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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섹스도 인권이냐? 정말 잘 났어 정말' - 성소수자 혐오문구를 보며

  • 친구사이
  • 입력 2018.04.25 11:34
  • 수정 2024.03.27 16:35

그 사람들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의도야 어찌 되었든 그걸 몇 년 동안 해보면서 좋고 나쁜 이런 저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이 문장이 참 잘 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사람들 말처럼, 항문섹스가 인권과 무관하지 않고, 잘나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말이죠

21세기까지 와서 이런 말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인권은 생각만큼 거창한 게 아닙니다.

인권은 버스에, 지하철에, 화장실에, 엘리베이터에, 집에, 건물에, TV에, 어디라도 섬세하게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온갖 인구학적 분류의 사람들을 같은 낯으로 마주합니다. 그래서 인권과 마주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이 인권의 시야에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마치 공기 속에 사는 것처럼 인권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스스로 인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그렇게 살기 시작했을 겁니다. 같은 공기 속에 살면서 서로 더 좋은 곳에 머문다고 착각했을 뿐이죠.

그런 인권의 대기 안에서, 사람이 사람과 상호작용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동의‘라고 생각합니다. ‘동의‘의 이유가 호감인지 가치관인지 아니면 다른 상황적인 요소인지에 따라 요지는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서로 손을 잡고, 인사라도 한 마디씩 주고받으려면 그에 어울리는 ‘동의‘가 필요합니다. 최초 행위를 시작한 사람에게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상호작용할 수 없고, ‘동의’를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동하거나, 상대방의 행동을 강요한다면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특히, 상대방의 소중한 몸을 만지거나, 잘 못 하면 다치게 할 수 있는 상호 작용을 하고자 할 때에는 이런 공기에 더욱 더 민감해져야 하겠지요. 이런 기준에 공감할 수 있다면, 사람이 다른 사람과 몸을 섞는 섹스라는 행위야말로 가장 인권의 시야에 민감해져야 하는 상호작용이라는 말도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물론, 항문섹스라는 행위도 이러한 행위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며 다른 모든 섹스와 같은 인권의 낯을 마주하겠지요. -

섹스라는 건 인권의 시야에서 볼 때 생각보다 간단한 과정이 아닙니다.

가장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과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의 질 삽입 섹스를 생각해보아도 그러합니다. 먼저, 이러한 형태의 섹스를 ‘일반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것부터 공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다른 모든 성적지향과 정체성에서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형태의 섹스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 됩니다. 흔히 어떤 섹스를 ‘변태성욕’이라고 말할 때 저 ‘일반적인’ 섹스가 기준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또한, ‘삽입하는 남자’와 ‘삽입 당하는 여자’의 역할이 철저하게 분리되고, 능동과 수동, 지배와 피지배, 공격과 방어 등으로 비유되며, 이러한 비유는 섹스라는 행위를 떠나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야기할 때 공공연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남성과 남성 사이의 섹스 역시 당연히 삽입 섹스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실제 항문 삽입 섹스를 한다고 해도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답변이 성 편견에 미루어 짐작한 본인의 예상과 다를 때 의외라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뺄 수 없는 포인트죠. - 남성과 남성이 섹스할 때 항문섹스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혹은 목적지(?)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편견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항문섹스를 하지 말아야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이 행위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많이 들었던 이유 몇 가지에 딴지를 좀 걸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 해도 되는데 굳이 그런 걸 왜 하냐고 합니다.

항문섹스는, 신경조직이 매우 촘촘히 자리하여 민감한 항문이라는 신체기관을 무엇으로든 자극하여 성적인 쾌감을 얻는 행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쾌감을 경험하고 있고, 인터넷 검색만 몇 번 해도 수많은 관련 정보가 쏟아집니다. 그 중에는 물론 정확한 정보도 있고, 허황된 정보도 있겠지요. 다만, 꽤 오래 된 고대 벽화에서부터 현재의 초록창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정보가 오랜 시간 축적된 걸 보면, 이 방식의 섹스는 역사도 오래 되었고 경험한 사람도 많습니다.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는 섹스나 구강을 이용한 섹스를 왜 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까요? 그 행위가 성적인 쾌감을 주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섹스는 원래 그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아무도 왜 하냐고 묻지 않습니다. 항문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인 쾌감을 주기 때문에 하는 거죠. 뻔한 걸 굳이 왜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그걸 왜 물어보는지 한 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기관의 본래 용도와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항문은 물론 소화기관 입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입도 소화기관이고 소변이 나오는 음경 역시 소화기관입니다. 손 같은 신체 부위는 용도가 너무 많아서 본래 용도가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몸을 부위 별로 용도를 정해놓고 사용해야한다는 건 너무 편협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몸을 사용하는 규칙을 누가 정해줄 수 있는 걸까요? 나는 내가 원한다면 내 입에 뭐든지 넣을 수 있고 내 손가락도 어디든 넣을 수 있습니다. 왜 항문만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스스로의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보편적인 규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몸을 아프게 한다고 해도 보통은 누구에게도 그걸 막을 권리가 없습니다. 각 사회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술, 담배, 매운 음식, 피어싱, 문신, 약품 복용, 성형수술 등 어느 정도 건강을 해치지만 생명을 위협할 만큼 심각하지 않은 정도라면 - 건강한 생활이라고 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 개인의 기호로 판단하고 있는 기준이 수 없이 존재하는 걸 봐도 그렇습니다. 항문으로 배설을 하든, 섹스를 하든, 피어싱을 하든, 노래를 하든, 그건 본인의 권리입니다. 다른 사람이 옳다고 또는 어긋났다고 참견할 일이 아니겠지요.

그래도, 그 작은 구멍에 그 큰 걸 넣으면 다칠 것이 분명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항문이 신비하게 이완된다고 해도, 발기된 음경이나 두꺼운 도구를 항문에 삽입하는 행위는 괄약근이 충분히 이완된 상태가 아니라면 부상을 유발할 수 있고, 괄약근의 부상은 당연히 수축 기능의 저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섹스에는 상호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항문에 삽입하는 형태의 섹스를 할 때에도 몇 가지 규칙만 지킨다면 아프지 않게 안전한 섹스를 할 수 있습니다. - 시스젠더 헤테로 이성애자들의 질 삽입 섹스 역시 안전하게 하지 못하면 서로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 만약, 아프고 무서워서 하지 못하겠다면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상대방은 존중하면 됩니다. 누군가 강제로 하려 한다면 범죄인 것이고, 어떤 이유로 - 분위기를 깰 것 같고 나를 다시 만나주지 않을 것 같아서 등.. - 아파도 참는 쪽을 선택했다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선택인 겁니다. 까짓 거 병원도 좀 다니고 좌욕도 꾸준히 하면서 좀 더 항문 건강에 신경을 쓰면 되지요. 케겔 운동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오래 그렇게 살다보면 나중에는 기능이 너무 떨어져서 조절이 잘 안 될 거라고 걱정하는 척 비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담배 피우는 사람 앞에서 나중에 폐암에 걸릴 거라고 말하거나 술 먹는 사람 앞에서 간경화가 올 거라고 말하는 것, 비만과 식습관 때문에 당뇨나 고혈압이 올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과 같은 무례한 행동입니다. 물론, 정말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과 관계가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는 해도, 그런 사실을 알고도 행위를 선택하고 그렇게 몸을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나중에 후회한다 해도 결국 선택한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니까요. 그런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떠들어봤자, 취직 걱정 결혼 걱정 임신 걱정 늘어놓는 친척보다 더 나을 것도 없습니다. - 여담이지만, 정말로 생면부지인 남들 항문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항문섹스만 하지 말라고 하면 차라리 앞뒤라도 맞을 텐데, 왜 동성애를 하지 말라고 결론이 나는 걸까요? - 나에게 삶의 방식을 존중받을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면,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의무 역시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항문섹스를 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항문섹스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지 말라는 사람들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항문섹스를 단지 흥분하면 조심해서 집어넣고 사정할 때까지 흔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렇게 간단하게 시작할 수 없습니다. 안전한 항문섹스를 위해 고려할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 건강 상태를 확인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너무 피곤하다면 쉬는 편이 좋습니다. 또한, 항문의 상태도 건강해야하고, 청결도 유지해야합니다. 안전한 섹스를 위해 윤활제와 콘돔이 꼭 있어야 합니다. 항문을 충분히 이완시키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과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중간에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면 그만 둘 수 있어야 합니다. 동의하지 않은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고려할 줄 아는 파트너가 있어야 합니다. 다소 번거로운가도 싶지만, 건강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은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누려야하는 권리이고, 서로 그 권리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시스젠더 게이 남성입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이쪽 생활’을 했어요. 항문 섹스를 종종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적었던 것들 외에도 우리 커뮤니티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인권을 마주하고 항문섹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 커뮤니티는 과연 당당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도 서로에게 항문섹스를 하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탑인지 바텀인지부터 물어봅니다.

‘여성스러운’ 사람에게 탑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합니다. ‘남성성’을 좋아하니까 게이이고, 그래서 탑보다 바텀이 많은 것 같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남성성’이 넘친다고 자부하는 게이들 사이에서도 상대로부터 ‘남성성’을 쟁취하기 위한 ‘칼싸움’이 빈번합니다. ‘여성성’에 스스로를 대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게이도 많습니다. ‘일반적인 섹스’가 삽입 섹스라는 강박은 우리에게도 있고, 거기에 ‘남성성’이 탑으로, ‘여성성’이 바텀으로 대표되어 전형적인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편견이 되었지요. 그래서인지 이런 근본도 없는 성별 이분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성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관계는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항문섹스도 인권이냐? 잘 났어 정말!’

이 말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호모포비아는 대체 뭘까, 인권은 뭘까, 섹스는 뭘까, 항문은 또 뭘까, 잘난 건 또 뭘까.. 이 말을 특정 성행위나 정체성이 인간을 차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선에서 무시할 수 있다는 건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뭐 좀 남다르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지 않아요. 우리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들이 제가 언급한 것처럼 살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나도 저런 사람이라서 다들 나랑 비슷하지 않겠냐고 일반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곱씹어보다 뇌리에 박히는 말들이 있어, 구태여 쓸데없이 긴 말을 덧붙여 봤습니다.

오늘은 달도 잘 안 보이네요.

괜히 참 인권이나 하고 싶은 새벽입니다.

글 : 황이(친구사이 소식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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