이 번식해 새로 태어난 새끼들까지 포함해 두어 달 사이 개체 수가 많이 늘어난 상태”고 설명했다.

구조된 새끼 토끼들은 유기토끼보호소 ‘꾸시꾸시’에서 지내고 있다.
구조된 새끼 토끼들은 유기토끼보호소 ‘꾸시꾸시’에서 지내고 있다. ⓒ한겨레/토끼보호연대, 하이 제공

 

구조 당시 토끼들 상태는 처참했다. 진흙탕 물을 뒤집어쓴 토끼들은 기침하거나 콧물을 흘리고 있었고, 일부 새끼들은 구조 때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못해 보호소로 옮긴 뒤 죽기도 했다. 사육장 현장에서도 태어난 지 한 달도 안돼 보이는 새끼 토끼들의 사체가 발견됐다.

현재 토끼보호연대는 유기토끼보호소인 ‘꾸시꾸시’에서 구조한 토끼들을 보호하며 개인 임시보호 봉사자를 구하고 있다. 조영수 하이 대표는 “임시보호 봉사가 시급한 상황이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새끼 토끼들을 구조했지만, 보호소 공간이 한정적이고, 활동가들이 보호소 관리와 사육정 정비를 위해 밤낮없이 뛰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작 관리 주체인 동대문구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대문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현재는 비닐로 비가림 시설을 해준 상태다. 야외 공원에 있는 토끼장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비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야간에 폭우가 내리니까 동물단체에서 새끼들을 보호소로 대피시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는 배봉산 토끼들.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는 배봉산 토끼들. ⓒ한겨레/토끼보호연대, 하이 제공

 

이후 계획에 대해서 묻자 “향후 계획은 검토 중이다. 야생에서 키우던 토끼들이니까 비가 그치면 일단 가족과 함께 지내도록 사육장에 방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동물단체는 임시보호 뒤 가정분양을 추진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조영수 대표는 “현재 구청 쪽과 가정분양에 관한 내용을 협의 중인데, 관공서에서 동물을 책임 분양한 전례가 없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5일 현재 구조된 새끼 토끼 66마리 가운데 40여 마리가 임시보호를 간 상태다. 구조 토끼의 임시보호 봉사는 네이버 카페 ‘풀 뜯는 토끼 동산’에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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