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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세계관이 확장을 멈춰야 하는 이유

미국인들은 지난 20년간 북미에 마법학교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 김태우
  • 입력 2018.11.26 17:48
  • 수정 2018.11.26 17:50

미국의 해리포터 팬들은 그동안 자신이 속고 살았다는 것을 지난 2016년에서야 깨달았다. 미국인들은 머글이든 아니든, 마법 학교에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미국에도 마법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이 ‘해리포터’ 원작자이자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각본을 쓴 J.K.롤링에 의해 드러났다. 그렇다. 미국에도 ‘일버모니’라는 마법 학교가 있었던 것이다.

일버모니??

우리는 이미 플뢰르 델라쿠르가 다니던 프랑스 마법 학교 보바통, 학생들의 옷차림으로 미루어보아 추운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덤스트랭, 그리고 책의 중심이 되는 영국의 호그와트를 보았다. 보라색 눈에 검은 머리를 한 ‘에스메랄다‘와 ‘클로이’ 등 미국인 교환학생이 등장하는 팬픽은 있지만, 정작 원작 속 호그와트에 미국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미국에 마법 학교가 있었다니!

일버모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을 주인공으로 한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는 2편까지 나왔다. 롤링은 이 시리즈를 통해 일버모니, 세일럼 마녀 재판(17세기말 매사추세츠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마녀재판), 미국의 마법 정부, 나바호족의 전설 스킨워커(동물의 가죽을 걸치면 그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 등 미국의 마법 역사를 그리고 있다. 

롤링이 미국의 마법 세계를 그리는 것에 대해 마냥 기뻐하지 않는 건 비딱한 자세다. 정당한 불만 거리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는 이미 미국 원주민과 그들의 신성한 관습을 무책임하게 도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유의미한 비판이다.)

그러나 해리포터 세계관 확장이 거슬리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근본적이면서도 사소한 부분에서다. 미국의 마법 세계까지 이야기를 확장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결함은 원작이 가진 특별한 매력을 해친다는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마법과 기숙학교를 중심으로 다룬다. 기숙학교에 대한 소설은 청소년들이 가족 대신 친구, 교사와 함께 생활하며 겪는 일들을 그린 장르로, 영국 청소년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마냥 동화 같을 수도 있고(‘소공녀‘), 웃기고 가벼울 수도 있으며(‘키다리 아저씨‘, ‘말로리 타워스‘), 어두운 성장기를 그릴 수도 있다(‘분리된 평화’).

기숙학교에 대한 소설은 젊은 캐릭터들이 반항과 실패, 성공을 거쳐 삶의 교훈을 얻는, 아주 편하면서도 작은 세계관을 그린다. 고아가 되거나 끔찍한 일을 겪는 장면을 그리지 않고도 부모의 이야기를 줄거리에서 제외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대부분 자애로우며, 크고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주인공을 보호한다. 학교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친구와 마음껏 놀 수 있다.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일이 꼭 일어나지만, 학교에 살다 보니 잘못을 저지르고도 처벌의 수준이 경미하다. 기숙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퇴학 아니면 졸업에 불과하다. 

마법 세계와 기숙학교를 결합한 소설들도 여럿 있었다. 제인 욜런의 ‘마법사의 홀‘(Wizard’s Hall)에는 쏜말로우라는 불운한 마법학교 학생이 등장한다. 질 머피의 ‘꼴찌 마녀’ 시리즈에도 비슷한 캐릭터가 나온다.  타모라 피어스의 ‘서클 오브 매직’ 시리즈는 서로 다른 재능을 지닌 네 아이가 현명한 멘토들이 이끄는 학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알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반면에 ‘반지의 제왕‘이나 퍼시 잭슨 시리즈는 배경이 계속 바뀌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J.K. 롤링이 J.R.R. 톨킨(‘반지의 제왕’ 원작자)처럼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반지의 제왕‘과 달리 ‘해리포터’에서는 호그와트가 세상의 중심으로 고정되어있으며, 그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세계관이 흐릿하고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톨킨의 소설을 읽으면 캐릭터들과 함께 미들어스를 여행하며 새로운 곳에 가보고, 예상치 못했던 사회와 존재들을 마주치며,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다. 프로도와 친구들은 엔트들을 만나거나, 오크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위치를 정확히 모를 때가 많고, 위험은 물론 모험에 따른 보상 역시 불분명하다. 먼 목표를 향해 가는 위험한 여정에서, 어떤 이상하고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까? 호머의 ‘일리아드’ 등이 익숙하다면 분명 친숙하게 느껴졌을 서술 방식이다.

해리포터는 거의 호머의 서술 방식을 뒤집어버렸다. 책에서 해리포터와 친구들은 강력한 물건을 손에 쥐려는 여러 악당들과 싸운다. 1편에서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은 볼드모트가 마법사의 돌을 찾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결국 먼저 마법사의 돌을 찾아 나선다. 호그와트에 결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집요정에게 자유는 없고 순수혈통 마법사는 머글들을 배척한다. 하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의 토대가 되는 건 주인공들의 학교생활이다. 학생들은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찾으러 나서기보다는 학교에서 지내며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길 원한다.

호그와트가 완벽하게 안전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다른 곳보다는 안전하다. 호그와트 캠퍼스에는 외부인의 난입 등 심각한 범죄를 막는 주문이 걸려있다. 학교에 사는 유령들은 ‘짓궂음’의 선을 넘지 않고, 집요정들은 맛있는 음식들로 연회장을 가득 채운다. 학생들은 같은 기숙사 학생들만 있는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늑한 침대에서 잔다. 싸움은 퀴디치 경기와 교실에서만 일어난다. 교실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독자들은 해리와 친구들이 속한 기숙사 그리핀도르를 가장 자주 접한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담당인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와 친구들을 비롯한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비교적 느슨하게 감독하는 편이다. 기숙사에서 규제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규제라고 해봐야 규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학생들(반장들)에 의한 것이다. 게다가 교장인 덤블도어 교수는 볼드모트조차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해리포터 책은 그냥 그런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독자들을 판타지 속에 점점 더 빠져들게 하는 시리즈다. 기숙학교 소설이라고 늘 장난스러운 내용만 다룰 수는 없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은 학교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방어막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학교에서 배운 교훈들로 새로운 문제에 맞서고, 자기 힘으로 세상에 우뚝 서게 된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해리, 론, 헤르미온느는 교수의 보호 아래 있는 교실과는 전혀 다른 무섭고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결국 학교 자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 셋은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학교를 떠나 볼드모트를 무찌르기 위해 더욱 위험한 길을 걷게 된다.

‘죽음의 성물’은 이전 책들과는 달리 모험의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호그와트는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 주인공은 호크룩스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최후의 전쟁을 위해 호그와트로 돌아간다. 마지막에는 해리, 지니, 론, 헤르미온느가 9와 4분의 3 플랫폼으로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호그와트로 보내는 장면도 그려진다. 최후의 전쟁 후 호그와트는 재건되었으며, 책은 끝나도 호그와트의 모험은 계속될 것이라는 증거다.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나고 나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련 글을 쏟아내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7편으로 시리즈를 끝낼 계획이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그 세계관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롤링이 참여한 새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에서는 중년이 된 해리가 자신의 커리어와 어린 아들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원작 이후의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신비한 동물 사전’ 시리즈는 호그와트를 벗어나 마법 세계의 역사를 다룬다. 아예 다른 대륙의 이야기다. 롤링이 영국의 마법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만들었던 세계를 해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내게 있어 해리포터의 세계는 예나 지금이나 침실 같이 느껴진다. 위험한 세계의 위협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특이하고 친근해서 심리적인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완충 효과를 준다.

내 침실이 갑자기 축구장 크기로 늘어난다면 내가 방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해리포터 세계관의 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는 신이 나기보다는 내가 익숙한 크기의 방으로 돌아가고만 싶어진다.

물론 내가 무시하면 된다. 할 수 있고,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해리포터가 내게 기쁨을 준 이유가 ‘넓은 세계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 마법 역사에 대한 롤링의 글을 읽는 건 제인 오스틴이 독일 연애 관습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작들의 편안하면서도 완벽한, 그리고 세부적인 매력을 모두 버린 것이다.

당신이 미국 마법의 역사를 즐긴다면 그건 내 불평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즐기는 건 오롯이 당신의 자유다.

미국 내 마법 사회에 대한 정보를 더 찾고 싶다면, 롤링의 공식 홈페이지 ‘포터모어’에 들어가보시라. 그리고 즐기시길 바란다. 

 

허프포스트US의 ‘Why The Wizarding World Of ‘Harry Potter’ Should Stay Small’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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